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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와 생활종교의 주요 화두, 기원(옮겨온 글 2011.5.17.문화재청)

왕토끼 (秋岩) 2011. 5. 17. 20:19

제목 생활문화와 생활종교의 주요 화두, 기원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5-16 조회수 31

 

 곰과 호랑이가 사람 되기를 기원하다
그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은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내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 하여, 즉시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내려주어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지금의 묘향산)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 무릇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그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 살고 있었는데, 늘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기원祈願하였다. 환웅이 신령스런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먹으면서 삼칠일(三七日, 21일)동안 금기했는데 금기를 잘 지킨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사람의 몸이 되지 못했다.


여자의 몸이 된 웅녀는 혼인할 상대가 없으므로 매일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주원呪願했다. 환웅이 잠시 거짓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단군왕검이라 했다. 단군왕검은 당요唐堯가 즉위한 지 50년이 되는 경인년(庚寅年. 당요가 즉위한 원년이 무진년으로 50년은 경인년이 아니라 정사년이므로 이는 틀린 것으로 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기니 그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단군은 1500년 동안 이곳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즉위하던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 이에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로 돌아와 숨어살면서 산신이 되었는데, 이 때 나이 1908세였다. 

 

이상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 조에 수록되어 있는 단군신화의 내용으로 우리 문헌에 나타난 ‘기원’의 최초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굴속에서 함께 살던 곰과 호랑이는 사람으로 변신하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웅녀는 매일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주원呪願했다. 주원은 곧 기원과 맥을 함께한다.


기원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신 또는 초월적인 존재를 향해 비는 것이다. 이는  원초적인 신앙행위라고 할 수 있겠는데, 중요한 것은 ‘기원’이 우리의 전통신앙으로 자리매김하여 생활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은 바로 ‘기원’을 상징하는 사례가 된다. 서양에서 유입된 기독교에는 원래 새벽기도라는 것이 없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정착했다. 우리네 어머니의 ‘새벽 정성’이 수용된 예라 할 수 있다.


기원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정성’과 ‘위한다’가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속담에서 지성은 정성을 뜻한다. 기원은 무엇보다 정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원하는 것을 ‘정성드린다’하여 정성이 곧 기원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기원한다는 말보다는 오히려 정성드린다는 말을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위한다’는 용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쓰인다. 산을 위하고 나무를 위하고 물을 위하고 집안에 존재하는 가신家神을 위한다는 말은, 평소 각별하게 섬기는 것을 뜻하면서, 기원이나 정성과 같이 의례를 행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시 민간에서는 기원한다는 표현보다는 위한다는 말을 생활용어로 사용한다. 정성이나 위한다는 용어는 일종의 ‘민속어휘’라 할 수 있다.

 

하늘과 산은 기원의 으뜸 대상
하늘은 우주에서 가장 지고한 것이다. “하늘이 도와주었다”, “하늘이 본다”, “천벌을 내린다”는 등의 언술은 하늘의 지고함을 믿어 생겨난 표현이다. 그래서 천신신앙이 존재하고 하늘을 높이 경외한다. 거기에 하늘을 중심으로 보이는 해·달·별과 함께 바람·비·구름 등을 비롯하여 지상의 모든 현상, 곧 산·나무·바다·강·돌 등 천체와 자연물을 숭배하고 아울러 산군山君으로도 불리는 호랑이를 숭배한다. 


신앙의 으뜸 대상은 당연히 천신天神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하늘 보다는 자연물이다. 그 까닭은 하늘이 너무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늘은 형체를 상상할 수 없지만 그밖의 자연물은 형체를 볼 수 있거나 상상할 수 있어서 보다 구체적인 형상물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테면 믿음의 대상을 보다 가시화하여 가깝게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숭배 가운데서도 산을 숭배하는 산신신앙은 으뜸이 된다. 단군신화에서 단군이 산신으로 좌정했지만 그는 거슬러보면 천신인 환인의 자손, 곧 하늘의 자손이다. 산신을 섬기는 것은 곧 천신을 섬기는 것과 맥을 함께 한다. 호신신앙虎神信仰은 이미 부족국가 때에도 있던 신앙인데 이 역시 산신신앙을 원류로 한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호랑이를 산신의 사자, 또는 산신 그 자체로 생각한다. 수목신앙을 비롯한 여타의 자연숭배는 산신신앙에서 분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앙과 종교의 경계
자연을 숭배하는 것에 대하여 종전에는 원시종교의 한 형태로 논의했지만 오늘날에는 원시종교라는 용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토착신앙이라고도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신앙양상을 민속신앙이라고 한다. 민속신앙이라는 용어 이외에 민간신앙·민속종교·민중신앙·민중종교 등으로도 일컫지만 민속신앙·민간신앙이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종교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의미에서 민속종교라고도 한다.

 

민속신앙은 민간층에서 전승되는 자연적인 신앙, 또는 종교를 말한다. 자연적이란 인위적이란 말과 대칭되는 용어로서 불교·기독교·이슬람교와 같은 제도종교(세계종교, 역사종교 등으로도 불림)를 인위 종교라고 하는 반면 민속신앙은 자연 종교라 한다. 기존에는 종교를 좁은 의미로 개념화했다. 교조·교리·의례·교단·신도 등 체계적인 형식을 갖춘 제도종교만을 종교라

했으므로, 민속신앙은 종교의 범주에서 이탈될 수밖에 없었다. 민속신앙은 의례(기원)가 중심이 되며 체계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종교를 넓은 의미로 개념화하여 정의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인위 종교와 자연 종교로 구분하는 것도 기존의 개념을 해체한 것이며 민속종교라 한 것 역시 해체와 관련되어 있다.


민속신앙은 제도종교가 형성되거나 토착화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 민족의 심성을 담은 상징코드로서의 구실을 한다. 그러나 민속신앙을 종교의 범주에서 논의하는 것에 부정적인 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신앙과 종교는 어떻게 경계 지어야 할까. 

 
신앙과 종교의 사전적인 풀이를 보아도 이들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신앙 없는 종교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은 체계적인 종교가 생기기 이전부터 독자적으로 존재했다. 이를테면 종교에 선행되는 것이 신앙인데 그렇다고 이것이 신앙과 종교의 구별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민속신앙의 원류가 되는 자연숭배는 종교의 모태가 되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조선시대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는 해괴제解怪祭를 지내고 논밭에 충해가 심할 때에는 포제祭,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에는 기양제祈禳祭를 지냈던 것은 천체나 자연에 대하여 늘 진지하고 경건했던 우리 민족 심성의 표출이다. 과학문명이 극도로 발달했다고 말하는 오늘날도 비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는 마을이 있다. 이는 조선이라는 전통사회를 기준으로 본다면 종교가 아니라 신앙행위이다. 하지만 종교의 범주가 확장된 오늘날, 신앙인가 종교인가를 구별할 수 없으며 구별의 의미도 없다.    


신앙과 종교를 경계 짓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숭배라는 민속신앙의 양상이 우리 민족의 심성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그래서 민족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기원이나 정성, 위함이라는 신앙의 키워드는 생활종교를 형성하여 생활문화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글ㆍ김명자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사진ㆍ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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