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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인간적인 아버지, 애틋한 부정의 사랑 이광사의 편지 (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5. 30. 20:21

제목 너무나 인간적인 아버지, 애틋한 부정의 사랑 이광사의 편지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5-16 조회수 121

 

어린 딸에게 시詩로 부친 부정父情
원교체圓嶠體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부령 땅으로 유배를 간 시기는 그의 나이 50세 되던 해였다. 그는 이후 23년 동안 부령과 전라남도 신지도에서 유배살이를 하다가 생을 마쳤다. 늘그막에 고난을 맞은 이광사는 외딴 유배지에서 죽을 때까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집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많은 편지를 남긴다. 유배지로 떠날 무렵 이광사는 슬하에 어린 딸을 두었다. 오랜 유배생활에서도 이광사는 그 어린 딸을 그리워하였다. 그는 그리운 어린 딸에게 시로써 편지를 보낸다. 그 한 대목이다.

 

 

늘그막에 막내딸을 얻으니, 사랑스럽고 그리움이 이상할 게 없다네/딸 아이 목소리 어찌 그리 맑고, 용모와 맵시 어찌 이리도 고운가/성질은 어찌 그리 슬기로우며, 재주마저 어찌 그리 많은지/지나는 사람 모두 한 번씩 안아주니, 아비로서는 당연히 더욱 사랑스럽네 (중략) 딸 아이 본성 글씨 쓰기 좋아하여, 종이며 먹을 가지고 노는 것 싫증내지 않네/한글을 이미 다 깨쳤고, 진서眞書며 해서楷書도 거칠 것이 없다네/좋은 곡식은 처음부터 그 씨가 다른 법, 붓을 가지고 노는 것 마치 괘卦를 그리듯 하네/나에게 참으로 왕헌지와 같은 딸 있으니, 내 글씨를 이을 사람 바로 너이리.


1756년 2월 그믐, 유배지 부령에서 감기에 걸린 이광사가 이부자리에 누워 적은 시다. 이 편지를 받는 어린 딸의 나이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누워 있노라니 가족이 떠오르고, 누구보다 먼저 어린 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이광사는 어린 딸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맑은 목소리에 빼어난 용모에다 행동거지하며, 여기에 슬기와 재주마저 지녔으니 딸아이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을 정도로 남달랐다. 이광사는 만나지 못하는 딸에 대한 그리움을 너무나도 솔직하게 시에 드러내 놓았다. 더욱이 자신의 재주를 이어받아 글씨에 재주가 있었으니 그의 기쁨은 더욱 컸으리라. 그는 이런 딸을 왕희지의 아들 왕헌지에 빗대고 자신과 어린 딸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으니, 그 감정이 다소 지나칠 정도다. 이광사가 자신의 속내를 이렇게까지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자식 자랑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부정父情은 차라리 너무도 인간적이며, 애절하기까지 하다.

 

어린 딸에 대한 그리움, 편지로 가르치다
이광사가 자랑해 마지않던 어린 딸은 아버지에게 수시로 한글로 편지를 적어 보내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수박을 드시게 하려고 수박씨를 부쳐주었다. 하지만 이광사는 이런 딸을 마냥 그리워하지만 하지 않았다. 딸에 대한 훈육도 잊지 않는다. 


날마다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를 네 손으로 개어 깨끗한 곳에 두어라. 이어 비를 가지고 자리를 깨끗하게 쓸고 머리는 얼레빗으로 빗고, 빗을 빗통에 넣어 두어라. 이따금 거울을 보며 눈썹과 살쩍을 족집게로 뽑고 빗에 묻은 때를 씻어 깨끗하게 해라. 세수하고 양치하며 다시 이마와 살쩍을 빗질로 매만지고, 빗통을 정리하고 세수한 수선은 늘 제자리에 두어라. 무릎을 꿇고 앉아 한글 한 번 읽고 한자 몇 자를 단계에 따라 읽어라. (중략) 일이 없거든 반드시 단정하게 꿇어 앉아 있어라. 두 새언니가 겨를이 없어 정리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자세히 살펴 자주 일어나 대신 정리해라. 새언니가 시키는 일이 있으면, 공손하게 대답하고 바로 일어나 시킨 대로 하되 게으름을 피우지 말거라. 꾸짖는 일이 있거든 새언니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 배우도록 힘쓰며, 감히 노려보거나 성내며 대답하지 말거라.


철부지 어린 딸이 유배지에 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적어 위로하였으니, 이광사는 이런 딸이 눈에 밟히도록 보고 싶었을 법하다. 더욱이 자신이 유배 올 무렵 부인은 장성한 자식에게 가문을 지키기 위한 당부의 유언을 남긴 채 목을 매 자진한 마당에, 딸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더욱 사무쳤음에 틀림없다. 이광사는 어린 딸이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부재로 받을 충격과 부모 없는 자식으로 자랄 수밖에 없는 가슴 아린 현실을 삭이며, 생활의 규범을 편지에 적어 딸에게 보냈던 것이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새언니들에게 모든 일상의 규범을 배우도록 타이르는 세심함마저 보여준다. 이광사는 어린 딸에게 하루 일과를 옆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하나 적어 부정을 실어 보내고 있다. 어린 딸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하여, 그 정성과 마음 씀씀이를 편지에 진하게 드러내었다. 행간에 묻어나는 부정은 너무나 인간적이며, 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넘친다.  

 

글ㆍ진재교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