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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시대에 맞서 퍼포먼스를 펼치다 이덕무李德懋의 어떤 편지 (옮긴글)

왕토끼 (秋岩) 2011. 4. 18. 20:32

제목 편지로 시대에 맞서 퍼포먼스를 펼치다 이덕무李德懋의 어떤 편지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4-15 조회수 34

 

가난한 반쪽 선비, 삶의 역설적 호소

서얼庶孼은 반쪽 양반이다. 그들은 벼슬길이 막히고 양반대접도 받지 못한 존재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얼들은 평생 울울한 심정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 역시 반쪽 양반이다. 그는 같은 처지의 벗에게 보낸 편지에서, 반쪽 양반의 기막힌 처지와 고단한 현실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대께서 자주 양식이 떨어진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늘이 우리들을 이미 빈貧이라는 글자 자를 붙여 놓았기 때문에 도망할 수도 없는데다 원망할 곳도 없습니다. 『설문說文』은 빌려드립니다만 『설문』을 읽는 또한 가난을 면하는 일입니다. 시험 삼아 『설문』의 글자 모양으로 글을 지어 부자에게 쌀을 빈다면, 아마도 쌀을 얻기는커녕 모욕을 받을 것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우는 더위가 무서워 꼼짝 않고 앉았으며, 눈에 곡식 말이나 되는 양의 졸음이 저장되었고, 아침에 마리의 고기도 없으니 괴이합니다. - 정이옥수鄭耳玉琇

 

서얼들이 능력을 인정받아 벼슬길에 오른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물다. 비록 이들은 벼슬에 진출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보잘 없는 직책을 맡았다. 조선조 사대부들조차 역시 벼슬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사는 것이 어렵던 시절이니, 서얼은 오죽하겠는가? 위에서 서얼에게 ‘빈貧’이란 타고난 운명이며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는 언급은 자괴감의 표출이다. 연암 박지원이 독서를 하면 사士요, 벼슬을 하면 대부大夫라고 하여 사대부를 ‘사’와 ‘대부’로 구별하여 양면성을 정의한 있다. 그러므로 사대부가 벼슬을 하지 않으면, 책을 읽는 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인 셈이다.

 

이덕무는 책을 읽어도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니 굳이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을 , 하러 책을 빌리느냐고 벗을 나무란다. 자신 역시 졸음을 참아가며 책을 읽지만, 아침상에 반찬으로 생선 토막 올라오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덧붙이면서. 그런데 이러한 이덕무의 하소연은 독서를 권하는 사회를 바라는 역설로 읽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편지의 퍼포먼스, 시대의 울림

이덕무는 다른 곳에서 자신의 벗에게 통의 편지를 보내 차별과 부조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편지를 받은 벗은 다름 아닌 뒷날 정승까지 지낸 인물이자, 어린 시절부터 벗으로 지낸 이서구李書九(1754~1825)였다.

 

  집에서 가장 좋은 물건은 단지 『맹자孟子』 7책뿐인데, 오랫동안 굶주림을 견디다 못하여 2 잎에 팔아 밥을 잔뜩 해먹고 희희낙락하며 영재齋 유득공柳得恭에게 달려가 크게 자랑하였소. 그런데 영재의 굶주림 역시 오랜 터이라, 말을 듣고 즉시 『좌씨전左氏傳』을 팔아 남은 돈으로 술을 사다가 나에게 마시게 하였소. 이는 맹자가 친히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左丘明이 손수 술을 따라 나에게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러고는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칭송하였으니, 우리가 1 내내 책을 읽기만 하였던들 어떻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구제할 있었겠소? 참으로 글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이 도대체 요행을 바라는 술책이요, 당장에 팔아서 한때의 취포醉飽를 도모하는 것이 보다 솔직하고 가식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 여이낙서서구서與李洛瑞書九書

 

본래 이덕무는 독서광이다. 서얼의 처지로 오직 즐거움으로 삼은 것은 책을 읽는 있었다. 이덕무는 책만 읽는 우스꽝스러운 자화상을 <간서치전看書痴傳> 담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였다. 그런 그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맹자』를 팔았다. 얼마나 지독한 현실 부정이며 아이러니인가? 이를 들은 , 유득공 역시 『좌씨전』을 팔아 술을 마셨다.

 

 

유득공도 서얼 신분으로 가난에 굶주리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유득공 행동은 가난 때문이라기보다, 벗의 내면까지 헤아렸기에 벗의 생각에 기꺼이 동참하였다. 사실 이들의 행동은 독서를 해야 하는 ‘사’의 존재마저 부정한 것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이들은 사회를 지탱하는 경전經典마저 팔아, 먹고 마신 것에서 나아가 맹자와 좌구명이 자신들의 주린 배를 채우고, 술까지 먹여 주었다고 칭송까지 하고 있다. 지독한 역설이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이러한 자조 섞인 칭송이야말로 시대를 향해 던지는 강열한 메세지이자, 시대에 맞선 퍼포먼스인 셈이다. 더욱이 이러한 퍼포먼스에 공감하는 벗이 있기에, 이덕무는 부조리한 세상에서도 견딜 있었을 터이다.

 

글ㆍ진재교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