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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을 수놓다' 자수장 한상수 보유자 (옮겨온 글 2011.5.17. 문화재청)

왕토끼 (秋岩) 2011. 5. 17. 20:15

제목 '아름다운 삶을 수놓다' 자수장 한상수 보유자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5-16 조회수 20

 

자수장刺繡匠(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한상수 보유자

삶을 수놓아 온 지 60여 년.
외래자수의 틈 속에서 전통자수를 이어가는 제자들은 그녀의 귀한 동반자다.

그래서 한상수 보유자는 자수공예刺繡工藝를 공예共藝라 표현한다.

 

자수틀 위로 내려앉은 봄
단아한 한복차림의 한상수 보유자가 수놓는 일에 여념이 없다. 색실을 꿴 가느다란 바늘이 자수틀 위아래로 몇 차례 오가는가 싶더니, 이내 한 송이 매화가 봉긋한 자태를 드러낸다. “자수는 아름다움의 극치예요. 문학도 아름답지만 제일 아름다운 것이 자수라 말하고 싶어요.” 온화한 표정으로 성의껏 이야기하는 보유자에게서 자수를 향한 자부심과 품위가 배어난다. 그간 수놓았던 색실의 길이만큼이나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작품을 선보인 한상수 보유자. 매화자수 병풍을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시연하는 사이, 변덕스런 날씨 탓에 느끼지 못했던 봄기운이 자수틀 위로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화려한 색채와 입체적 질감이 주는 감동
실을 꿴 바늘땀의 흔적으로 조형과 문양, 색채와 질감을 표현하는 자수. 도면을 그린 천 위에 촘촘히 수놓아 가는 손놀림은, 보는 이가 산만할 틈을 주지 않을 만큼 빠르고 정확하다. 더욱이 하나의 형상에도 다양한 수기법을 발휘하여 생생한 입체감을 돋아낸다. “수를 놓을 때는 정말 신이 나요. 온 세상이 제 것 같죠.” 평생을 한결같이 기쁜 마음으로 수를 놓아 왔다는 그녀. 자수를 하면서 어려운 순간도 있었을 터,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지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자수가 마치 규방 여성의 인내와 성품을 위한 가사家事쯤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으세요.” 그녀를 힘들게 했던 것은 눈 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수에 전념해 온 대가인 신병身病도 아니며, 좁은 바늘귀에 실을 꿰는 일도 아니었다. 자수를 실용과 미적 감각을 표현하는 예술의 영역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세간의 시선이 평생 자수를 고집한 그녀의 마음을 허전하게 했던 것이다.

 

전통자수 : 외래자수
우리 생활 곳곳에 수놓아진 자수의 세계는 폭넓고 다양하다. 고이댕기·버선·꽃신 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착용하는 각종 복식에서 자수는 절대 빠질 수 없다. “자수가 없는 혼례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모란이며 연꽃, 불로초, 학과 같은 수 무늬가 없다면, 신부의 아름다운 자태도 그렇고, 부귀와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도 사라져 버리는 거죠.” 여인의 손길이 빚어낸 자수는 밥상보·수저집·베갯모와 같은 일상의 작은 소품에도 어김없이 정성과 예로써 놓아졌다. 뿐만 아니라 복식과 소품의 수준을 뛰어넘은 자수병풍과 같은 ‘감상자수’는 자연풍광과 생활감정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시대를 대변하는 품격과 전통을 이어가며 점차 고유한 형상 예술로 발전해 온 자수. 그러나 어느새 생활 곳곳을 파고 든 기계자수로 인해 전통자수인의 손끝은 점차 무뎌져갔다. 물론 개화기를 기점으로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여학교에 자수가 보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양과 일본자수의 영향을 받은 외래자수 교육이 일반적이었음을 40~50대 여성들은 기억하고 있다. “당시 자수에서는 우리의 전통적인 특색 찾기가 어려웠어요. 서양의 회화를 기반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우리는 문양을 사실처럼 표현하는 전통자수의 풍부한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조금씩 잃어 갔다.

 

 

전통자수의 자존심을 지켜 온 여정
“다른 예술품도 그렇지만 자수는 기술적인 숙련도와 예술적 소양에 따라, 완성되는 자수품의 수준에도 차이가 있어요.” 그녀는 전통자수의 기술과 기법을 연구하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먼저 1979년 조선시대의 흉배胸背전시회를 통해 궁수·이음수·평수·가름수 등의 기초수법과 60여 가지의 자수 체계를 바로잡았다. 그런가 하면, 돗자리 모양으로 놓아지는 수법을 처음으로 복원하면서 ‘자리수’란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자수 전승을 위한 연구서적을 발간하고 교육을 거듭 할수록 그녀를 짓눌러 왔던 불편한 마음을 하나 둘 내려놓을 수 있었다.

60평생을 자수에 전념해 온 그녀는 어떤 바람이 있을까. “한국 고대 자수에 대한 연구는 인생의 숙제와도 같아요. 일본 중궁사中宮寺에 소장되어 있는 천수국天壽國 만다라가 복원되면 우리 고대자수의 기법이 밝혀지는 셈이죠.” 그녀가 말하는 천수국 만다라는 고구려의 가서일加西溢이 밑그림을 그리고, 백제의 진구마秦久麻가 총지휘하여 제작한 자수품이다. 30여년 넘도록 일본을 오가며 이 작품에 천착한 까닭은 전통 자수의 명맥을 오롯이 잇기 위함이다. 식지 않는 그녀의 열정으로 우리의 전통자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1984)되었고, 그녀가 보유자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공예工藝에서 공예共藝로
자수 놓는 일을 왜 하냐고 묻는 이들을 원망해 본적은 없다. 현실 보다는 꿈속에서 살아야만 자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생활을 하기가 어렵고 빠른 것만 쫓아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인내를 요구하는 자수일은 아무래도 선호하기가 어렵죠.”
이러한 여건 속에서 자신의 뒤를 잇는 제자가 있어서 힘이 난다. 전수교육조교들을 비롯하여 보유자의 딸과 손녀에 이르기까지 전통자수를 잇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나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이제 제자들과 함께 작업을 하니까 얼마나 든든할지 몰라요. 함께하니까 함께할 ‘공共’자를 써서 ‘공예共藝’ 아니겠어요?” 보유자의 얼굴에 화색이 만연하다. 눈 떠 있는 시간 대부분 자수를 놓으며 살아 온 자수장 한상수 보유자. 칠십을 훌쩍 넘은 고령이건만 지금도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수놓을 일에 설렌다. 아름다움을 수놓는 자수와 뒤를 잇는 제자들이 있기에 그녀의 삶은 언제나 봄날일 것만 같다.  

 

글ㆍ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ㆍ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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