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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 와 달마대사의 신비한 이야기들 (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3. 6. 20:16

 소림사 와 달마대사의 신비한 이야기들 

 

                                소림사

소림사는 중국 제 1의 선종 사찰이자 소림파 무술의 발원지이다.

중국 무술의 본산처럼 인식되는 소림사는 

정주와 개봉 사이에 있는 등봉시(登封市) 중악숭산(中岳嵩山)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소실산(少室山) 아래의 무성한 숲속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소림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북위 태화 19년(495년)에 효문제가 인도 승려 발타대사를 위해 지어졌으며,

지금까지의 역사만 해도 1,500년으로

후에 선종의 시조가 됨과 동시에 소림사는 중국 선종의 조정이 되었다.

 

흔히 소림사는 달마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사실은 약 1,500년 전 북위의 효문제 때(495년) 인도에서 온 발타선사가 창건했다.

전설에 따르면 발타선사는 여섯 명의 친구와 함께 출가했는데

친구들은 모두 성불하고 발타만 부처가 되지 못하였다.

그래도 낙망하지 않고 구도의 길을 떠난 발타는

마지막으로 중국에 이르러 효문제를 만나게 되고, 효문제의 명으로 소림사를 세웠다.

그는 30년간 소림사에 머물다가 떠났다고 한다.

 

소림사하면 달마대사가 떠오를 정도로 달마대사의 면벽(面壁) 수련은 널리 알려져 있다.

면벽 수련은 9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면벽은 움직임이 없는 벽과 같이 정신의 동요가 없게 하는 수련 과정이다.

면벽을 마친 후 신체가 많이 약해진 달마대사는 건강회복을 위한 신체수련에 들어갔는데,

이것이 점차 발전되어 소림파 무술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달마대사의 면벽 수련과 함께 또 유명한 것이 그의 제자 혜가의 이야기이다.

혜가는 달마대사의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가 받아줄 것을 청하였다.

하지만 달마대사는 하늘에서 붉은색의 눈이 내리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주저없이 혜가는 자신의 왼쪽 팔을 잘라서

쌓여 있던 하얀 눈 위를 붉게 만들어서 달마대사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오늘날 소림사는 무술로 유명하다.

소림 무술은 수당 시기에 이미 세상에 알려졌으며,

송대에는 독특한 풍격으로 '소림파'라는 중국 무술 중 하나의 문파가 되었다.

소림사는 오랜 시간을 지내오는 동안 많은 유적들이 손실되긴 했지만,

여전히 풍부한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고,

이러한 문물들은 모두 오랜 역사와 예술적·과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소림사다. 

 

절집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머리깍은 관람랙들도 보이고...

 

저 문을 통과해야 경내로 들어갈 수 있다.

 

사천왕상은 손오공이 대신하고...

 

드디어 대웅보전에 이르렀다.

 

돌거북의 위용도 대단하고...

 

향로의 크기도 상상을 초월한다.

 

천년도 넘은 쇠솥은 크기도 엄청나고... 

 

명문으로 보니 소림사의 장구한 역사를 알 수 있다.

 

두부 만드는 맷돌도 엄청나긴 마찬가지고...

 

'小林寺'인줄 알았는데(ㅎㅎ...) '大少林寺'란다.

 

부처님은 중생구제에 지쳤는지 누워계신다. ㅎㅎ

 

방장님은 출타 중이신데...워낙 유명한 분이시라 만나뵙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 어렵단다. 

 

어떤 부처님이신지 잘 모른다. 중국을 여행하려면 영어 하나만으로는 안된다. 그들이 안 통하니까...ㅜㅜ

 

동방성인도 있고...

 

서방성인도 있다.

 

돌조각은 수준높은 예술품이고...스님의 안광이 빛난다.

 

고루(북 걸어두는 누각)는 우리네 대문 만하다.

 

소림약방에서는 지금도 약초를 판매한다. 대단한 상술이다. 

 

정원에는 수천년인지 수백년인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오래된 석조 대문도 있다.

 

 달마대사의 신비한 이야기들

 

왠만하면 달마대사가 누군지는 모두 아실겁니다~!

중국 선종의 창시자로 명성이 드높지만,

사실 우리는 그 무섭게 생긴 달마도와 악을 막아주는 사람 정도로 알고있죠 ^-^

그토록 유명한 달마대사, 그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생사를 초월하는 달마 대사(達磨大師) 

 

중국 땅에 처음 선법(禪法)을 전달한 달마 대사는 선종(禪宗)의 시조(始祖)로서 그에 관한 일화가 많이 있습니다. 달마 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간 것은 부처의 법 중에 선법(禪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려고 한 것이었죠.달마대사는 선의 경지가 매우 높아서 생사의 경계를 초월해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예사로 해냈다고 합니다..  

달마 대사가 천산 산맥을 넘어 인도에서 중국으로 갈 때 앞을 가로지르는 강물을 만났다고 합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부근에는 배도 없고 인가도 없었지만 달마 대사는 태연하였죠.

 

그는 물위를 걸어서 강을 건너 중국 땅으로 갔던 것입니다..

달마 대사는 남인도 향지국 왕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일찍이 출가하여 반야다라에게 법을 받고 40년 동안 그를 섬기다가 양나라 보통 원년(520년) 9월에 광주 남해에 도착, 소주 자사 소앙의 소개로 금릉에 이르러 양무제와 만나 문답하게 되었죠.

 


 

양무제는 불심천자(佛心天子)라 불릴 정도의 사람으로 많은 불사를 한 사람입니다.

많은 절을 짓고 무수한 탑을 세우고, 여러 경전을 번역하고 또한 사경(寫經)도 하여 불법을 널리 세상에 포교하였던 사람.
 

왕은 달마 대사를 보자, 

 "짐이 즉위 이래로 많은 절을 짓고 경전을 새기고

 스님들 공양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했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습니까?"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어째서 공덕이 없습니까?" 

  "그것은 인천(인간 세상과 천상) 속세의 조그만 행위로서 공덕이 조금 새어 나올 뿐이오,

조금 있다 할지라도 참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참된 공덕입니까?"

  "진정한 공덕은 청정한 지혜를 체득함에 있는데,

깨끗한 지혜는 마음이 비어 조용한 데서 나오는 것이므로

 짐짓 드러내고자 마음내어 하는 일로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라고 했죠.

 

그러나 무제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도리어 대사를 외도(外道 : 그릇된 도를 닦는 이)로 취급하였습니다. 이에 대사는 곧 무제를 하직하고 강을 건너 소림사에 들어가서 날마다 벽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일러 벽관 바라문(壁觀婆羅門 : 벽을 바라보고 명상하는 인도 스님)이라 하였죠.

  

달마대사의 고약한 인상

 

 달마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 국왕의 셋째 아들로서 머리가 영특한 미남이었으며, 지금 여러 그림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무서운 얼굴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범명(梵名)은 Bodhi-Dharma이고 성장하여 대승 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禪)에 통달하였으며 나중에 선종을 중국에 전달하기 위해 험한 천산 산맥을 거쳐 중국에 갔죠. 어느 해 중국 땅에 선종의 뿌리를 내린 다음, 인도를 다녀오는 도중에 첩첩 산중의 오솔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마침 그때, 깎아지른 듯한 절벽 끝에 겨우 뚫린 좁은 길에, 코끼리보다 더 큰 짐승이 길을 막고 누워 막 숨을 거두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 짐승이 거기서 그대로 죽으면 천산 산맥의 길이 막힐 판국이었죠.

 

 달마는 재빨리 나무 밑에 자기의 육신(肉身)을 벗어 놓고 혼만 빠져 나와 그 큰 짐승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마치 차를 운전하듯이 그 짐승을 통행에 지장이 없을 만큼 길에서 멀리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짐승의 몸에서 혼이 빠져 나와 자기 본래의 육신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자기가 벗어 놓은 미남의 육신은 없고, 험상궂고 보기 흉측한 육체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어떤 라마교의 도승이 길을 가다가 문득 나무 밑의 혼이 빠져 나간 아름다운 육신을 보고 욕심이 나서 못생긴 자기의 육신과 몸을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었죠.

 

개구리였다면 좋았을텐데..
 

달마의 혼은 할 수 없이 그 못생긴 육신 속에 들어가서 중국으로 돌아왔는데 아무도 그를 달마로 알아보지 못했다고합니다.그러나 그가 하는 말과 행동 등이 똑같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틀림없이 달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옛날처럼 스승으로 잘 받들었다고 합니다.

 

 

죽은지 3년만에 다시 살아난 달마

 


달마는 중국에 간 다음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 9년 동안이나 묵묵히 벽만 대하고 앉아 참선을 했습니다.

중국 태생인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하고 앉아서 열반(涅槃)에 들었는데, 나라에서는 국장으로 성대하게 장사를 지내고 왕릉과 같이 큰 묘를 만들었습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중국사신 송운(宋雲)이 인도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葱嶺)에서 달마대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달마가 신발 한 짝을 매단 주장자(지팡이)를 등에 걸치고 걸어오는 것이었죠.
 

"3년 전에 돌아가신 스님을 여기서 만날 수 있으니 실로 신기합니다." 

 "나는 생사를 해탈한 사람이요. 생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소." 

 "그러나 내가 여기서 달마스님을 보았다고 하면 누가 나를 믿겠습니까?

다들 나를 미쳤다 하지 않을까요?"

  "내 묘를 파 보면 알 것이오. 거기에는 내 몸도 없고, 빈 관 속에 신 한 짝만 남아 있을 거요."

 

하고는 나머지 신 한 짝을 주장자 끝에 매달고 태연히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