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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아로새긴 우리 역사의 흔적 (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2. 21. 22:08

제목 러시아에 아로새긴 우리 역사의 흔적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2-14 조회수 71

 

 

러시아 땅의 우리 문화재
러시아에도 약 3천여 점의 한국문화재가 소장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으로는 쌍트 페테르부르그 인류학민족학 박물관, 과학원 동양필사본연구소, 러시아 민속박물관,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State Museum of Oriental Art, Moscow) 등이 있다. 이 글에서는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에 소장된 한국문화재를 소개하겠다.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은 1918년 개관되어 러시아 내에서는 유일하게 동양미술품을 수집 연구하는 박물관이다. 이란, 터키, 인도,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및 코카서스 등 여러 민족의 문화예술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소비에트 시절부터 모스크바 등 러시아 내 학생들의 세계사 및 지리과목관련 필수 견학코스 중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이 박물관에 약 500여 점의 한국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작품 개개의 특징도 주목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것은 수집경위이다. 그 수집과정은 크게 다음의 몇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수집과정과 주요 유물
1884년 한국과 러시아가 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양국의 관계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여 한국을 연구하기 위해 파견된 원정대와 러시아 학자, 여행가들에 의해 상당수의 한국유물이 수집되어 기증되었다고 한다.1904년 러·일전쟁의 발발로 러시아가 패함으로써 한국에서 직접 문화재를 수집할 수 있는 길은 크게 제한되었다.


그리고 세계대전 이후 북한과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1950년대 북한으로부터 많은 유물이 러시아로 유입되었다. 1957년 당시 북한의 문화부가 러시아 국민들에게 선물한 고구려 와편과 고려청자, 민속의상, 장신구, 가구 등 약 200여 점의 한국 미술품과 일상생활용품이 그것이다. 특히 고려청자와 조선시대 장신구 등은 1953년부터 1957년까지 김일성 북한 주석이 스탈린에게 선물한 것들이다.


1976년부터는 연해주지역에 구입 원정대를 파견하여 사할린 한인밀집지역의 민족문화풍습을 대표하는 민속의상, 장신구,자기와 옻칠제품 등을 수집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들은 한인들이 수십 년 동안 가보로 보관해 오던 것들로 조국을 떠올리며간직해 오던 것이다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문화재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을 비롯해 고려시대 청자와 금속공예품, 조선시대 회화와 백자, 그리고 가구와 복식, 장신구 등을 포함하고있다. 이들 문화재 중 주목되는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조선후기 사대부의 초상화 3점과 기산箕山김준근金俊根의 풍속화, 근원近園김용준金瑢俊(1904~1967)의 승무를 들 수 있다.초상화 3점은 숙종대부터 영조년간에 대제학을 지낸 이덕수李德壽 (1673~1744)의 초상화와, 영조년간 형조판서를 지낸 황흠黃欽 (1639~1730)의 초상화, 숙종년간 대사간, 대사헌, 지중추부사 등 관직을 두루 거친 신임申(1642~1725)의 초상화이다. 이들 초상화는 누구에 의하여 그려졌는지는 알 수 없다.조선후기 대표적인 풍속화가인 기산 김준근의 생몰년대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 말 원산, 부산, 제물포 등 개항장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풍속화를 그려주었던 화가다. 그가 남긴 풍속화는 약 1,000여 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상당량이 유럽에 소장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박물관에 소장된 풍속화는조선후기의 생업, 놀이, 의례, 형벌 장면 등 총 42점으로, 그림의 우측 상단에 한글로 제목이 적혀 있어 어떠한 장면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당시 서민의 생활모습과 민속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문화사적으로나 사료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월북화가 김용준의 승무는 전통기법을 바탕으로 간결한 선과 대담한 구도로 간결하게 대상의 몸동작을 생동감 있게그렸다. 이 작품은“1957년 6월 단오절이 지난 뒤 사흗날 미산 초당에서 김용준이 그렸다”는 묵서가 있다. 월북화가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1904~1967)은 경북 선산출생으로, 20세기 화단을 수 놓은 화가이자 비평가, 미술사학자였다. 그는 1925년 경성중앙 보통학교와 1931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광복후 서울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를 지냈다. 1950년 월북하여 평양 미술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도자기는 철화청자, 상감청자 등의 고려청자를 비롯하여
19~20세기의 광주 분원산分院産순백자와 청화백자들이 있다. 복식은 대부분 20세기 초반의 남녀 일상복으로, 북한지역과 연해주지역을 통해 유입된 복식들이다. 남한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방한용모자 등이 눈에 띈다. 이외에도 조선 후기의 갑옷과 투구가 주목된다. 갑옷은 붉은 색 융으로 겉감을 하고 앞뒷면에 금동두정頭釘을 고정시킨 두정갑頭釘甲이다. 양쪽 어깨에는 금동용 장식을 부착하였고, 아랫부분에는 앞뒤 4개의 금동사자장식을 대칭되게 배치하였다. 투구는 옻칠을 한 가죽으로 몸체를 만들어 앞면에 두 마리의 용과 뒷면에 두 마리의 봉황을 대칭으로 장식 하였으며, 챙 아래 이마가리개 중앙에‘원수元帥‘의 명문을 새겨 넣었다. 이처럼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 정교하게 제작
된 갑옷과 투구는 국내외를 통틀어 몇 점 되지 않는 희귀한 것이다.

 

 

 

문화교류, 문화재의 깊은 이해가 길이다
이밖에도 목가구로 조선 후기부터 근대시기에 이르는 것과 1950년대 전후의 북한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많다. 특히 느티나무로 만든 조선후기의 12각 호족반虎足盤은 상판의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고 통목의 다리를 지니고 있는 수작으로 꼽을 수 있다.


최근 조선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중신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 당시 청나라 실권자 리훙장李鴻章(1823~1901)에게 보낸 친필 편지 9통이 중국문서 더미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다. 이유원이 1875년 명성황후가 출산한 원자(순종)의 세자 책봉을 요청하기 위해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리훙장에게 준 첫 서신을 비롯해 1880년까지 보낸 것들이다. 조선에 대한 관심을 당부하고, 병기 제조와 군사훈련 등을 도와달라는 내용들로, 함께 보낸 선물의 목록도 들어있다. 이유원과 리훙장이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된 편지는 모두 17통인데 그 내용은 이미 알려져 있었으나 실물이 확인된 것은 이 박물관의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편지들이 어떻게 러시아로 흘러가 국립동양예술박물관에 보관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우리나라와 러시아는 2010년에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작년에는 한국의 국보급유물이 러시아 에르미타 주박물관 1층 중앙 전시실에서 전시되고, 러시아의 유물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되는 등 다양한 문화교류전이 열리기도 하였다. 앞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데 문화재가 그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한·러 양국의 문화교류가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글 | 사진·박대남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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