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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어법 골살의 뛰어난 생태성

왕토끼 (秋岩) 2010. 4. 19. 19:00

월간문화재사랑
전통어법 돌살의 뛰어난 생태성
2010-04-08 오후 04:21



 
인류가 창조해 낸 자연친화적 어업방식

달과 해와 지구의 역학관계가 빚어내는 조차는 그야말로 신의 선택, 우주의 선택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들 신의 선택, 우주의 선택을 역이용하여 고기를 잡기 시작하였다.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된 어민들의 조석·조간대에 관한 인지체계는 인류 역사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끌어 오게 한 저력이기도 했다. 지속가능한 사회란 미래 세대의 번영을 파괴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사회를 뜻한다고 볼 때, 어민들의 조석·조간대에 관한 자연적 인지체계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어법을 채택함으로써 수준 높은 생태적 관점에 서있는 셈이다. 조석에 대한 어민의 인지는 ‘물때’라는 상징체계로 나타난다. 돌살은 물때를 전제로 하여 성립되는 어법이며, 돌살의 현주소도 조간대이다. 따라서 돌살은 물때를 맞추지 않고는 볼 수 없다. 물밑에 숨겨진 비밀처럼 간직되어 있다가 날물에 제 모습을 드러낸다. 조석에 의해 하루 두 번 드러나는 조간대에 의지하면서 이루어지는 돌살어법은 인류가 창조한 가장 오래된 조석이용 어업이다.

 


자연의 규칙과 흐름을 따르던 돌살    

돌살어법은 그 본질상 서두르거나 무리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연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오고가는 물고기들을 원초적 방법으로 잡을 뿐이다. 이른바 ‘현대적 어법’이 의미하는 질기고도 섬세하고, 촘촘하기 이를 데 없는 그물코가 뿜어내는 집단절멸의 ‘싹쓸이’ 공포와 살기가 돌살에는 애시 당초 들어설 자리가 없다. 만약, 조수간만의 차이가 없다면? 두말할 것 없이 돌살은 존재할 수 없다.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조차가 매우 크다. 조차가 극심한 황해는 북쪽으로 갈수록 커지는 바, 황해 자체가 좁고 긴 만灣이라는 사실과 관계있다. 조차 못지않게 중요한 조건이 적절한 기울기다. 용암이 바닷가로 흘러들어 완만한 해변이 형성된 제주도의 경우는 평지에 설치된 경우가 많으나, 육지부 돌살은 제주도에 비하면 조금 심한 기울기를 갖는다. 가령 태안반도의 경우, 파도에 밀려서 쌓인 모랫장벌이 펼쳐진 자그마한 만의 양측에 돌담을 쌓는데 이미 모랫장벌 자체가 적당한 기울기를 갖고 있다. 급격히 조류가 이동하고 늘 파도가 치는 곳으로 그러한 조건 속에서 갑자기 아늑한 만이 형성되면 으레히 모래가 쌓이게 되며 그곳에 돌살이 들어선다. 바위섬이나 자그마한 여에 설치하는 경우에도 섬과 여의 경사를 이용하기 마련이다. 산호 파편이 지극히 얕은 모래해변을 형성하고 있는 피지제도의 돌살처럼, 대단히 얕고 평평한 해변에 돌살을 축조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조차가 있는 조건에서 최소한의 기울기만 보장된다면 돌살이 설치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다만 조차에 따라서 돌담의 높이, 즉 축성법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돌살의 기능과 형태

들어왔다가 나가는 물을 역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가장 전형적인 돌살 형태는 나가는 물을 받아칠 수 있도록 말굽형이 정상이다. 그러나 환경적 조건에 따라 삼각형, 일직선, 타원형, ㅁ자형, V자형, 반달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로막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어떤 돌살도 바닷물이 몰려들어왔다가 나가면서 임통에 걸려드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말굽형을 취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축조방식이다. 또한 1개의 돌살로만 이루어진 경우도 있지만 여러 개가 겹쳐지거나 연결되는 방식으로 돌살을 설치하기도 한다. 조간대의 높이를 고려하여 물이 빠져나가는 방향으로 층층이 여러 개를 쌓기도 한다. 태안반도 마도의 경우, 몇 개가 물높이에 따라서 형성되어있다. 조간대의 물높이에 따라 상층·중층·하층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물이 빠지게끔 설계 되어있다. 돌살은 조간대의 지대가 높은 곳에서 쌓기 시작하여 차츰 낮은 곳으로 높이 쌓기 방식으로 돌담을 설치한다. 돌담이 시작되는 곳은 돌담이랄 것도 없이 돌무더기를 던져놓은 정도의 30cm 미만에서부터 출발한다. 차츰 높아지면서 물이 깊게 들어차는 곳으로 갈수록 돌담도 상대적으로 높아져야한다. 그래야만 고기들이 썰물에 빠져나가면서 돌담에 걸려서 돌살에 걸려든다. 어떤 경우에도 유별나게 신경써야할 곳은 중앙에 위치한 임통(불뚝)이다. 임통은 대개 말굽형돌살의 가운데 꼭지점으로 지형적으로 가장 깊은 곳이다. 물이 썰면서 최종적으로 물이 고이는 장소이자 고기가 모이는 장소이다. 동시에 외해에 노출되어 파도를 가장 강하게 받는다. 그래서 임통은 돌담의 일반적 두께와 높이보다 매우 두껍고 높게 쌓기 마련이다.

 

물고기의 습성과 생태를 꿰뚫었던 선조들

사람에게만 집이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물고기도 정든 집을 그리워하고 아늑하여 천적으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을 좋아한다. 제주도의 자리돔은 아예 ‘제 자리에서 사는 돔’이란 데서 자리돔이란 명칭이 붙었다. 어느 물고기에나 집이 있으며 선호하는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돌살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고기들이 선호하는 오목한 만彎이 중요하다. 적절한 크기의 만이 있어야만 고기가 몰려들고, 양 옆에서 산그늘을 받을 수 있다. 고기는 아무데서나 노는 것이 아니다. 산그늘 밑에서 놀게 된다. 산그늘은 곧바로 숲그늘을 의미하기도 한다. 강가에서 물고기들이 수초 우거진 곳을 좋아하는 것과 일치한다. 숲이 무성한 바닷가에 고기가 몰려드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바다숲은 풍조風潮를 막는 1차적 기능 이외에 물고기에게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시너지효과도 부여한다. 물고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숲을 그리워한다. 동물만이 숲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도 해변이나 섬의 숲그늘로 몸을 숨기고 ‘그늘의 미학’을 즐긴다. 선사시대 인간들이 바위그늘에서 주거처를 마련하였듯이 물고기들도 바위그늘이나 숲그늘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앞에서 설명한 이들 어민들의 민속지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그에 관한 우회적인 답변으로써, 20세기 초반에 동부시베리아 우스리스크를 탐사하면서 선주민인 우데헤족, 즉 나나이족에 관한 주옥같은 기록을 남겨준 아르세니에프의 다음 기록으로 답변을 대신하고자 한다.
11월 10일, 사마르기 강에서 내려온 우데헤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에게 소스노프 곶串 북쪽의 해안지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중 한명이 막대기로 모래 위에 지도를 그렸는데 , 세밀한 곳까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내가 가지고 다니던 지도를 보여주자 금세 방향을 알아차리고는 지도에 표시된 강과 산, 곶 등을 가리키며 그 명칭과 거리를 일러주었다. 나는 그의 안목에 탄복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지도를 봤다고 했다. 그런데도 척도의 기준을 알아챘고, 평면도법을 계산하는 공식을 나름대로 유추해냈다. 문득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이런 지도를 읽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던가. 내가 휴대한 지도는 대단히 상세해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은 감히 해독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문자를 써본 적이 없는 이 눈앞의 야만인은 자연에서 갈고 닦은 경험과 노련한 눈썰미로 문명이 이룩한 지도를 꿰뚫고 있었다.


글·사진 | 주강현 제주대석좌교수    
사진제공·들녘출판(신이 내린 황금그물 돌살, 저자 주강현), 연합콘텐츠, 엔싸이버 포토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