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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대 철종 가계도(1831-1863)

왕토끼 (秋岩) 2011. 6. 3. 21:33

제25대 철종 가계도 

 

영조-영빈 이씨

장조(사도세자)-숙빈 임씨

은언군 3남

전계대원군-용성부대부인

제 25대 철종

3남 : 철종(1831-1863)

재위기간 : 1849.6-1863.12(14년 6개월)

부인 : 8명 / 자녀 : 1녀

1부인

철인왕후 김씨

자녀없음

2부인

귀인 박씨

자녀없음

3부인

귀인 조씨

자녀없음

4부인

숙의 방씨

자녀없음

5부인

숙의 범씨

1녀

6부인

궁인 이씨

자녀없음

 

 

 

 

 

 

 

 

영혜옹주

 

 

 

 

7부인

궁인 김씨

자녀없음

8부인

궁인 박씨

자녀없음

 

 

 

 

 money.gif 주요 정치사

         1. 농부에서 제왕이 된 강화도령 원범

         2. 세도 정권하의 철종의 친정

         3. 60년간의 안동 김씨의 세도 정권

         4. 삼정의 문란과 민란의 발생

         5. 조선 말기의 사상운동 - 동학의 탄생

         6. [철종실록] 편찬

 money.gif 역사 개요

▣ 철종 (哲宗)

  휘(諱) 변(長). 초명 원범(元範). 자 도승(道升). 호 대용재(大勇齋).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광(泥)의 셋째 아들. 모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 비(妃)는 철인왕후(哲仁王后) 김씨(金氏). 1844년(현종 10) 형 회평군(懷平君) 명(明)의 옥사(獄事)로 가족과 함께 강화(江華)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純祖妃)의 명으로 궁중에 들어와 덕완군(德完君)에 책봉되었으며, 1850년 19세로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즉위 후 대왕대비 김씨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였으며, 1851년 대왕대비의 근친인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를 삼았다. 문근은 국구(國舅)로서 정권을 장악,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하였다. 1852년부터 왕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었다. 1853년 봄에는 관서지방의 기근대책으로 선혜청전(宣惠廳錢) 5만냥과 사역원삼포세(詞譯院蔘包稅) 6만냥을 진대(賑貸)하게 하였고, 또 그해 여름에 한재가 심하자 재곡이 없어 구활하지 못하는 실정을 안타까이 여겨 재용(財用)의 절약과 탐묵(貪墨)의 징벌을 엄명하기도 하였다. 1856년 봄에는 화재를 입은 약 1, 000호의 여주의 민가에 은자(銀子)와 단목(丹木)을 내려주어 구활하게 하였고 함흥의 화재민에게도 3, 000냥을 지급하였으며, 이해 7월에는 영남의 수재지역에 내탕금 2, 000냥, 단목 2, 000근, 호초(胡椒)200근을 내려주어 구제하게 하는 등 빈민구호책에 적극성을 보였다. 그러나 정치에 어둡고, 김씨 일파의 전횡(專橫)으로 삼정(三政)의 문란이 극도에 달하여 극심한 민생고를 유발, 경상도 진주(晉州), 함경도 함흥(咸興), 전라도 전주(全州) 등지에서 대규모의 민란이 일어났다. 조정에서는 속출하는 민란을 근본적으로 수습하려는 의욕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회정세에서 최제우(崔濟愚)가 주창한 동학사상은 학정에 허덕이는 민중 속으로 놀라운 속도로 파급, 새로운 세력으로 확대되었으며, 만민평등을 주장하는 천주교의 사상도 일반 민중은 물론 실세(失勢)한 양반층에까지 침투되어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철종은 결국 재위 14년간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색에 빠져 정치를 바로잡지 못한 채 병사하였다. 능(陵)은 경기도 고양의 예릉(睿陵:高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