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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 그리고 꿈이 있는 곳, 섬의 민속을 말하다 (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6. 28. 19:51

제목 자유와 평등, 그리고 꿈이 있는 곳, 섬의 민속을 말하다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6-14 조회수 151

 

유토피아로서의 섬, 그 민속문화
폭풍우를 견디며 웅크리고 있는 주택과 담장, 해저와 갯벌로부터 수확되는 해산물들, 고기잡이배와 그물, 당과 신앙 터, 풍물 굿과 노래판들, 이들 모두 섬 민속문화의 현실적 증거다. 이 글에서는 현실의 민속문화보다는 내가 보았던 유토피아로서의 섬의 민속문화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현실문화로서 섬의 민속문화는 언론이나 영상에서 다수 소개되었다. 수많은 다큐멘터리에 섬의 현실들이 담겨 안방으로 전달된다. 필자는 영상이 전달하지 않은 유토피아로서의 부분, 그것이야말로 섬사람들의 섬사람다운 면모라고 보고 있다.

내가 유토피아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꿈꾸던 세계를 섬 민속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연애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그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지극한 쾌락이 있는 곳, 일확천금의 벌이가 가능한 곳, 차별받지 않는 세상, 고락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 이런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그것을 섬 민속문화에서 찾았다. 조선시대, 유교주의의 권위를 깨뜨리고 섬으로 탈출했던 사람들이 꿈꾸었던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섬사람들의 내면에 담긴 유토피아적 민속들이야말로 섬사람들의 특성을 가장 잘 담고 있다. 유교적 시각에서 보면 차마 말로 담을 수 없는 것들이다. 한국 문화에서 이 부분은 숨겨진 문화들, 모르고 지내 온 문화들이다. 나는 이 글에서 내가 경험하거나 조사한 섬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내면 의식을 지배하는 몇 가지,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적인 것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산다이와 강강술래
육지의 유교적 문화풍토와 확연하게 다른 부분이 이성과의 교제를 담고 있는 민속들이다. 그 사례로 산다이와 강강술래를 소개하고자 한다. 산다이와 강강술래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친해지고 사귀게 되는 섬의 사교민속, 또는 소통민속의 하나다. 내가 산다이 현장을 경험한 것은 20여 년 전 완도군 소안도에서다. 산다이는 한국 서남해 도서연안지역에서 연행된 놀이판이다. 미혼의 청춘 남녀가 술 마시고 놀이하며 노는 것을 산다이라고 한다.

 

미혼의 청춘남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이 판을 이용하였다. 파시 철 어부들이 포구 술집에서 젓가락 장단에 놀았던 것도 산다이의 빼놓을 수 없는 한 장면이다. 청춘가, 산아지타령, 유행가를 부른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장례를 마친 날 밤 상주와 상두계원들, 그리고 주민들이 모여 한판 노래잔치를 벌이는데, 이것도 산다이라고 한다. 공통되는 것은 청춘의 남녀가 모여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흥겹게 노는 놀이판이자 노래판이며, 술이 있고, 유흥이 있는 신명의 판이라는 점이다.

전통적 윤리가 지배하는 육지의 마을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 서남해 도서지역 생활민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산다이 풍경은 놀랍게도 진수의 삼국지 기록에도 소개되고 있다. 비금도 강강술래도 남녀가 소통하는 민속문화의 꽃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강강술래는 여성들의 놀이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서남해 섬에서는 몇 개 마을 연합의 미혼 남녀 청춘들이 판을 벌이는 강강술래가 이어져오고 있다. 여러 마을 남녀 청춘들이 마당이 큰 마을에 모여 날밤을 새며 가무판을 벌인다. 강강술래를 노래하며 손잡고 원을 도는 노래와 춤, 그리고 업어주기, 술래잡기, 기와 밟기, 팔짱 끼기 등 다양한 모양새의 놀이들을 한다. 평소 관심 있는 이성에게 자연스럽게 접촉한다. 미혼 남녀가 거리낌 없이 얘기하고 장난하고 밀치고 붙잡고 손잡고 뛰고 노는 난장판이다. 자유연애가 100년 전, 200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섬, 민주적이고 공생적인 의식의 공간
자연환경 또는 사회환경에 적응하거나 대응하면서 불패의 신념으로 삶을 이어가는 것도 섬 민속문화에 담긴 중요한 요소다. 고 김영돈 제주대 교수는 불패의 신념을 지닌 제주도 출신 민속학자다. 사지가 불구였지만 불굴의 신념으로 해녀 연구에 전념했던 김영돈 교수님은 생활사를 배경으로 해녀 노래를 이해했으며, 거기에 담긴 제주도 민중의 불패의 신념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녀 노래 연구의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물질하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왕래하는 뱃길에서의 노래, 먼 내륙-한반도, 일본 북해도, 중국 산동성 대련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육지로 출가물질을 나가며 항해에서 불렀던 뱃노래들은 제주도 민요를 넘어서 세계 민중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섬의 민속문화 속에는 그들의 생활 속 민주적이고 공생적인 의식이 담겨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완도군 소안면 맹선리의 연료림 분배가 그 사례다. 섬에서는 자원을 고르게 분배하지 못하면 생존이 어렵다. 식량, 연료림의 공정한 분배는 중요하다. 그래서 분배의 민속이 정착되어 있다. 맹선리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산을 공동으로 분할해 연료림을 채취하고, 산주에게는 산을 관리해주는 것으로 대가를 지불한다. 자본주의적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섬의 경우 연료의 문제가 매우 중요한 사항이어서 산주가 산림을 독점하면 주민들의 연료 문제가 심각해지게 된다. 섬 주민들은 연료림만이 아니라 모든 자원을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지혜를 공유하고 있어 독점으로 인한 불균형을 해소하고 있다.


섬 민속문화, 그 미래적 가치
자신들의 삶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내용들도 풍부하다. 저항민속의 하나로서 삶을 억압하는 여러 세력들에 대항한 대항민속들이다. 일제 강점기 완도군에서 일어난 항일민족해방운동이 그 사례다. 섬의 민속공동체들, 예를 들어 산다이를 즐기던 젊은 청년들이 일제 강점기가 되자 그 조직의 성격을 항일민족해방운동 청년조직으로 개편해서 항일운동을 펼친 것은 섬 지역 민속문화의 현장적응력을 잘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조선 민중 최대의 소망은 일제의 압제로부터 민족이 해방되고 조선이 국가적으로 독립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힘의 원천이라고 여겨 교육에 집중하게 되었다. 민족 해방과 평등 세상 건설은 일제 강점기 조선 민중이 바라는 바였다. 그 주제를 실천하기 위해 야학운동을 벌였다. 산다이를 즐기던 섬 청년들은 야학에서 조선 민중의 신지식, 민주적 사고, 평등의식, 노동의 귀중함, 민족의식, 민족해방의 내용들을 학습하였고, 이런 목표들을 위해 투쟁했다. 산다이 문화가 발달한 서남해 일대에 일제 강점기 민족해방운동이 활발했고, 특히 소안면의 항일민족해방운동이 가장 유명했다.


섬의 민속문화에 담긴 신명과 난장의 재미, 자연 생태에 적응하려는 의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정신, 지역과 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교류와 화합의 정신, 고락을 함께 나누는 공존의 정신이 섬 민속문화의 기본들이다. 이런 문화적 자산이야말로 섬 민속문화의 가치를 웅변하는 것이고 이런 가치들이야말로 미래사회에 섬 문화의 가치가 왜 필요한가를 말해주는 요소들이다. 

 

글ㆍ나승만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사진ㆍ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합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