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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순종 가계도(1874-1926)

왕토끼 (秋岩) 2011. 6. 3. 21:36

제27대 순종 가계도

고종 - 명성왕후

제 27대 순종

장남 : 순종(1874-1926)

재위기간 : 1907.7-1910.8(3년 1개월)

부인 : 2명 / 자녀 : 없음

1부인

순명효왕후 민씨

자식없음

2부인

순정효왕후 윤씨

자식없음

 

 

 

 


 money.gif 주요 정치사

        1. 망국의 황제 순종과 대한제국의 식민지화

        2. [순종실록] 편찬

 money.gif 역사 개요

▣ 순종 (純宗)

  이름 척(拓). 고종의 둘째 아들. 어머니는 명성왕후(明成皇后) 민씨. 비는 순명효황후(純明孝皇店) 민씨( 뒷날의 純明孝皇后). 계비(繼妃)는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윤씨. 1875년(고종 12) 2월 세자가 되었으며 1897년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1907년(융희 1) 일본의 압력과 이완용(李完用) 등의 강요로 헤이그 밀사사건의 책임을 지고 고종이 양위하자 즉위하였다.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황제(皇弟)인 영친왕(英親王)을 황태자로 책립하였고, 그때까지 거처하던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같은 해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을 체결하였고, 이에 따라 일본인의 한국관리 임용을 허용하여 사실상 국내정치는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8월 1일에는 다시 일본의 압력으로 한국군을 해산하였으며, 12월에는 황태자가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고, 1908년 동양척식회사(東洋拓殖會社)의 설립을 허가하여 경제침탈의 길을 열어주었다. 1909년 일본은 한국의 민정(民情)을 살펴가며 국권탈취공작을 추진하여 7월에 군부(軍部)를, 10월에는 법부(法部)를 각각 폐지하여 정치조직을 통감부 기능 속에 흡수하였다.

  통감(統監)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본국으로 간 후, 소네 아라스케[曾쌥荒助]를 거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후임으로 오면서부터 더욱 야욕을 드러내자, 각지에서 나라가 망함을 통탄하고 조정 대신들의 무능을 비난하여 암살을 기도하기 시작, 동년 10월 안중근에 의하여 이토가 암살되고 12월 이완용이 습격을 당하였다. 일본은 친일매국노 이완용 ·송병준·이용구(李容九) 등을 중심한 매국단체 일진회(一進會)를 앞세워  1910년 8월 29일 국권이 강탈하여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망하고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본은 순종을 창덕궁(昌德宮)에 있게 하고, 이왕(李王)이라 불렀다. 1926년 4월 25일 창덕궁에서 죽었으며, 능은 경기도 남양주 금곡의 유릉(裕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