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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악의 미학, 소리를 말하다 (옮겨온 글)문화재청2011.7.19

왕토끼 (秋岩) 2011. 7. 19. 07:10

제목 우리 음악의 미학, 소리를 말하다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7-13 조회수 54

 

소리의 프리즘, 우리 음악의 세계관 형성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농현(거문고나 가야금 등의 현악기 연주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어 원래의 음 이외의 여러 가지 장식음을 내는 기법)에서 보이는 가락의 곡선, 느린 속도의 여유, 비어 있는 듯한 여백, 3박이라는 비대칭의 리듬, 신명과 역동 등을 든다.


이와 같은 내용은 우리 전통음악의 특징으로 설명될 수도 있는데, 하나하나를 검토해보면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느린 속도의 여유’와 ‘신명과 역동’은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 둘을 동시에 갖춘 음악은 없다. 1분에 30박 정도의 빠르기를 갖고 있는 ‘상영산(<영산회상>의 첫째 곡. 가사가 딸려있는 기악곡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기악곡이다.)’에서 ‘여유’가 아름다움일 수 있지만, ‘신명’을 찾아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음악에서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일까? 앞서 사람들이 거론한 내용들을 각각의 음악에 적용하면 모두가 아름다움으로 설명할 수 있으니, 음악의 장르에 따라 또 각 악곡에 따라 각각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배경은 한국의 전통음악이 한 시대에 한 사람의 작곡가에 의해 창작된 음악이 아니라, 탄생된 이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갈고 다듬어져 왔던 것에서 찾을 수 있으며, 또 음악을 향유하는 계층이 다양했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태양의 빛이 무색으로 보이지만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여러 색으로 나뉘어 보이는 것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여러 색의 빛이 모여 태양의 빛으로 보이듯이, 현재의 한국 전통음악도 이와 같은 모습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음악, 또 궁중의 최상위 계층, 동반(문반)과 서반(무반)으로 나뉘는 양반, 잡무를 담당했던 중인 계층, 천민(광대, 승려, 무당 등) 등이 향유하거나 연행演行했던 음악들이 오늘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적인 시간, 박자로 우리 음악을 말하다
전승되고 있는 궁중 연례 음악 중 백미白眉라 불리는 수제천은 백제의 노래인 정읍사에서 유래하여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다듬어져 현재의 모습으로 연주되고 있다. 수제천은 일정한 박拍이 없는 매우 느린 음악이다. 악보에는 박이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 연주는 연주자들의 호흡에 따라 연주된다. 이 음악에는 본 가락과 다음 가락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연음이라 불리는 부분도 있다. 호흡이 소진하면 끊어질 듯하다가 다음 가락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연음의 연결은 느린 속도의 음악에서 볼 수 있는 한 특징이다. 이러한 음악의 아름다움은 가락의 곡선과 느린 속도의 여유에서 찾을 수 있다.

거문고 독주로 자주 연주되었던 상영산은 1분 30박의 빠르기를 갖고 있다. 거문고는 1박에 1음 또는 2박에 1음을 연주하는데, 줄을 뜯어 연주하는 악기이므로 한 음의 지속시간은 1초 남짓 된다. 1박이 약 2초이고, 1음의 지속 시간은 약 1초이므로 음과 음의 사이에는 1초에서 3초의 단절이 생긴다. 그러나 단절된 듯이 보이는 이 부분은 연주자와 감상자의 마음속에서는 음의 지속으로 채워져 있다. 조선시대 풍속화 중 선비의 초당에 줄 없는 거문고가 걸려 있는 그림이 있다. 이는 화가가 잘못 그린 것이 아니라 선비들의 음악세계를 그대로 그린 것이다. 무현금無絃琴을 벽에 걸고, 거문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선비의 마음속에는 이전에 들었던 거문고 가락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다. 또 이것은 한국화에서 바탕색을 모두 칠하지 않고 여백을 비워두어 감상자로 하여금 채울 수 있게 하는 것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음악의 아름다움은 여백에서 찾을 수 있다.


 

 

 

민요를 비롯한 많은 음악은 3박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흥겨운 느낌을 준다. 일본과 중국의 음악이 2박 혹은 4박의 구조를 갖고 있음에 비해 3박 구조는 한국음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3박은 2박과 1박으로 나뉘며, 그 확대형은 5박(3박과 2박), 8박(5박과 3박)이 된다. 즉 길고長 짧음短의 구조로 되어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3박 구조는 비교적 빠른 음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그 역사적 배경과 상위 구조에는 5박과 8박의 길고 짧음이 있는 것이다. 신라 시대에 발생한 처용무의 등장에는 3박에 오른발, 2박에 왼발을 딛는 춤사위가 있으나 매우 느린 동작이어서 관중들은 미처 그 비대칭을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의 한국전통음악의 장단이란 독특한 리듬 구조가 반복되는 것도 이와 연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음악의 아름다움은 3박 구조와 5박 구조에 감추어져 있는 비대칭에서 찾을 수 있다.


사물놀이의 원조인 풍물(농악이라 불림)은 다양하게 변형되거나 반복되는 가락을 연주한다. 이 가락에도 비대칭구조가 숨겨져 있지만 매우 빠르게 연주하기 때문에 청중은 느끼기 어렵다. 꽹과리와 징이 연주하는 금속성 음색은 팔음八音 중 금성金聲에 해당하며, 장구와 북이 연주하는 가죽의 음색은 팔음 중 혁성革聲에 해당한다. 쇳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차갑게 하고, 가죽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군대의 행진과 훈련에서 북은 전진을 지시하고, 징은 후퇴를 지시하는데 사용하였다. 6?25때 중국 군인들이 밤중에 공격해올 때 징을 쳐서 아군들의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같이 보완되는 음색의 악기로 때로는 반복되고 때로는 무한한 변화를 이어가는 풍물의 가락은 신명과 역동성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곡선을 지닌 우리 가락
각각의 음악에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 있지만, 굳이 공통적인 것을 꼽으라면 가락이 지닌 곡선을 들 수 있다. 궁중음악을 비롯하여 판소리, 가곡, 가사, 시조, 범패, 무가, 잡가 등 성악곡뿐만 아니라 산조, 시나위 등 기악곡에 이르기까지 곡선적인 특징은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현악기로 연주하는 농현과 관악기로 연주하는 장식음은 서로 다른 음을 연결하여 그 가락선을 곡선으로 그려낼 수 있어, 실제 곡선을 이용하여 악보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곡선을 궁궐의 추녀끝 선에 비유하기도 한다. 추녀끝 선이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증거는 없지만 서양의 예에 비추면(바로크 건축의 장식과 바로크 음악의 꾸밈음) 우리 전통음악에도 직ㆍ간접적인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쌍봉사의 철감선사(798∼868) 부도 옥개석은 직선 추녀를 가졌고, 봉암사 지증대사(824∼882) 부도 옥개석은 곡선 추녀를 가졌다. 건축물에서 음악적인 특징과 아름다움을 추론한다면, 9세기 중후반에 전남에서는 직선의 음악이, 경상도에서는 곡선의 음악이 있었거나, 9세기 후반에 직선의 음악이 곡선의 음악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이러한 추론이 가능하다면 전통음악이 갖고 있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천 년을 이어오는 오랜 전통이라 할 수 있겠다. 

 

글· 김우진 단국대학교 국악과 교수, 사단법인 한국국악학회 상임이사   사진· 국립국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