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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호강이 휘감아 흐르는 천연의 요새, 스페인 톨레도 ()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3. 28. 20:38

제목 타호강이 휘감아 흐르는 천연의 요새, 스페인 톨레도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3-10 조회수 87

 

 

 

천 년의 흥망성쇠를 간직한 스페인의 왕도
마드리드에서 약 70km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톨레도가 역사적으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192년 로마제국의 변방으로합병되면서부터다. 스페인 중부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으면서 이베리아반도의 젖줄 타호강이 삼면을 둘러싼 이곳을 당시 로마인들은 톨레툼(Toletum, 방어지대, 작은 요새도시)이라고 불렀는데,‘톨레도’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톨레도는 해발 500m가 넘는 구릉 위에 조성된 도시를 주머니 모양으로 타호강이 휘감아 감싸고 있어서 마치 해자로 둘러싸인 커다란 성채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중요한 요새로서 역할을 했던 로마시대가 끝나고, 비시고트족(Visigoths)이 왕국 건설과 함께 수도로 정함으로써(579년) 톨레도는 스페인의 정치, 문화, 종교의 중심지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711년 아랍왕 타릭(Tariq)에 의해 점령당한 후 약 400년간 이슬람 무어족의 통치를 받았는데, 아랍인들이 정착하던 이 시기에 도시가 그 역할에 따라 성곽, 정치적 공간, 군사적 공간, 거주 공간, 종교적 공간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형성되었다. 톨레도의 전성기는 13세기 알폰소 10세(Alfonso Ⅹ) 때 절정에 달했고, 스페인 황금시대로 불리는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가톨릭 국왕부처 (Los Reyes Catolicos) 때는 도시가 외적으로 팽창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1492년 당시 톨레도의 거의 모든 상권을 소유하고 있던 유대인들이 쫓겨나면서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1561년 펠리페 2세(Felipe Ⅱ)에 의한 마드리드 천도로 수도로서의 정치적 위상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스페인 내란(1936~39) 당시 알카사르(Alcazar)를 놓고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면서 다시 한 번 역사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렇듯 스페인의 고대와 중세, 근·현대사를 함께 한 톨레도는 정치·경제적 영향력 저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페인의 정신적 수도로 불리고 있다.

 

복합도시박물관, 세계문화유산이 되다
1986년 11월, 톨레도는 다양한 기념비적 유물과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를 자랑하며, 서고트왕국, 레온왕국, 이슬람왕국, 카스티야왕국의 수도로서 천 년의 번영과 영화를 누렸으니 이러한 명성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이러한 역사적 배경 덕분에 톨레도는 로마시대 유물인 원형경기장에서부터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가 오랜 세월 공존해 오면서 각각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는 동시에 하나로 융화되어 특수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곳을 거쳐 간 모든 민족과 종교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서고트 스타일의 구조물, 이슬람사원, 유대교회, 고딕양식의 성당 등 방대한 유물과 건축물들이 남아 있는 거대한 복합도시박물관인 셈이다.

 

복합문화가 집약된 역사도시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단연 무데하르양식(Mudejar)이다. 무데하르란 이슬람 지배 이후에도 스페인에서 살았던 회교도를 일컫는 말이며, 무데하르양식이란 12세기에서 16세기 스페인에서 꽃피웠던 아랍식 장식과 카톨릭양식이 혼합된 건축양식을 의미한다. 산티아고 델 아라발 회교사원, 산타 마리아 라 블랑카 교회, 시나고가 델 트란시토 유대교회당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구시가지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톨레도 대성당은 1226년에 짓기 시작해 1493년에 완성된 대표적인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스페인의 예술혼이 집약되어 있다. 로마시대에 선축되어 서고트인, 이슬람교도, 그리스교도에 의해서 여러 번 재건축된 알카사르도 스페인 내전 중 폐허가 되다시피 했으나 복원된 것으로 무데하르양식과 고딕양식이 어우러져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톨레도는 수많은 예술가들과도 인연이 깊다. 특히 16세기 대표적인 종교화가 엘 그레코(El Greco,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작품은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톨레도는 이방인 예술가에게도 관대한 도시였다. 그리스도교의 카스티야 왕조시대에 유대교도들을 위해 이슬람인들로부터 건조된 건축물들의 존재는 중세시대 이베리아반도에서 유행하던 세 문화의 융합과 조화를 상징한다. 그것은 톨레도가 스페인의 문화적 개방성과 유연성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가 절대적이던 시대에 적대적인 이교도의 건축양식까지도 빌릴수 있는 정신이야말로, 스페인의 진정한 정체성이 아닐까.

 

 

도시의 부활을 꿈꾸는 새로운 도전
카스티야 라 만차(Castilla La Mancha)의 수도 톨레도시 전체 인구는 약 7만 8천 명에 달한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실상 투자활동이 거의 없고 서비스 기능만을 수행하는 도시였다. 특히 구시가지(중세도시구역)의 경우 1950년대 3만 명이 거주했으나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8천 명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공동화와 쇠퇴가 심각해 왕도로서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돌파구를 모색하는 일이 절실했다.


그 하나가 신시가지 개발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구시가지에서 약 4km정도 거리에 직선형의 산업지구와 거주지구를 조성했는데,이 지구는 톨레도의 현대적 도시정비계획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다른 한편, 도시 쇠퇴를 막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 즉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와 실용적 가치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경주되었다.


톨레도시는 1997년『톨레도고대도시개발특별법령』을 승인했고,1998년에는 국왕이 대표직을 맡고 대통령과 장관들, 의원들, 사회단체 회원들, 대주교와 총장, 톨레도재단 등으로 구성된 국립톨레도시후원회를 발족했다. 2001년에는『도시 내 건축물과 거주 지역 재활성화를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고, 국립톨레도시후원회의 국가행정기관으로서 톨레도컨소시엄을 설치했다.


톨레도컨소시엄은 단순히 역사유산을 보존해서 전시하는 도시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고도를 조성한다는 취지에서‘거주지 활성화 및 도시기반시설 정비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자신들의 자산에 대한 가치를 재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동안은 유물이 나오더라도 복잡한 절차와 시간 때문에 신고를 소홀히 하는 행태도 사라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밖에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고대유적지 정비사업’과 함께,‘역사적 건축물 연구 및 정비사업’,‘공공유적공간 및 설비 정비사업’등 보여주는 전시도시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고도 만들기’를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로의 발전

우리에게‘카스티야 라 만차’라고 하면 톨레도보다는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또 스페인의 도시라고 하면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가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 정신의 진면목은 옛 고도 톨레도에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톨레도의 보존 및 재생사업의 핵심은 유물의 전시적 공간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살아 움직이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도시계획기법이나 기술개발의 현실을 부정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들이 지닌 훌륭한 유산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기법과 기술을 접목시키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자세는 정말 중요한 자산이다. 높은곳에 있는 톨레도 도심으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이러한 일례만 살펴봐도 다른 고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과거를 담아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꿈꾸는 도시, 이것이 톨레도의 참모습이다.

 

 

글 | 사진·이순자 국토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