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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면, 순간의 역사화 (옮겨온 글 문화재청)

왕토끼 (秋岩) 2011. 6. 7. 17:06

제목 한국의 가면, 순간의 역사화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5-16 조회수 116

 

일본 와세다대학 연극박물관의 한국 가면
1930년대 한국가면극의 가면 3세트가 일본 와세다대학 연극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소장되어 있는 가면에는 땀에 절어 있는 흔적이 있으며 가면의 옆(귀)부분에는 가면을 쓰기 위한 줄이 매여 있고 가면을 쓰고 뒷머리를 감추기 위한 천의 탈보가 고스란히 붙어있는 등 매우 양호한 상태로 보아 위와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한국가면극의 가면들이 소장되어 있는 와세다대학 연극박물관은 1928년 설립된 특수박물관   이다. 연극박물관은 정식 명칭인 와세다대학 쓰보우치쇼요박사 기념 연극박물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창설하고 셰익스피어 희곡 번역집을 완간한 쓰보우치쇼요 박사가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연극 컬러판화 약 4만여 점을 보관, 관리하기 위해 연극박물관이 개관하게 되었다.


와세다대학 내에는 대부분 콘크리트의 현대식 교사건물들로 가득 찬 가운데 한 귀퉁이에 색다른 건물이 하나 있다. 뾰족 튀어나온 지붕이며 발코니 덕택에 야외무대가 딸린 서양의 원형극장을 연상케 하는 건물이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대의 포춘 극장을 모델로 설계하였다고 한다. 연극박물관은 연극판화 46,000점, 무대사진 200,000점, 도서 150,000권, 그 외 의상, 인형 등 연극자료 52,000점을 비롯한 수십 만 점에 이르는 자료들이 박물관 창립 후 80년이라는 역사를 통해 구축되어 왔으며 연극·영화인은 물론 문학, 역사, 복식,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와세다대학 연극박물관은 일본연극 뿐만 아니라 세계 연극연구의 메카로서 새로운 발돋움을 하고 있다.

 

 


탈과 가면
가면假面이란 얼굴에 덮어씀으로써 존재를 숨기거나 보호하기도 하고, 다른 인물이나 동물로 변신하거나 정령이나 신처럼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눈에 보이도록 표현된 조형물을 말한다.


가면을 다른 말로 ‘탈’이라고도 하는데, 탈은 가면이라는 의미 이외에 ‘배탈 나다’, ‘탈나다’ 등과 같이 사고가 나서 순조롭지 않음을 의미하는 탈과 통하며 이는 한국가면의 속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즉, 탈(가면)은 탈(사고나 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여겨 일상생활에서 가면을 가까이하는 것은 매우 꺼리게 되었다. 한국가면극은 풍농기원의 주술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본래는 탈(사고나 질병)을 없애는 나儺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면극에 사용했던 가면들은 모두 소각시키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었다. 즉, 가면은 일회용이었던 것이다. 물론 하회별신굿가면과 같이 가면을 신체神體로 모시면서 수호신적인 성격을 갖춘 가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 부적과 같은 기능을 하는 벽사진경의 의미로 사용되는 가면도 있다. 그러한 가면들은 오랜 기간 동안 보존되어왔으며, 제작에 있어서도 매우 정교하고 정성들여 만들어졌던 것이다.

 

 


한국의 가면과 관련된 문화적 뿌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무巫이며 또 하나는 나儺라고 할 수 있다. 무巫는 신을 모시는 행위로서 가면을 착용하는 것이 일종의 신들림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나儺는 신들림이라기보다는 악귀를 쫓아내는 축逐의 개념이 강하다. 무서운 가면을 쓰고 질병이나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방상씨와 같은 기능도 있지만 가면 자체가 악귀로서의 쫓겨나야 될 존재로의 성격이 강하다. 즉 탈은 후자에 속한다고 하겠다.


대체로 탈은 마을 굿과 같이 정기적인 연중행사에 사용되었으며, 사용한 후에는 일상생활에 탈(변고)이 생기지 않도록 탈(가면)을 소각해야 했다. 따라서 일회용 가면은 정교할 필요가 없었고 매우 소박하고 거칠다. 탈(가면)이 하회별신굿의 신의 가면과 달리 정교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가면들 역시 매우 거칠고 조야하다. 나리사와成澤勝씨는 와세다대학 박물관 기획전 프로그램에서 가면이 거칠고 조야한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 가면극을 공연하기에 필요한 경비 조달 등의 어려움에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는데, 물론 그러한 측면도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보다 실질적인 이유는 일회용 탈(가면)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가면의 또 다른 얼굴들
와세다대학 연극박물관 원장목록에 등재되어 있는 한국가면은 전체 약 100여 점에 이른다. 하지만 그 중에는 최근에 구입한 가면이나 박물관 한국인 방문자들이 선물로 전달한 복제가면들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문화재급으로 인정되는 가면들은 1930년대에 제작되고 사용되었던 기증 소장품이다. 이 가면들은 2008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된 도록에 소개되어 있다. 

 
와세다대학 연극박물관 소장원보에 의하면 크게 세 명의 기증품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1935년 10월 11일 수입 일자로 되어 있는 정인섭(鄭寅燮, 1905.3.31~1983) 씨가 기증한 산대계통의 가면 21점, 둘째는 후지모토 히로야스藤本寬寧씨가 1939년 1월 10일 기증한 산대계통의 가면 22점, 그리고 1943년 9월 28일 후지이 모토코藤井元子씨가 기증한 해서탈춤의 가면들이다. 정인섭과 후지모토가 기증한 21점과 22점은 현재 양주별산대의 사용가면 수와 거의 같다. 또 양자 모두 사용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희가 끝나고 난 직후, 소각하기 직전에 입수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인섭씨가 기증한 산대놀이계통의 가면 21점이 정확하게 어느 지역에서 거행된 탈춤의 가면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면의 제작기법으로 보아 송파산대놀이와 매우 유사하다. 가면 재료는 한지로 만든 종이 탈이다. 흙이나 나무 등으로 탈의 모양을 양각으로 만든 다음 그 위에 한지를 여러 겹 발라 모형에서 제거한 후 구멍을 뚫고 색칠을 하는 제작방식을 취하고 있다. 배면에는 가면의 이름이 적혀있고, 관리번호 스티커가 붙어 있다. 관리번호스티커에는 등록번호와 입수일인 소화 10년(1935) 10월 11일 그리고 기증자인 정인섭 이름이 적혀 있다.


또 후지모토 야스히로씨가 기증한 가면은 한지를 덧댄 종이가면이며 그 규모에 있어서 정인섭 기증의 송파산대계통 가면들과 유사하지만  가면의 제작 특징 중의 하나인  코를 송피(소나무껍질)로 만들어 붙이고 그 위에 여러 겹의 종이(한지)를 덧붙여 만든 수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현재의 양주별산대 가면 제작기법과 매우 유사하다. 현재는 주로 바가지탈인데 비해 종이 탈이다.

 
그리고 후지이 모토코씨가 기증한 가면들은 현재 한국 국내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으로 제작되어 있다. 남성가면에는 단청도색법이나 구상적인 추상 문양에 의한 문신적인 얼굴장식이 그려져 있어 가면의 제작자 혹은 탈춤 연행자들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 가운데는 봉산탈춤의 먹중 가면도 섞여 있는데  가면의 눈과는 연기자 눈이 일치하지 않아 연기자의 눈 위치에 맞추어 구멍이 따로 뚫려 있다. 특히 이마가 가면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며 이마에 상上자가 쓰인 남강노인 가면 등은 가면의 신앙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어 가면극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할 만한 귀중한 자료라고 하겠다.


일본 와세다대학 연극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가면들은 한국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로  한국 탈춤의 현장성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으며 소박하고 투박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가면들이다. 

 

 

글ㆍ남성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사진ㆍ국립문화재연구소, 일본 와세다대학 연극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