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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先史와 신라新羅 그리고 현재를 잇는 기록의 흐름(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3. 7. 19:20

 

돌에 새긴 상징, 정신을 표현하다
울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업도시이다. 하지만 울산으로 떠나며 도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한 걸음 한걸음 짚어야 할 곳들이 참 많다. 유난히 청명했던 겨울 하늘 아래에서 여정을 시작하자, 곳곳에 깊고 깊은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역사의 문이 많다. 십여 년의 시간 동안 서울에 거주하며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희곡작가 장창호. 그는 울산 땅에서 숨 쉬고 있는 다양한 문화재들의 아우라를 이야기로 구현해내는 이야기꾼이다.“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희곡을 쓰고 뮤지컬 연출 작업 등을 해 오면서, 고향 땅에 존재하는 문화재들이 나에게 주는 영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이 바로 이곳 울주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죠.”
우리는 먼저 국보 제147호로 지정된 울주천전리각석을 찾았다. 대곡천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암벽의 융기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기이한 지형 위에는 천전리공룡발자국화석(울산시 문화재자료 제6호)이, 15도 가량 경사져 풍화작용의 영향이 가장 최소화된 바위에는 사람들의 기록이 남아있다. “천전리각석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유적이죠. 1970년 12월었습니다. 보다시피 여기에는 추상적인무늬들이 새겨져 있어요. 동물무늬, 동심원, 마름모……우리 고대 문명이 농경사회였던 만큼 그 상징은 역시 다산과풍요입니다.”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이 무늬는,반구대암각화의 사실적인 그림과는 달리 정신세계를 추상적
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무늬의 흐름은 사실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의식 수준이 높아질수록 추상으로 거듭난다는 점을 볼 때, 정신세계의 발현이 점차 발전되었음을 알 수있다.

“옛 선조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참 놀랍습니다. 이곳에 새겨진 무늬들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청동기시대뿐만 아니라 신라시대의 기록 또한 남아있다는 것이죠. 그것들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는 것이 참 새롭게 느껴지지 않나요?”
마치 켜켜이 쌓인 세월이 가시화된 형상 같이 느껴진다.그는 이렇게 울산 땅에 있는 선사의 이야기를 희곡으로 탄생시켰다. 바로 천전리각석으로부터 상상력을 이끌어낸『ㅅㄹㅎ』8편이 그것이다.

 

기나긴 시간 속, 탐스럽게 열린 서사의 열매
울주천전리각석에는 세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먼저 청동기시대 때 종교적인 상징과 기원으로 새겨졌던 추상무늬. 인
류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도 번성과 풍요를 빌었던 마음의 깊이는 지금과 다르지 않다. 그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바로 신라시대의 이야기들이다.


“여기 밑을 보세요. 추상무늬와는 다른 그림들이 있죠? 이게 신라시대 때 그려진 세선화예요. 화랑의 휴식처였다는 흔적들도 곳곳에 보입니다. 그 다음은 신라의 비밀을 담고 있는 원명과 추명이 그것이에요. 여기에 새겨진 글자로 하여금 우리는 그 사람의 삶과 사랑, 그리고 역사적 사료를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워요.”

 


명문은 을사乙巳와 기미己未라는 글자를 통해서 6세기 초에 쓰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먼저 기록된 원명은 법흥왕法興王의 동생 사부지갈문왕徙夫知葛文王(고대 신라 때에는 왕과 긴밀한 혈족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게도 왕王이라는 글자가 붙었다고 알려져 있다.)이 을사년(525년) 6월 18일 새벽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이다.


사촌 누이인 어사추여랑과 동행 했는데, 두 사람은 연인관계였다. 친족 간의 연인 관계가 그 당시 왕족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 연인은 결국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권력과 힘의 관계에 밀려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던 거죠. 사부지갈문왕은 여사추여랑과 헤어지고 다른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원명 바로 옆에 적혀 있는 후명은 사부지갈문왕과 결혼한 지몰시혜只沒尸兮가 새겼습니다.” 세월이 흘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그의 흔적을 좇아 걸음을 한 것이다. 그들의 어린 아들이었던 진흥왕과 함께. 문화재에는 언제나 거대한 서사의 흐름이 존재한다. 당시를 되살릴 수 있는 사료는 물론, 그것을 바탕으로 전개할 수 있는 너른 상상력의 벌판이 있다. “예술과 역사는 아주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역사가 가진 콘텐츠를 잘 활용하고 발전시켜나간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학술적 연구와창작의 세계는 서로 맞물려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각기 가지고 있는 특성이야 다르지만, 역사 연구는 이야기를 창작해내는 데에 가장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걸음걸음마다 역사를 새기는 오늘의 여정
옛 이야기를 꽃 피우는 여행 속에서 우리는 채 녹지 않은 공룡 발자국화석의 하얀 눈을 오래 응시하고,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에서 옛 사람들의 삶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수많은 ‘그네’들의 삶 위에 우리의 오늘이 있고, 누군가의 내일이 켜켜이 쌓여 또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암각화박물관을 관람하고 마지막 행선지로 반구대암각화를 보고 돌아 나오다가, 그가 꼭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손을 왼쪽 으로 뻗었다. 손 끝 뒤로 보인 풍경은, 낮고 드넓은 구릉지대였다. 그 뒤로 해가 떨어지며 눈부신 햇살이 부드럽게 전해져왔다. “내가 처음 이곳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단체로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이렇게문화재와의 만남은 작고 사소할지 모르나 그 어떤 지식보다도 더욱 알차고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글·박세란 사진·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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