유물에관한사진올리기

오채五彩를 품어 내는 붓끝의 세계 (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4. 18. 20:27

제목 오채五彩를 품어 내는 붓끝의 세계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4-15 조회수 39

 

금어金魚의 붓끝을 흠모하다

서울 신촌에 자리한 봉원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박한 마을. 이곳이 단청장 홍창원 보유자의 고향이다. 화승畵僧 만봉스님과 처음 인연이 닿은 때는 그가 10살을 넘긴 무렵이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종종 봉원사로 찾아갔어요. 그때마다 불화와 단청에 몰두하시는 만봉스님의 모습을 있었지요. 그는 스님께서 그림 그리시는 모습에 매료되어,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그림을 꺼내 땅을 도화지 삼아 흉내 내곤 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집과 절을 오가며 스님 곁을 맴돈 서너 . 보문사 탑골 선방으로 거처를 옮기신 만봉스님은 평생을 바쳐 기능과 신심神心을 그에게 하나둘씩 베풀어 주셨다. 스님의 붓끝을 한없이 흠모하던 홍창원 보유자의 단청세계는 15세에 이르러 이렇게 시작되었다.  

 

 

미려美麗한 오채五彩의 역사

오방색五方色(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만들어 고유의 빛깔로 문양과 그림을 그려 넣는 단청. 인위적인 채색이건만 선조들이 빚어낸 전통색감은 자연과 어우러져 풍경의 일부가 된다.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에 따라 단청에서 기본이 되는 색상은 겨우 다섯 가지에 불과하죠. 하지만 오방색에 분이나 먹을 혼합해서 명도를 조절하고, 가지 이상의 색을 섞어서 다양한 색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 단청은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지역에 따라 다양한 채색과 문양으로 표현되어 왔다. “경기지역과 북한의 단청은 붉은색과 황색을 많이 사용합니다. 동쪽지역은 녹청색 단청, 서쪽은 붉은색과 갈색을 많이 내죠.

오늘날 궁궐과 사찰건축에서 있는 단청.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화려하기 그지없는 단청이 일반 가옥을 장식하였다. 십만 호에 이르는 경도(서울) 집들이 오색으로 빛나는 당시의 풍광을 잠시 상상해 본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단청은, 명도와 채도를 대비하여 부드럽게 연출하는 바림과 보색대비 기법으로 한층 다채로워진다.

 

 

색채를 입히다. 상징을 입히다.

칠기채화와 함께 이미 상고시대부터 흔적을 보이기 시작하는 단청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까마득한 나이가 되었다. 예로부터 단청은 목조건축뿐만 아니라 석조건축과 벽화는 물론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회화의 범주를 넘나들었다.

 

“대웅전 같은 사찰의 주요 건물에는 금단청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합니다. 그런가하면 궁궐 건물 중에서 임금님이 정사를 돌보는 정전에는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장식을 하지요. 언뜻 보아 비슷하게 비춰지기도 하는 단청은 사찰과 궁궐, 유교 건축물의 성격에 따라 저마다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선조들의 색채 감각은 건축물을 구성하는 부재마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인물, 산수를 비롯한 회화와 각종 문양들은 어울리는 색채와 밀도로써 있어야 자리에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특히 밀도 높게 장식된 문양과 별화別畵 위에 금박을 사용한 ‘금단청’은 광채로 인해 장엄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그간 화려한 단청보다는 고풍스러운 사찰의 멋이 풍겨져 나오는 고색古色 단청이 정겨웠던 터였다. 그러나 화려한 단청 또한 색상과 문양의 상징을 통해 감화를 주고, 중심 건물의 장엄함을 부각시키는 하나의 기법이다. 이제 고색단청만이 본래의 모습인 여기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같다.

 

 

 

단청장, 건축물을 보존하는 예술가

나무판과 철봉을 엮어서 가설한 임시 작업대. 위에서 하루 종일 위쪽만 바라보며 색을 입히는 것이 단청일이다. 40 년을 작업대에 의지해 그이지만 천장天障에 단청을 입히는 작업은 여전히 힘이 부친다. 건축을 개改·보수補修 하면서 세월의 풍파로 씻겨 나간 단청의 본래 색상과 문양을 찾아 입히는 과정도 쉽지 않다. 특히 내부단청에 비해 외부단청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거나 흔적조차 찾을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까닭에 50년에서 길게는 100 마다 건물 안팎을 새롭게 단장해 주어야 한다. “아름다움과 장엄을 목적으로 단청을 입히기도 하지만, 나무의 표면이 갈라지거나 부식과 충해를 방지해서 건축물을 보존하려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 이렇듯 건물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기능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했던 선인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것이 단청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단청의 모습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은 그리 많지 않다. 홍창원 보유자는 이러한 현실의 아쉬움 속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대신 단청이 남아 있는 고건축과 문헌을 비교하여 복원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기로 했다.

 

“다행히 건물 내부는 중건 당시의 단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늦기 전에 전국의 단청을 조사해서 시기에 따른 변화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단청의 복원뿐만 아니라 보전 가치가 궁궐과 주요 사찰의 ‘단청모사模寫전시회’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자체로 예술품인 작품들은  훗날 단청 복원을 위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이것이 그가 모사전시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 이유이다. 선조들이 베풀어 놓은 전통 색감으로 과거와 미래를 채화彩畵하는 그의 삶은 ‘금단청’ 만큼이나 아름답고 값지다.

 

글 ㆍ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 ㆍ김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