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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에서 문화유산의 향기를 찾아나서는 여정 (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6. 28. 19:54

제목 도심속에서 문화유산의 향기를 찾아나서는 여정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6-14 조회수 276

 

역사의 큰 줄기를 잇는 것은 그물처럼 촘촘하게 짜여진 작은 시간들이다. 향토사를 근간으로 하여 지방사가 되고, 지방사가 모여 국가사인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역의 민속과 풍속을 아끼고 보존하는 것은 유구한 가치를 지닌 우리 역사의 근간을 돌보는 일이 된다.  

 

도시화 속에서 문화재의 길을 찾다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잘 먹고 잘 살자’가 최대 관건이었던 그때 그 시절. 그 시기에 이루어진 도시화는 풍족한 삶을 위한 새로운 변화였고, 도전이었다. 1980년대 말, 경기도 고양시는 일산구를 중심으로 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졌다.


“신도시 개발로 도시가 형성되고 다듬어지면서 다수의 문화재들이 새벽이슬처럼 사라졌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국민들 모두가 노력하던 때였으니, 그에 대한 자각이 없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어요. 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의 초대 회장이었던 이은만 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양시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장을 맡고 있는 안재성 씨는 ‘일산밤가시초가(경기도 민속문화재 제8호)’라는 독특한 이름의 문화재로 발걸음을 이끌며, 점차 확대되는 도시화 속 문화재의 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역사와 현재의 공존이 지니는 가치는 도시화에 초점이 맞춰진 우리의 인식을 맑게 환기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일산밤가시초가는 정발산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이 마을에 밤나무가 많았던 것에서 유래했으며, 서까래와 같이 집을 구성하는 목재 모두 밤나무를 사용해 붙은 이름이다. 19세기 전반에 지어졌고, 신도시 개발 초기까지도 사람이 거주했던 공간이다. 일산밤가시초가에서는 선조들이 가지고 있는 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ㅁ자 형태의 기본 구조를 바탕으로, 안마당 가운데 하늘 구멍을 뚫어놓았다. 더불어 그 아래 마당을 한 단 낮춰 낙숫물이 한데 모여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생활의 편리를 도모했다.


안재성 씨와 함께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마루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마루에 앉으니 일산밤가시초가의 전체 구조가 한눈에 들어왔다.


“비 오는 날, 마루에 앉아 하늘 구멍을 바라보면 우수수 비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달 밝은 밤도 그렇고요. 하늘 구멍 사이로 노랗게 뜬 달을 보노라면, 그 운치에 감탄이 나오지요. 이 초가에서는 선조들의 지혜뿐만 아니라 고즈넉한 감성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스토리텔링 도시를 향해
벌써 이십여 년 넘게 달려 온 세월. 도시화에 사라져가던 문화재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시작하게 되어 이제 천직이 되었다. 지킴이 활동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축제까지 전담해 개최하면서, 고양시에서만 창조될 수 있는 새로운 문화현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산밤가시초가를 이어 고려공양왕릉(사적 제191호)을 찾았다. 안재성 씨는 고려공양왕릉 앞에서 우리 역사 스토리텔링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1345~1394, 재위 1389~1392). 이성계에 의해 이름뿐인 왕이 되었고, 태조 3년(1394) 두 아들과 함께 살해된 비운의 왕. 그렇기에 고려공양왕릉 일대에는 공양왕과 관련된 수많은 설화와 이야기, 거기에서 파생된 인근 지역의 지명 탄생일화가 산재해 있다.


“제가 향토사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세상일 무엇이든 기본이 중요하듯이 국가사를 구성하고 있는 향토사 연구가 더욱 탄탄한 국가사를 만든다는 생각과 믿음 때문입니다. 일산밤가시초가 경우에도 경기도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초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의 초가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과 가치를 더욱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월의 태양 아래 진하게 빛나고 있는 신록를 만끽하며 찾아간 일산밤가시초가와 고려공양왕릉. 모습과 형태, 의미는 다르지만 우리 역사를 창조적 가치로 발현해낼 하나의 구성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안재성 씨가 가고자 하는 길에 어떠한 노력이 깃들지, 어떠한 빛깔을 지닐지 아름다운 상상을 하게 된다.  

 

글ㆍ박세란   사진ㆍ최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