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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 (同像異夢) [최은령] 국보급 반가사유상

왕토끼 (秋岩) 2010. 4. 19. 18:56

문화재칼럼
동상이몽(同像異夢) [최은령]
2010-04-19 오후 03:55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지금의 용산으로 이전하기 전, 국보 제78호와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 두 작품이 한 자리에 전시되었다. 불교조각실에서 이 두 작품만을 나란히 전시하는 특별공개 전시회인데다 사진촬영까지 할 수 있는 기회라서 전시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지금도 그날의 경건했던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넓은 공간에 단 두 작품만을 배치하고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던 전시실은 조심스런 발자국소리와 기침소리, 카메라의 후레쉬만이 정적을 깨울 뿐이었다.

용산에서 새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했을 때 관람객을 대상으로 전시품에 대한 관심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신라금관, 백제 금동대향로와 함께 금동반가사유상이 수위를 다투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해외에 한국문화를 홍보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국보 제78호와 제83호 금동미륵반가상을 주제로 한 영문도록『Eternal Images of Sakyamuni : Two Gilt-Bronze Korean National Treasures』를 출간하였다. 이 두 작품은 한국의 독창적인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서 여러 차례 해외순방길을 다녀오기도 하였고, 1998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한국실 개관 기념 특별전에 국보 제78호가 출품되었을 때는 300억원짜리 보험에 가입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특히 국보 제83호는 일본 교토[京都]의 코류지[廣隆寺]가 소장하고 있는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반가사유상과 매우 닮은 모습이어서 제작국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일본의 목조반가사유상 목재가 한국산 적송이라는 점이 밝혀져 제작국문제는 이제 종식된 상황이다.

너무나 닮은 듯 다른 국보 제78호와 제83호는 완벽한 조형미, 정교한 주조기술, 입체적인 옷주름 등 그 어떤 찬사와 수식어도 부족하지만 그 중 단연 으뜸은 미소라고 할 수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의 미소는 사유하는 가운데 표현된 신비로운 미소이다.

사유(思惟)란 사전적 의미로는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로 철학에서는 개념·구성·판단·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 즉 사고(思考)와도 같은 말이다. 사고(思考)는 항상 누구나 겪는 자명한 행위로서 R.데카르트는 사고를 존재의 첫 번째 표시라고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새로운 타당한 판단인 추리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고 하였던 만큼, 인간을 존재하게끔 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작용이다.

그런데, 사유하고 있는 자태의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은 인간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다. 국보 제78호와 제83호와 같은 삼국시대의 반가사유상은 불교의 미륵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57억 년 후에 세상에 출현하여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이다. 이러한 미륵불이 왼발은 내려서 작은 연좌(蓮座)를 밟고 오른발은 그 무릎 위에 얹고서, 왼손으로 그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어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괴고 있는 모습이다. 게다가 온화한 얼굴에는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사유하고 있다.

우리의 금동미륵보살반가상과 비슷한 자태는 로댕의 유명한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데, 나체로 돌 위에 앉아 손으로 턱을 괴고 아래를 쳐다보는 남성을 조각한 작품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원래 단테의 소설에 영향을 받아 로댕이 진행한 거대 조각작품인 <지옥의 문>의 일부분에서 출발하였다. <지옥의 문>의 중앙에 있는 이 누드의 남성은 자신의 발 아래로 펼쳐지는 지옥의 풍경,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등장하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와 <우골리노와 아들들> 등 저주받은 인간 군상들을 힘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작품은 지옥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기 전에 자신의 운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긴장감 있게 표현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품 중 하나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동·서양의 다른 문화권을 대표하는 조각작품으로, 청동으로 만든 동일한 제재와 사유하는 모습이라는 주제 등 다양한 면에서 관련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사유의 세계는 엄연히 다른 차원이며 또한 다른 존재의 사유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인간을 형상화한 모습이고,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구제받지 못한 인간을 다시 구제하기 위한 미륵불인 초월자로서 사유하는 형상이다. 그래서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신비스런 미소로 손가락으로 가볍게 턱을 괴고 있는 반면, 생각하는 사람은 무겁고 고독한 표정으로 턱을 손등으로 받쳐 든 채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과 <미륵반가사유상>은 종교적 근원과 제작 동기에서 물론 차이는 있지만, 인간과 초월자의 각기 다른 사유(思惟)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자와 구원하는 자의 표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두 조각상은 같은 모습의 다른 생각, 즉 동상이몽(同像異夢)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처럼,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조급해진 몸과 마음을 잠시라도 사유에 잠겨 나를 편히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는 건 어떨까.


 
▲ 문화재청 대구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최은령 감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