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섬, 그 역사를 되짚어 오늘을 본다 | ||
---|---|---|---|
작성자 | 문화재청 | ||
작성일 | 2011-06-14 | 조회수 | 127 |
섬의 이중성 소통의 징검다리로서의 섬
서긍의 『고려도경』에 의하면, 12세기 송나라 사신이 황해를 사단하여 흑산도와 서해의 여러 섬을 거쳐 고려에 내왕했고, 고려는 군산도, 마도, 자연도(영종도) 등의 섬에 군산정, 안흥정, 경원정 등의 객관을 설치해 그들에게 항해의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나온다. 고려가 섬을 동아시아 해양소통의 징검다리로 적극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231년에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자, 고려는 백성들에게 즉각 섬에 들어가 지키도록 하명하고 그 이듬해에 왕도마저 강화도로 옮겼다. 그리고 서남해의 섬들을 근거 삼아 국내 바닷길을 소통시키면서 유라시아대륙을 석권한 막강군단 몽골군을 상대로 항전을 벌여 40년의 긴 세월을 버텨냈다. 1270년에 이르러 고려의 왕이 몽골 침략군과 타협해 강화도를 버리고 개경으로 환도해 버리자, 삼별초가 그에 반하여 강화도에서 진도로, 그리고 제주도로 중심지를 옮겨 가면서 서남해의 섬들을 근거삼아 3년 여의 해상왕국을 이어갔으니, 고려에 섬은 소통의 징검다리를 넘어서서 국가 해양력의 근간이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명이 해금정책을 취하고 조선이 이를 추수하게 된 사정과 내막은 복잡한 설명을 요하므로 여기에서 상론하긴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되었다. 조선의 해금정책은 강력하게 실행에 옮겨졌고, 나라가 망할 때까지 장기 지속되었다. 더욱 강화된 조선의 공도 조치는 왜구의 침탈로부터 섬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표방되긴 하였지만, 실제로는 해금정책을 철저하게 실현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국가의 문호인 해양을 폐쇄한 조선의 해금은 곧 문호를 굳건히 걸어 잠근 쇄국鎖國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선의 섬은 더이상 바닷길을 이어주는 소통의 징검다리가 아니었고, 점차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고립의 공간으로 전락했다.
왜구는 조선의 섬을 근거 삼아 연안과 내륙에 대한 약탈을 일삼았다. 조선은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정벌에 나서기도 했지만, 쓰시마를 점령해 지배하는 대신 훈계하는 것에 만족하고 철수했다. 조선은 바다 저 밖에서 꿈틀거리던 외세의 동태에 어두웠다. 그리하여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에 대비하지 못했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이순신과 그를 추종하던 해양세력의 후예들이 섬을 근거로 일본 수군을 저지했던 일이다. 거제도(옥포해전), 한산도(한산도해전), 진도(명량해전), 남해도(노량해전)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 돌산도, 고하도, 고금도 등이 이순신 수군의 근거지였다.
조선은 임진왜란 7년 전쟁을 가까스로 수습한 이후에도 해금을 포기하지 않았다. 공도도 아직 유효했다. 그러다 1세기가 지난 숙종 연간에 이르러서야 섬을 지키자는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주요 섬들에 수군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섬에 파견되어 들어가는 수군진 관원들과 함께 민간인들도 섬에 따라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비로소 공도의 굴레가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섬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고립된 공간이라는 인식은 강하게 잔존해 있었다. 섬 주민에 대한 천시의 풍조가 만연했고, ‘섬놈’, ‘뱃놈’, ‘갯것’이라는 비어들이 난무했다.
‘신해양의 시대’와 섬
바다는 세계와 소통하는 길이고, 섬은 그 바닷길의 징검다리이므로, 앞으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관심사는 바닷속 뿐 아니라 섬과 바다를 포괄하는 도서해양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도의 진척은 고무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이와 함께 도서해양에 관한 연구 성과의 축적과 교육을 통한 사회적 확산을 병행 추진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고 시급하다. ‘신해양의 시대’를 맞아 이에 대한 국가·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자 한다.
글 / 사진ㆍ강봉룡 목포대학교 사학과 교수, 도서문화연구원장 사진ㆍ문화재청 |
'유물검색과 자료수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亞里郞(아리랑)에 담긴 秘密(옮겨온 글)2011.7.12. (0) | 2011.07.12 |
---|---|
고대 이집트의 천년 왕도 룩소르 (옮겨온 글) (0) | 2011.06.21 |
자부심과 고집으로 지켜온 오백년 김영옥 지킴이와 해남 윤씨 녹우당綠雨當 (0) | 2011.05.02 |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고도古都 교토 (옮겨온 글)2011.04.25.문화재청 (0) | 2011.04.25 |
전통건축색채를 통해서 보는 어울림의 가치와 의미 (옮겨온 글)11.04.25. (0) | 2011.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