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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야 귀신고래야 너는 지금 어디있니? (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6. 7. 17:02

제목 고래야 귀신고래야 너는 지금 어디있니?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5-16 조회수 128

귀신처럼 나타났다 귀신같이 사라지는 귀신고래
귀신고래 회유해면의 주인공인 귀신고래(학명 Eschrichtius robustus)는 과연 어떤 동물일까. 마치 귀신처럼 무섭게 생겼을 거라고 연상하지만 실은 꼬리지느러미로 물장구를 치는 꼬리치기(lobtailing)를 잘하고, 몸 전체를 수면 위로 비상했다가 떨어지며 수면을 때리는 브리칭(breaching)을 멋지게 하며, 머리에 있는 숨구멍을 통해 물을 3~4미터 높이로 분수처럼 뿜어내는 분기(spouting)도 잘하는 아주 미끈하게 잘생긴 수염고래다.

 


우리는 이렇게 멋진 고래를 왜 귀신고래라고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귀신처럼 나타났다가 귀신처럼 사라지거나, 또는 연안 가까이에서 머리만 살짝 내밀고 있다가 불쑥 튀어 나와 뱃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귀신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우리는 귀신고래를 일본 명칭인 극경 또는 소경이라고 불렀으나 2008년 8월 문화재청 전문가회의와 문화재위원회 회의를 통하여 오래전부터 통용되어오던 본래 이름 ‘귀신고래’로 바로잡았고, 영어 명칭을 적을 때는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영어명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다 자란 귀신고래는 최대 몸길이가 16미터 내외, 몸무게가 자그마치 45톤에 이른다. 귀신고래 몸통의 옆구리, 등, 머리에는 고착생물인 따개비, 굴 껍데기, 조개삿갓, 고래이가 돌처럼 붙어 있거나 부착했다 떨어진 흔적이 많다. 이들 탈·부착 생물들로 인하여, 검은색인 본래 피부가 멀리서 보면 무수히 많은 회색 반점이 덮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귀신고래의 영어명이 그레이 웨일(Gray Whale)이다. 이 석화무늬는 귀신고래마다 그 모양과 분포가 달라 각각의 귀신고래를 구별하는 주민등록증 같은 구실을 한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세계 최초 고래잡이 국가 입증
과거, 우리나라 바다는 고래 천지였다. 이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2004년 4월 BBC 방송 인터넷 판은 ‘한국이 고래잡이 세계 최초 국가’라고 보도하였다. 또한 120년 역사의 세계적인 인류학 학술지 랑트로폴로지(L’Anthropologie)는 그 증거로, 기원전 1,000년 내지 6,000년 선사시대, 그러니까 지금부터 3,000년 내지는 8,000여 년 전 신석기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커다란 바위에 귀신고래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고래 모습과 작살, 부구, 낚싯줄, 고래잡이 배, 고래를 잡는 사람, 포경 방법 등을 새긴 우리나라 국보 제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제시한 바  있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인류 최초의 고래잡이를 10세기 경 스페인 바스크지방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북태평양 포경문화의 발상지는 11세기 경에 시작된 일본 연안의 포경으로 주장되었다. 하지만 작살을 이용한 바스크 포경 방식이나 그물을 이용한 일본 포경술이 이미 수천 년 전에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됨에 따라 세계 포경학계는 우리의 유구한 포경역사에 경탄을 금치 못했고, 우리나라가 고래잡이 종주국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마구잡이로 포획하여 씨가 말라버린 귀신고래요사이 우리나라 삼면의 바다에서 돌고래, 참고래, 밍크고래들이 수십 내지 수백 마리씩 떼 지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귀신고래가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제가 귀신고래를 싹쓸이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외국 학자들이 우리나라 바다에 1,000마리 내지 1,500마리 정도의 귀신고래가 살고 있다고 추정하였는데, 1911년부터 1933년까지 일제가 우리 바다에서 귀신고래를 자그마치 1,306마리나 잡아 씨가 마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 후유증으로 1966년에 다섯 마리를 잡은 기록 이후, 1972년에는 귀신고래가 멸종된 것으로 됐다. 물론 1977년과 2010년 방어진 앞바다에서 각기 두 마리의 귀신고래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었으나, 1972년부터 현재까지 사진이나 실물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이에 고래연구소에서는 2008년 1월부터 현재까지 1천만 원의 현상금을 내걸고 귀신고래 찾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울산 귀신고래 회유해면을 1962년 12월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으나, 귀신고래가 자취를 감춘 이후로 한참동안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1993년 사할린 연안의 필툰 지역에서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귀신고래가 발견되고, 1994년부터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이들의 복원을 시도하여 69마리에 불과하던 개체수가 매년 3%씩 증가하고 있다. 국제포경위원회(IWC) 보고에 의하면 2009년에는 130마리까지 늘어났다. 개체수가 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동해에 귀신고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개연성 높은 아주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귀신고래 찾기는 우리 자부심을 지키는 일
귀신고래는 동해바다의 지표종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핵심종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귀신고래를 찾아 헤매고, 이들이 나타나기를 갈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멸종위기에 처한 귀신고래의 자연생태 회복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고래잡이 세계 최초 국가’라는 자부심, 또한 100여년 전에 미국 탐험가 로이 체프만 앤드류가 100여 종의 고래 중에서 유일하게 ‘Korea’라는 우리나라 이름을 붙인 ‘한국귀신고래(Korea Gray Whale)’를 지켜야 하는 당위성 때문이다.

 


귀신고래는 여름철에 오호츠크해 사할린 연안에서 먹이를 충분히 섭취하여 에너지를 비축한 후,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10월경에 남하하여 우리나라 동해 연안을 따라 11월~1월 사이에 울산 연안을 통과하고, 2월~3월에 남중국해에 이르러 얕은 바다에서 출산한다. 4월~5월경에는 울산 연안을 지나 다시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가 6월경에 오호츠크해 사할린 연안에 도달하는 장장 18,000킬로미터라는 먼 거리를 매년 회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머나먼 길을 매년 왕래하는 귀신고래를 우리 동해에서 하루라도 빨리 만나보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일을 당장 해야 한다. 귀신고래는 조용하고 깨끗한 바다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귀신고래가 자유롭게 회유할 수 있도록 바닷길을 충분히 열어주고, 무분별한 해양개발에 따른 바다 오염, 어망이나 폐선의 몰지각한 바다 속 폐기와 방치, 각종 쓰레기의 불법해양투기 등을 철저히 단속하여 바다를 깨끗이 해야 한다. 또한 먹이가 풍부한 은신처를 마련할 필요성도 있다.


2003년부터 고래연구소가 러시아, 미국, 일본 등과 협력하여 귀신고래 보존과 보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 귀신고래 회유의 미래는 아주 희망적이다. 다만, 지금보다 더 이들과의 관계를 긴밀히 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힘을 실어 준다면, 우리가 이렇게나 기다리는 귀신고래를 동해 바다에서 곧 만나보게 될 것이다. 

 

글|사진ㆍ이홍식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사진ㆍ고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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