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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담은 꽃담, '소통과 나눔의 삶' 이 가져다주는 행복 전파의 빛깔

왕토끼 (秋岩) 2010. 4. 2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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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담은 꽃담, ‘소통과 나눔의 삶’이 가져다주는 행복 전파의 빛깔
2010-04-08 오후 04:23




상식을 뛰어넘는 담이 있다

꽃담, 말부터 참 예쁘다. 비록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지 않는 서자 취급을 받고 있지만 꽃담은 소통이다. 집주인의 성품을 드러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기꺼이 초청한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도 소망한다.‘여기는 내 땅이야’,‘타인 출입금지’식의 엄포가 없다. 질박하면 질박한 대로, 화려하면 화려한 대로 여유와 만족을 안다. 우리네 조상들의 마음씨를 빼닮았다. 그러나 속도와 경쟁에 정신을 앗긴 우리는 청맹과니처럼 스쳐 보냈을 뿐이다. 우리 동네 꽃담 참으로 반갑다. 삼계지택三界之宅의 백팔번뇌를 이겨 내기 위해 산사에서 울려오는 승방의 목탁 소리, 초췌한 가지를 떨구며 유향幽香을 전해주는 오엽송五葉松의 바람 소리, 삼경三更의 찰라를 알려 주던 간난 아이의 고고지성呱呱之聲, 재앙을 풀기 위해 신나게 두들겼던 당골네의 꽹과리 소리를 만날 수 있지 않은가. 외양간에서 김이 서려 시골의 목가를 일깨워줬던 쇠똥 냄새, 청솔가지가 연막을 형성하는 사이에 보글보글 끓던 된장찌개 냄새, 제의祭衣를 정갈하게 차려 입을 무렵, 이승과 저승의 다리를 놓았던 향연香煙은 덤으로 얹혀 받는다.


안과 밖을 구분해주는 경계의 담장

경이롭게도 옛 조상들에게 담장은 안과 밖을 구분 짓지 않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무한 경계의 환경예술이었다. 그래서 꽃담은 꽃 한 송이가 예쁘게 핀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만큼 그 자체로 한 편의 서정시요, 설치미술이다. 이내, 한옥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조용함과 단아함 속에 젖어보는 고택 명상의 시간은 오매불망, 그대 반짝이는 별빛이 되고, 이에 내 소망은 교교한 달빛이 된다. 꽃담은 우리 문화유산 가운데 흙으로 남아있는 마지막 걸작이며, 일반 백성, 사찰, 궁궐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도 넓다. 흙으로 쌓아 올린 담장에 깨진 사기 그릇 파편과 조각난 기왓장을 꾹꾹 눌러 박은 소탈한 치장은 서민들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의 소용돌이와 함께 자유로운 추상미마저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고 있는 흙 돌담길은 현란하지 않게 주변 경관과 어울리도록 은은한 멋을 풍기게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켜켜이 쌓은 돌담 세월을 품다

고향이 시골이 아닌 사람이라도 ‘고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먼저 한적한 시골 마을에 구불거리는 돌담길을 돌아 대문이 활짝 열린 옛집을 연상하곤 한다. 돌담 안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는 담장 밖으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가지마다 주렁주렁 빨간 감을 매달고 있다. 돌담을 기어오르는 담쟁이 넝쿨, 시커먼 돌을 초록색으로 뒤덮는 이끼, 돌담 위로 고개를 쑥 내민 해바라기 등 정겨운 모습이 절로 상상된다. 돌담길이 있는 마을은 고향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시골(마을들)이다. 고려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곳으로 마을 역사 못지않게 돌담도 오래 묵었다. 돌담은 대개 마을 주변에 있는 돌로 쌓는데,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 서민적이다. 아무렇게나 쌓은 것 같지만 그 자연스러움 안에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제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고 세월과 함께 늙어 간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 낸 돌담은 우리네 향토적인 서정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문화재요, 문화유산이다.



지난 시절, 가로등이 켜지면서 개 짖는 소리와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었다. 시간이 흐르면 다듬이 소리, 통금시간을 알리는 딱딱이 소리도 들려왔다. 동네 아이들은 바로 이 흙돌담 골목길에서 한데 어울려서 놀았다. 혼자 놀기보다 여럿이 모여야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도 장난감도 없었지만 주변에 널린 것들을 손쉽게 놀이 도구로 변신시켰다. 돌이나 깨진 벽돌을 동그랗게 다듬어 비석치기를 하고, 헌 공책을 뜯어 딱지를 접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구슬 몇 개만 있어도 세상을 다 얻은 듯 뿌듯했다. 이 모든 놀이가 돌담길에서 이루어졌다. 따로 놀이터가 없었지만 돌담길이 아이들에겐 놀이터보다 좋은 공간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었다. 돌담길 끝에서 저녁 먹으러 오라고 부르던 어머니의 음성이 지금도 귓가에 아련하다.

비스듬히 경사진 골목의 끝, 높다란 양쪽의 돌담길 끝. 서녘으로 비끼는 샛노란 햇살이 남은 물기를 털어내느라 분주한 빨래들을 이고 앉는다. 길 건너편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지붕 낮은 집들의 애환이 골목길에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얼싸 손 잡아줄 듯 정겹다. 담장은 집을 보호하는 울타리지만 이웃집과 소통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길 쪽으로는 담이 높지만 집과 집 사이의 돌담은 마당이 들여다보일 정도의 높이가 대부분이다. 떡을 하거나 부침개를 부친 날이면 돌담 위로 소쿠리가 오갔다. 그 안에 까치밥 같은 정이 오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햇빛을 받아 따뜻해진 돌담에 고사리나 취나물 혹은 깨끗하게 빤 운동화를 널어 말리기도 했다. 더러는 고풍스러운 전통 가옥이 여러 채 있어 돌담과 잘 어우러진 풍경을 빚어내기도 했다. S자로 구부러진 마을 안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느껴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돌아가 초저녁의 달동네 골목길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고 있다.

 
문화재청,
담쟁이 넝쿨과 어우러진 옛 ‘돌담길’ 문화재 등록

문화재청은 고가, 감나무, 담쟁이 넝쿨과 어우러진 옛 ‘돌담길’을 2006년부터 문화재로 등록해오고 있다. 2010년 3월 현재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등 모두 18건의 마을 돌담길이 문화재로 등록됨으로써 삶의 패턴이 현대화되면서 어쩌면 우리 대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돌담길’이 이젠 우리 아들, 딸에게도 놀이와 추억의 공간으로 보존되고 있는 현실이다. 학동마을 옛 담장(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등록문화재 제258호), 황산마을 옛 담장(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등록문화재 제259호), 단계마을 옛 담장(경남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등록문화재 제260호), 한개마을 옛 담장(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등록문화재 제261호), 지전마을 옛 담장(전북 무주군 설천면 길산리, 등록문화재 제262호), 함라마을 옛 담장(전북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등록문화재 제263호), 병영마을 옛 담장(전남 강진군 병영면 지로리, 등록문화재 제264호), 삼지천마을 옛 담장(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 등록문화재 제265호), 옻골마을 옛 담장(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등록문화재 제266호), 상서마을 옛 담장(전남 완도군 청산면 상동리, 등록문화재 제279호), 반교마을 옛 담장(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 등록문화재 제280호), 남사마을 옛 담장(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등록문화재 제281호), 사리마을 옛 담장(전남 신안군 흑산면 사리, 등록문화재 제282호), 오운마을 옛 담장(경남 의령군 낙서면 전화리 601 외, 등록문화재 제365호), 상학마을 옛 담장(전북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 633 외, 등록문화재 제366호), 사도, 추도 마을 옛 담장(전남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 180 외, 등록문화재 제367호), 죽정마을 옛 담장(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188-6 외, 제368호)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학동마을 옛 담장(경남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등록문화재 제258호)은 마을에서 채취한 납작돌(판석 두께 2~5㎝)과 황토를 결합하여 바른 층으로 쌓아, 다른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 마을의 입향조인 전주최씨가 하늘에서 학鶴이 내려와 마을에 앉아 알을 품고 있는 꿈을 꾸어 날이 밝자 그 곳을 찾아 가보니 과연 산수가 수려하고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이곳이 명당이라고 생각하여 ‘학동’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 주변 대숲과 잘 어우러져 수백 년을 거슬러 고성古城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마을 안길의 긴 돌담길은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는 등 문화재로서의 가치 또한 크다.

황산마을 옛 담장(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등록문화재 제259호)은 대개 토석담으로, 담 하부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제법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대부분 메쌓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황산마을은 1501년(연산군 7년)에 요수 신권(생몰년 미상)이 이곳에 들어와 산 이후, 거창신씨의 집성촌으로 번창해 왔다. 마을 입구에는 마을을 지키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다. 수령이 600년에 달하고 나무 높이가 15m 이상이며, 그 가지 둘레가 50여m가 넘는 지정 보호수가 있는 까닭에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대부분 담장의 높이는 1.8m 내외, 폭(두께) 30cm 정도이며, 하부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제법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진흙(황토)을 사춤하지 않고 담 하부의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이는 도로보다 높은 대지 내 우수雨水를 담 밖으로 자연스럽게 배출하기 위함이다. 담 위에는 암키와를 2~3장 겹쳐 쌓은 다음 그 위에 숫키와를 덮었으며, 암키와 안쪽에는 삼각형 와편瓦片을 사용했다. 담의 마루 등은 착고 위에 암키와 3장을 엎어 놓고 맨 위에 숫키와를 엎어 마무리했으며, 근래에 수리한 담일수록 기와의 겹침 수를 줄이고 간략하게 처리하고 있음이 목도된다.


꽃담을 향한 여정, 더 없는 유혹의 손길

단계마을 옛 담장(경남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등록문화재 제260호)은 돌담과 토석담이 혼재되어 있으며, 높이는 2m 정도로 높은 편이다. 예로부터 단계가 있는 신등면을‘등 따습고 배부른 마을’로 꼽았으며, 그 ‘산청쌀’로 유명한 곳이다. 따라서 세도가와 부농이 많으며 규모가 큰 가옥들이 건립됐다. 단계마을은 1983년‘한옥형 소도읍 가꾸기 사업’을 시행했으며, 전체 경관도 한옥에 맞게 정비했다. 과거에 물이 밀려와 수해를 자주 입었는데, 그 원인을 마을의 형세가 배舟 모양이나 돛대와 삿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믿는 이곳은 부농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제법 규모가 큰 한옥들이 많다.

단계 박씨고가(1630년 건립)가 있고, 경남문화재자료 제120호인 권씨 고가는 마을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담 하부에서 위로 2~3척 정도는 방형에 가까운 큰 돌을 사용하여 진흙을 사춤하지 않고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바로 그 위에는 하부에 사용한 돌보다 작은 돌을 사용하여 돌과 진흙을 교대로 쌓아 올렸으며, 담 안팎으로는 돌 표면이 그대로 노출되도록 했다. 물론 토담 상부에는 판석을 담의 길이 방향으로 걸치고 그 위에 기와를 올렸다. 즉, 담 상부에 사용하는 기와가 아래로 처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판석을 담 안팎으로 3치 정도 내밀어 쌓고, 그 위에 한식기와를 덮은 것이다. 기와의 흘러내림을 방지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다.

세상엔 굽은 길이 있고, 곧게 뻗은 길도 있다. 멀리서도 또렷이 보이는 길이 있고, 길옆에 가기 전까지 까마득히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 화려한 문양의 극치를 달리는 꽃담을 향한 여정은 늘 이채롭고 더없는 유혹으로 손짓한다. 삶이 더 추락하고 황폐해지기 전, 꽃담 닮은 향기로운 삶이고 싶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다가라 하네. 강물처럼 별빛처럼 흘러가라 하네. 하늘 담은 꽃담에 하늘 닮은 추억이 영근다. 애써 서두르지 않고 한 뼘의 여유를 지닌 채 세상의 파고를 무사히 뛰어넘을 수 있도록 님 오시는 길목에 나지막한 화초담 하나 쌓으며 ‘다운 시프트Down Shift’로 살수만 있다면, 앙증맞은 굴뚝 하나 곁에 두고 하심(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하며‘슬로 시티Slow City’로 조용히 살고 싶다. 조심조심 두 손 모아 치성을 드리오니 천지신명을 향한 ‘무심無心과 무욕無慾’의 희망 비나리이다.  


글·이종근 전민일보 문화교육부장, ‘우리 동네 꽃담’의 저자     
사진·이종근, 문화재청, 고창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