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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尊像의 受難 [문년순]

왕토끼 (秋岩) 2010. 4. 27. 07:20

문화재칼럼
佛尊像의 受難 [문년순]
2010-04-26 오후 05:12

  
  붓다(佛陀 : Buddha)는 생존해 있던 때부터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받았고 그를 지칭할 때, 공경 받아 마땅하다는 뜻의 ‘응공(應供)’이란 별호가 있었다. 이외에도 사람을 잘 다룬다고 하여 ‘조어장부(調御丈夫)’ 진리로부터 온 진리 그 자체라는 뜻의 ‘여래(如來)’ 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정변지(正遍知)’ 아는 것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명행족(明行足)’ 가장 훌륭하게 완성된 자라는 ‘선서(善逝)’ 세간을 완전히 아는 자라는 뜻으로 ‘세간해(世間解)’ 최상의 인간이란 뜻의 ‘무상사(無上士)’ 신들과 인간의 스승이란 뜻의 ‘천인사(天人師)’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라는 ‘세존(世尊)’등으로 존칭되고 있다. 이러한 최상의 존칭만 보아도 그가 ‘인류의 스승’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붓다 入滅 500여 년(약 1세기경)후 그의 가르침을 기리고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肖像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즉 붓다의 모습이 그림과 조각으로 만들어져서 후학들의 수행처에 봉안되기 시작하였다. 스승의 초상을 보면서 나태해지려는 수행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뜻에서였다. 여러 모습의 佛尊像은 붓다의 기능을 분화시켜 나타낸 ‘상징체’이므로 상징의 궁극적 본질은「붓다」로 歸一된다. 따라서 사찰에 봉안된 佛尊像은 예술이면서 예술을 뛰어넘는 심오한 종교세계의 표상인 것이다. 근대 이후 이들 존상은 오랜 역사성으로 인하여 자연히 문화적 財寶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재보의 가치가 높게 되자 곧 재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위작이 만들어져 왔음은 이미 식상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불존상의 위작은 日人 수집가를 겨냥했던 일제 강점기에 다양한 재료와 크기로 많이 만들어졌으나, 해방이후 잠시 멈추는 듯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삼국시대 혹은 통일신라시대의 소형 금동불상을 모방한 위작들이 꾸준히 보이고 있었는데, 최근에 이르러 木材나 石材로 된 중·대형 위작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는 수요자 중심인 경제흐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즉 기존 박물관의 다양한 유물 확보와, 계속되는 지방 박물관의 건립, 전통사찰의 지정 등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중·대형의 위작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심히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오래된 유물의 필수인 세월의 흔적을 만들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가해진 약품이나 오물의 악취, 변색, 얼룩, 그리고 때로는 마치 쓰레기를 방불케 하는 허위 복장물이다. 이런 尊像들은 세월의 때를 만들기 위하여 가혹한 고문(?)의 과정을 마치고 우리들 앞으로 내밀어진다. 아무리 點眼(예배대상으로서의 의식)을 하지 않았다 해도 분명 인류의 스승인 붓다의 초상으로 만든 것인데, 단지 금품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이런 행위는 스승 붓다에 대한 모독이요, 문화재와 학문을 어지럽히며, 역사에 자신의 죄를 유물로 남기게 되는 무지의 극치이다.

또 불교회화에 대한 변형은 더욱 놀랍다. 사찰에서 몰래 가지고 나온 대형의 불화를 부분적으로 잘라서 표구해 판매한다. 이런 행위는 위작을 만드는 것 보다 더 나쁘다. 종교적으로나 문화재보호 측면에서 완전한 파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사찰에서 불상을 조성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숭고한 의식이다. 『造像經』에는 엄격한 조상법식이 있으나, 현재는 다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100여 년 전까지만 하여도 도량에 따라서는 조성에 직접 참가하는 讀經僧과 佛母들은 조성 기간동안 매일 목욕하고 깨끗한 옷을 입으며, 禮佛精勤으로 邪氣의 접근을 막는 의식을 올린 후에 조상소로 나간다. 술과 육식, 오신채(자극성 강한 채소)는 물론이요 무엇보다 不殺生戒는 철저히 지킨다. 일상적 생활을 금지하고 되도록 ?言한다. 작업에 사용하는 주된 손은 신성시하여 천으로 감아서 목에 걸고 있는데 불상조성 외 무심코 다른 일에 사용됨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도량에는 대중들의 讀經儀式이 종일 이어지고 사방 주변과 淨廊(화장실)을 항상 깨끗하게 청소하며, 香花의 供養도 계속된다. 공양간(주방)에서도 밥알 하나, 콩나물 조각하나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 대중이 모두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야흐로 현세 불모로부터 태어날 부처님의 탄생을 돕는 것이다. 그래서 불상과 불화의 조성기(造成記)에는 사부대중의 명단이 한명도 빠짐없이 기록된다. 모두 부처님의 탄생에 一助했다는 뜻이다. 위계질서가 엄격했던 사찰에서 최하위의 정낭 지기(淨桶:화장실 청소 담당)나 불목지기(負木:땔감나무 담당)가 최고 위계인 大德法師와 함께 나란히 기록에 오르는 것이다. 이렇게 엄숙한 환경과 정신으로 조성된 불존상은 불교를 따르는 불자는 물론이요, 造像 자체로서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 내 부모나 존경하는 스승의 사진도 소홀히 함부로 취급하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 민족이 1600여 년의 세월 동안 생활의 지침으로 삼으면서 수많은 정신문화 소산을 남긴  불교의 존상을 다만 재화 확보의 수단이 된다고 하여 의미 없는 물질처럼 취급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모독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어쩌랴, 이 시대는, 붓다의 그 해맑고 향기로운 涅槃樂의 미소 대신, 온갖 고문(?)을 겪어 혼백이 빠져버린 멍한 눈빛의 허수아비 불상들이 이곳저곳에서 태어나고 있으니, 하루빨리 이런 일이 없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희망일까? 혹자는 이런 희망을 비웃어 말하되, 붓다가 가르치기를 ‘인연으로 만들어진 일체의 현상은, 꿈·환상·물거품·그림자와 같고, 이슬이나 번갯불 같은 것이라(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했다며, 한 점 구름, 한 줄기 바람처럼, 우리들 살다 떠난 자리에 ‘유물’이란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며 항변할 것인가?

 



▲ 문화재청 부산국제여객부두 문화재감정관실 문년순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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