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에관한사진올리기

봄바람과 푸른 신록사이, 여유로운 쉼이 있는 정원(옮겨온 글)2011.7.12.

왕토끼 (秋岩) 2011. 7. 12. 20:43

제목 봄바람과 푸른 신록사이, 여유로운 쉼이 있는 정원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6-14 조회수 256

 

광한루에서 그날의 춘향이를 기억하다
누구나 학창시절 한 번쯤 와 봤을 남원 광한루원. 올망졸망한 아이들끼리 우르르 몰려 들어가 춘향이가 탔다는 그네에 서로 발 한 번 올려보겠다고 투닥거렸던 추억과 기억의 공간.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들른 광한루원은, 따뜻한 봄바람이 머물며 몸과 마음의 여유를 되살리는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젊었을 때만 하더라도 문화재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땐 워낙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했으니까.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이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알아나가기 시작했지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저에게도 3년 전에 일어났던 숭례문 방화 사건이 문화재를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큰 계기가 되었어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왜 필요한지, 얼마나 고결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지켜나가야만 하는 당위성을 찾아낸 거죠. 그래서 문화재 안에 담긴 작은 이야기들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요.”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산수를 즐기는 곳이었던 이곳은, ‘쉼’이라는 공간의 목적 외에 역사와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마른 흙을 지그시 눌러 밟으며 진행된 인터뷰. 서혜정 씨는 천천히 걷다가 성춘향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춘향사 앞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예전에 성우 배한성 선배와 이몽룡, 성춘향 역을 맡아 『춘향전』 녹음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더욱 이곳에 와 보고 싶었지요. 성우는 목소리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런 그림(서혜정 씨가 서 있는 곳 앞에 이몽룡과 춘향이가 수줍게 웃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을 보면 어떤 목소리로 어떤 색깔을 입힐지 고민하게 되죠.”
역사와 문화는 그 자체로도 고매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거기에서 여러 갈래로 파생되고 재탄생하는 문화가 있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고전소설 『춘향전』은 그래서, 성우 서혜정 씨에게 새롭게 남아있을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를 읽어주는 누정樓亭
광한루(보물 제281호)를 품고 있는 광한루원(명승 제33호).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광한루로 이름이 바뀌었다.>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으로,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져 쉴 수 있는 광한루 주변에는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 번 만난다는 ‘오작교’를 그 위에 설치하였다.
“방송계에 몸담고 있다 보니, 이런 여유시간을 갖는 게 참 어려워요. 이렇게 신록 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생각하는 것들이 머지않은 어느 날에 하나의 영감으로 떠오를 텐데 말예요.”


봄의 끝물, 이파리들은 밝은 햇살을 머금고 제 몸의 빛깔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여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광한루원을 찾아 거닐고, 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꾸며 나가며 오늘을 다르게 기억할 것이다.


광한루원과 얽힌 또 하나의 오래된 이야기, 『춘향전』. 『춘향전』은 판소리 12마당의 하나로, 조선 영·정조 전후의 작품으로 추측하고 있는 우리나라 고대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은 이곳 광한루를 배경으로 사랑에 빠지고 운명의 굴곡이 시작됐다.


“성우들은 메소드 연기를 해요. 극중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는 거죠. 『춘향전』을 녹음할 때는 스스로가 춘향이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춘향이라는 인물은 내 안에서 새롭게 탄생할 수 있지요. 그 당시 『춘향전』원본을 녹음하는 것이었는데, 아주 잘 되었던 것으로 평가받았어요. 성우로서 한 걸음 한 걸음, 실력과 경험을 쌓아나가던 시기였죠.”
동그란 원 형태로 광한루를 품에 안고 있는 광한루원. 그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니 춘향사가 우리를 맞고, 월매집이 튀어나와 소설 속 인물의 모습을 재미있게 상상할 수 있게끔 이야기 바탕을 만들어준다.


마음의 쉼을 안겨주는 목소리
지금 이, 삼십 대라면 아련한 향수로 남아있을 외화 드라마 《X파일》. 극중 주인공 스컬리는 지적이고 담백한 목소리로 인기를 끌며 서혜정 씨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그후, 2009년 7월 첫 방송된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는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던 ‘스컬리’를 지우고, 성우생활의 새로운 지평을 선사했다.


“사람들은 흔히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로 얻은 이 인기를 ‘제2의 전성기’로 비유하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우는 십 년을 꼬박 해야 그때 비로소 자신의 색깔을 낼 수 있는 고지에 이르러요. 성우 12년 차에 ‘스컬리’를 했으니, 《X파일》은 성우로서의 입지를 다진 것이었고, 이제야 비로소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거죠.”
‘목소리’만으로 《X파일》을 서혜정의 색깔이 묻어난 외화 드라마로 만들었고,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만의 독특한 웃음코드를 만들었다. 더빙의 수요가 줄어들어 성우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혜정 씨는 성우가 나아갈 수 있는 영역을 넓히며 후배들의 귀감이 되기 위해, 후배들이 더욱 넓은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목소리는 굉장히 큰 힘이 있어요. 사람을 보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지요. 말씨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는 아름다운 말씨를 통해 이루어나가고자 하는 새로운 꿈이 있어요.”


푸르게 우거진 대숲 사이의 벤치, 그 고즈넉한 공간에서 오늘을 마무리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꿈을 가지고 삶을 성취해나갈 뚜렷한 확신이 반짝 빛났다. 서혜정 씨는 오늘의 광한루원을 여유로운 쉼으로, 자신의 꿈을 다져나가는 새로운 마음으로, 오래된 이야기가 넘치는 역사의 공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글ㆍ박세란

사진ㆍ엄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