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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 자유연애’를 통해 해방을 꿈꾸다(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3. 7. 19:26

제목 신여성‘, 자유연애’를 통해 해방을 꿈꾸다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2-14 조회수 99

 

 

 

사랑이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1923년에 시인 노자영에 의해 출간되어 수천 부씩 팔렸던 베스트셀러, <사랑의 불꽃>吳殷瑞, 漢城圖書株式會社이라는 연애서간집은 1920년대 초 중반, 조선 사회에 유행처럼 번진 연애의 풍경을 드러낸다. 위 서간집에 실린 연애편지의 발신자와 수신자는 대부분 신교육을 받은 남녀 학생층, 20세 전후의 청춘들이었는데, 18편의 편지 중에서 6편이 여성이
남성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 가운데, 독약을 마신 후에 - 최후로 화부華福씨에게. 죽음의 길을 찾아가는, 홍순애 올림이라는 편지는자유 연애에 몸을 던졌던 신여성이 부모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 죽음을 결심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당신을 위하여 살고, 당신을 위하야 죽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물건이외다. 당신을 떠나서는, 살지 못할 사람이외다.”라고 연인에게 사랑을 맹세하는 홍순애는 부모의 결혼 반대에 저항하면서 사랑이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홍순애는 연인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의 벼랑에 서게 된 자신의 처지가 부모와 사회의 공모로 인한 것이며, 스스로를 과도기 사회의‘놀이감’,‘ 희생자’로인식한다. 수백년 동안 관습으로 자리하였던 중매결혼에 정면으로 대항하면서, 죽음으로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고자 하는 홍순애는 근대 시기 자유연애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교자의 형상을 하고있다. 오랜 기간 규방의 부덕을 지키며 순종을 미덕으로 삼고 침묵해왔던 여성들이 자유연애결혼의 주체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근대 조선. 홍순애와 같은 급진적인 여성을 양산한 당대 사회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근대 연애론과 여성해방
1920년대 초반에 이르러 조선에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사랑의 개념이‘연애戀愛’라는 이름으로 유입된다. 1910년대에 일본 메이지 시기의‘고상하고 신성한 연애’개념이 소설 속에 등장하고, 1920년대에 이르러 서구에 기원하는 근대적 연애론이 일본을 경유해서 조선 문화 속으로 침투한다. 그 대표적인 예는 동아시아 전역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던 스웨덴의 여성운동가 엘렌 케이(1849-1926)의 연애론이었다. 엘렌 케이 연애론의 가장 주목 되는 바는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조화를 이루는‘영육일치靈肉一致’의 연애론이다. 이는 육체적 욕망肉과 정신적 사랑靈을 이분화하고, 이 둘의 조화로운 결합을 추구했던 근대적 사유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 연애를 통해 개인의 욕망의 실현과 사회의 발전을 동시적으로 추구한 엘렌 케이의 연애론은 근대 일부일처제의근간이 되었다.

 

 
또 다른 영향력 있는 연애론은 일본 다이쇼 시기(1912-26) 연애붐의 선구자였던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구리야가와 하쿠손( 川白村, 1880-1923)의『近代の戀愛』(東京: 改造社, 1922)이었다. 하쿠손의 연애론은“Love is best”라는 유행 문구를 만들어낸 연애지 상주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하쿠손은 엘렌 케이에서 제기된 영육일치의 연애, 연애 없는 결혼을 부정하는 연애지상주의를 계승하면서 연애를 종교적 경지에까지 끌어올린 연애숭배론 자였다. 마지막으로 1930년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연애론은 러시아 출신의 사회주의 여성 정치가 콜론타이(1872-1952)의 연애론이었다. 1930년대 한국과 일본에서 크나큰 대중적 반향을 일으킨 그녀의 소설『붉은 사랑赤戀』과『삼대三代의 사랑』은 사회주의 계급해방의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결혼으로부터 연애를 독립시키고,연애로부터 성을 해방시키는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의식을 지니고있었다.


그런데, 1920~30년대 조선으로 유입된 엘렌 케이, 구리야가와 하쿠손, 콜론타이의 연애론은‘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여성의 담론’이라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여성과 긴밀한 관련을가졌다. 20세기 초, 서구 부르주아 계층을 기반으로 자유주의적연애론을 양산한 엘렌 케이나 사회주의 연애관을 확산시킨 콜론 타이는 계급적 기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연애를 통해‘여성’의 근대적 자각과 해방을 추구하였던 여성운동가들이었다. 구리야가와 하쿠손 역시 연애의 구성 조건으로‘양성평등’을중시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연애론의 기반 아래에서,1920~30년대 신여성들은‘연애’를 문명의 지표이자, 자아실현, 여성해방, 계급해방으로 이끄는 혁명적 도구로 인식하게 된다.

 

 

연애를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식민지 조선에서 1세대 대표적인 신여성 문사들이었던 나혜석,김원주, 김명순은 모두 확고한 연애관을 바탕으로 자유연애를 현실 속에서 온 몸으로 실천한 여성들이었다. 최초의 근대여성작가 였던 김명순은‘이상적 연애’(<조선문단>, 1925. 7)라는 글에서, 연애를 “모-든 남자와 여자가 같은 이상理想을 품고 결합하려는 친화한 상태 또 미급未及한 동경憧憬”이라 정의하였다. 이는 연애를 통해남녀 간의 인격적 만남과 관계의 이상적 조화를 추구했던 구리야가와 하쿠손의 연애론과 유사한 맥락을 갖는다. 나혜석은“생활 개량에 대한 여자의 부르짖음”(<동아일보>, 1926. 1. 24~30)이라는 글에서,사랑의 가치를 긍정하는 동시에 사랑으로 인해 이상과 실행, 영과육, 이성과 정의가 융합되어 작동한다고 보고, 우선 자기를 먼저 사랑하고 그 사랑을 확장시켜 생활 개량의 근본 힘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혜석의 연애론은 주체적인 자기인식과 확고한 페미니스트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있다.


또한, 한국 최초의 페미니즘 정론지라 할 수 있는 <신여자>(1920)를 편집 간행했던 김원주의‘나의 정조관’(<조선일보>, 1927. 1. 8)이라는글은 연애를 통해 진정한 성적 생활의 자유를 구가할 때 순결이 보존된다는 구리야가와 하쿠손의 정조론과 긴밀하게 연계된다.
정조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사랑이 있는 동안에만 정조가 있는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육체적 순결을 목숨보다 중시했던 전통적인 여성들의 정조관을 전복시키는 급진적 시각이었다.

 

 
그밖에 여성교육가 박인덕은 연애가 없는 결혼을 유지하느니 차라리 이혼하는 것이 낫다는 엘렌 케이의 자유이혼을 실행한 인물로서 입센의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에 상응하는‘조선의 노라’로 불렸다. 또한, 사회주의 신여성의 경우, 여성동우회女性同友會와 근우회槿友會등에서 맹렬히 활동했던 허정숙은, “연애는 사사私事다”라는 콜론타이의 연애론을 몸소 실행한 여성으로서 ‘조선의 콜론타이’라 명명되었다. 근우회에서 활동했던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정칠성丁七星도, 연애와 성욕을 분리시키고 성의 해방을 주창한 콜론타이의 주장에 공식적으로 동의한 바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실험된 신여성의 연애는 당대 사회의 갖가지 기제와 충돌하게 되는데, 특히 남성지식인들의 연애에 대한 시선은 여성들과 차이를 보이며 갈등을 유발한다. 당대 지식인 남성들에게도 엘렌 케이의‘영육일치 연애’와 하쿠손의‘연애지상주의’등의 용어는 일종의 상식처럼 통용되었다. 하지만 이는 관념적인 제스처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에 노자영,주요섭 등 일부 남성들은 연애지상주의를 수용하는데 적극적 으로 기여했지만, 1930년대에 대부분의 남성지식인들은 연애에서 육체적인 것을 소거하고 정신적인 것을 중시하는‘영육분리’의 입장을 취하거나, 연애를 일부일처 결혼제도의 신성성속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연애의 가치를 축소하는 보수적 경향을띠게 된다. 근대적 사랑이 야기하는 여성들의 정조 훼손을 용납할 수 없었던 남성들에게 신여성의 연애는 성적 문란, 도덕적방탕의 지표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1920~30년대 신여성의 자유연애는 그 이면에 개인성의 실현,남녀평등, 신가정의 형성 등 근대의 혁신적 가치를 지녔지만, 현실속의 남녀 간의 성적 위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과 부딪치면서 좌절을 겪는다. 연애를 통해 새로운 시대와 가장 긴밀히 호흡하고자 했던 신여성들은 오히려 시대와 가장 격렬하게 불화不和하게 되는 역사적 모순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글·서지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사진·한겨레신문사(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 신여성), 청년사(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연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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