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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서 조선으로, 그리고 청자에서 백자로 (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2. 7. 18:58

제목 고려에서 조선으로, 그리고 청자에서 백자로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1-19 조회수 112

 

 

역사의 흐름 속 도자문화

 

우리나라의 경우, 청자에서 백자로 바뀌는 시기는 14세기부터 15세기에 걸치는 때로써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정치적으로 왕조가 바뀌는 격변의 시기였으며 사상적으로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는 전환의 시기였다. 바로 이 기간에 도자문화陶磁文化도 청자에서 백자로 이행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려-불교-청자’에서 ‘조선-유교-백자’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 같다. 그러나 도자의 색色은 왕조나 종교와 인과관계를 갖지 않는다. 청자를 대체한 백자는 물리적 화학적 기능은 물론, 장식 및 조형 등 모든 요소에 있어 한 차원 높아진 고품위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청자나 분청에 비해 중국의 새로운 백자가 갖는 여러 장점을 중요하게 보고 고려 말 14세기의 혼란에서 벗어나 새로운 왕조가 안정되는 시기인 15세기 전기에 새로운 백자를 적극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 것이다. 

 

 

 

새로운 전환점, 변화를 낳다

 

우리는 라말여초羅末麗初인 9-10세기에 중국의 선진한 청자기술을 적극 수용한 후 12, 13세기 절정기에 이르러 동아시아 세계에서 ‘천하제일 비색翡色청자’라거나 ‘천공술天工術’과 같은 평가를 받았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14세기 전반, 중국 경덕진요慶德鎭窯에서 새로 개발한 경질硬質백자의 점유율이 높아지는 반면, 중국청자 제작의 중심인 용천요龍泉窯가 위축되기 시작하면서 세계도자문화의 중심이 청자에서 백자로 전환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선진문화 수용에 적극적인 우리나라에서 려말선초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당시 조선의 백자는 청자보다 고온(1250℃)에서 구워낸 강도와 탄성이 높은 자기질磁器質 경질백자로서 유약과 태토를 포함한 재질이 경덕진요의 경질백자에 가깝게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이다. 사실 청자에서 백자로의 전환은 더 순수한 재료, 더 높은 기술, 더 견고하고 청결하며 실용적인 도자를 만들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였다.

14세기 말기에 청자의 다량생산 결과 조형적 완성도가 떨어졌던 고려 상감청자는 1420년대에 와서 고려식과는 다른 재질과 조형, 장식기법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하는데, 바로 이것을 고려의 상감청자와 구분하기 위하여 별도로 분粉靑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사실 생산규모로 보면 15세기는 분청의 시대였다.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과 같은 형세로 분청을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백자는 아주 특별히 제한된 곳에서 중국 경덕진의 상품백자에 가까운 절예품이 왕실 주도로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며 세종 초년인 1425년에는 중국황실에 보낼 정도로 수준이 높아져 있었다. 

분청이 관청과 사대부 및 일반 백성에까지 폭넓은 수요층을 대상으로 하는 다량생산의 도자라면, 백자는 왕실의 중심에 있는 특별한 도자라고 말할 수 있다. 점차 백자의 장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중앙관청과 사회지도층이 백자를 선호하게 되고, 이때부터 중앙관요에서 왕실과 국가의 대의명분을 위한 각종 백자 의례기儀禮器와 생활필수품을 국가차원에서 생산 관리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분청 생산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고급 소비자인 중앙관청과 사대부 등 상류층은 선망의 대상이었던 백자로 방향을 바꾸었고, 따라서 분청의 생산량과 질적 수준은 급락하게 되었다. 결국 분청의 종말은 청자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백자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예고를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다. 

 

 

완성의 미학, 청자

 

고려의 시호詩豪 이규보(李奎報, 1268-1241)가 아름다운 청자는 “열에서 하나를 뽑을 만큼 어렵다揀選十取一” 라면서 그 솜씨는 “하늘의 조화天工術를 빌린 것”이라 한 말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완성미를 청자에서 발견하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치 하늘의 조화를 빌려 만든 것 같은 고려청자의 ‘완성미’는 당시 동아시아 세계에서 절대 동경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청자시대에 한국사회는 물론 중국의 상류사회에서도 고려청자를 향한 동경과 찬사가 높았는데, 이러한 당시 풍조는 청자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려 ‘완성미’를 획득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청자에 나타나는 비색 유태釉胎와 조형의장의 특징들은 불교적 이상세계를 동경한 고려귀족사회의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이며, 이러한 미적 특징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마음을 정서적으로 순화시켜 안정을 갖게 하는 예술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아낌의 미학, 백자 

 

조선시대 고급백자 제작처는 관요이며 제작 주체는 왕실과 사대부였다. 물론 실제 제작하는 기능적인 일은 전문 사기장의 몫이었지만 품질과 형태 등 조형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까지 그들에게 모두 맡겨졌던 것은 아니다. 실제 제작 주체이며 소비 주체, 그리고 조형 결정의 주체는 성리학적 교양과 감성을 갖춘 사회지도층인 조선의 사대부들이었다.

그들은 나름의 대의명분으로 조선개국 초기에 수립된 새로운 통치이념과 정연한 질서의식을 이상으로 하고 이것을 엄격하게 계승하는 것이 지식인으로 격조와 품위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치를 배격하고 절제와 지조를 근본으로 정신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을 닦는 엘리트들의 당연한 입장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백자에는 중국과 일본, 유럽제국의 그것과 같이 완벽함이나 호화로운 장식성에 집착하는 어떠한 요소도 눈에 띠지 않는다. 오히려 원료가 정제된 고품위의 재질로 완벽한 경질백자 수준에 도달해 있고, 기종器種은 단순 간결하고, 장식적 요소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준수한 형태를 기준으로 하되, 순백색 바탕을 존중하였다. 

꼭 필요한 경우 운룡雲龍이나, 화조花鳥, 산수山水, 사군자四君子와 같은 회화적 소재를 청결을 상징하는 푸른색 안료를 써서 절제節制의 과정을 통하여 함축된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정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넓은 백색의 공간은 최소한으로 표현한 조형의 의미를 오히려 확대시키는 동시에 무한의 상상력을 통한 미적 체험의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이렇게 다듬어진 백자의 절제된 조형은 감성을 공감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감상자의 지적 상상력을 통해 재창조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자, 그 창조적 생명의 힘

 

우리나라의 려말선초 기간은 청자에서 백자로 바뀌어 가는 과도기였다. 청자와 백자가 조형정신에서 큰 차이가 있음은 고려가 귀족중심의 신분사회이며 조선이 사대부 중심에 계급사회라는 말만으로도 쉽게 설명이 가능해진다. 청자에서 보는 초정밀, 고밀도의 요소들은 일품一品 제작에 필수적 요소들이다. 고급 소비자가 극소수의 왕공귀족으로 제한되어 있는 고려적 환경에서 비색청자와 상감청자의 조형정신은 고밀도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조선은 혁신적으로 개선된 경질백자를 보다 폭넓은 사회계층에서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었고, 고급소재의 다량생산이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책의 수행자인 사대부들의 성리학적 근검절약의 조형정신이 그대로 백자에 반영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며,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청자와 백자의 길은 처음부터 달랐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우리 청자와 백자에서 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미의식을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물질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자연의 미’, 제작자에서 감상자로 이어지는 재창조의 힘인 ‘생명의 미’라는 주제에 대한 설명은 가능하다.

 

우리나라 청자와 백자의 절예품들에 나타나는 공통적 특징은 유약과 태토는 물론 장식소재가 숨김없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원료 고유의 성질, 즉, ‘대자연의 일부로서’ 흙胎土의 물성物性을 인공적으로 변질시키지 않고 자연 상태로 나타낸다는 점에서 ‘자연의 미’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간결하고 선명한 장식과 넓은 여백을 조형적 특징하고 있는데, 그럼으로써 문양이 갖는 의미는 오히려 확대되고 여백은 상상력을 통한 미적 체험의 공간으로 활용되면서 창조적 생명의 힘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미’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글 / 사진  최건ㆍ전 경기도자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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