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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 년의 역사가 살아 움직이는 고도古都 로마 (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1. 2. 7. 18:56

제목 3천 년의 역사가 살아 움직이는 고도古都 로마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1-19 조회수 128

 

 

 

3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로마의 언덕

 

로마의 언덕 위에 한 번 서 보자. 거의 3천 년이라는 시간이 퇴적된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베드로 대성당의 거대한 돔과 크고 작은 수많은 성당들, 판테온, 콜로세움 등 역사적인 건물들의 모습이 눈에 먼저 띄고, 그 사이로 군데군데 푸른 소나무 숲들이 펼쳐져 있다. 푸른 소나무 숲들은 불그스름한 색으로 통일된 로마의 색조를 긴장시켜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 마치 ‘영원의 도시’를 찬양하는 듯하다.  로마의 기원은 기원전 7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화에 의하면, 레아 실비아와 군신軍神 마르스 사이에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태어나지만 강에 버려지고, 테베레 강가에서 이들을 발견한 암늑대가 젖을 먹여 키우고, 또 이들을 발견한 목동이 양육했다고 한다. 로마의 역사는 늑대가 쌍둥이 형제들을 발견한 지점에 있는 팔라티노 언덕 위에 로물루스가 성곽을 쌓음으로써 시작되었다. ‘로마’라는 이름은 로물루스(Romulus)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지며, 쌍둥이 형제를 키운 암늑대는 지금도 로마의 상징이다.  로마의 역사에서 진정한 ‘늑대의 젖’이라면 바로 테베레 강이 아닐까? 약 400킬로미터 길이에 이르는 이 강은 북쪽 아펜니노 산맥에서부터 흘러내려와 로마를 관통하여 지중해 서쪽 바다로 빠져 나가는데, 바다와 내륙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수로였으며 로마의 젖줄이었으니 말이다. 로마는 바로 이 테베레 강변의 일곱 언덕을 중심으로 발전한 고도古都로 지금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재이자 거대한 박물관이다.  현재의 로마는 네 개의 서로 다른 역사를 지닌 ‘로마’가 중첩되어 있는 도시이다. 즉, 기원전 8세기 중엽부터 1200년 동안 지속된 ‘고대 로마’,  1000년 동안 지속된 ‘중세  로마’, 400년 동안 지속된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로마’, 이탈리아의 통일부터 지금까지 100년 이상의 ‘현대 로마’가 한 장소에 공존하고 있는데 이러한 복합적인 도시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로마의 광장과 분수와 길

 

로마 시가지는 언덕 위와 언덕 사이로 뻗은 길들과 언덕으로 오르내리는 계단들로 계획되어 있는데, 신전과 포룸의 유적, 성당, 탑, 궁전, 분수, 저택, 정원, 광장 등은 마치 잘 직조된 수예품처럼 교묘하게 들어서서 서로 이질감을 주지 않고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로마의 길을 걷다보면 묘한 재미가 있다. 골목길을 돌 때마다 마주치는 크고 작은 분수들이 가는 길을 멈추게 한다. 이 분수들은 예로부터 로마를 찾아온 순례자들의 목을 축여주었으리라. 마치 미로와도 같은 좁은 길을 걷더라도 멀리 보이는 오벨리스크의 모습이 방향을 인도해준다. 그러다가는 갑자기 시야와 가슴을 한껏 열어주는 광장이 펼쳐진다. 로마의 광장에는 위대한 건축가, 조각가들이 만든 분수들이 시야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는데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의 분수, 나보나 광장의 분수 등은  2천 년 전 고대 로마인들이 만든 10킬로미터가 넘는 지하수로를 통해 들여오는 물로 작동된다.  로마의 심장부에는 비아 델 코르소(Via del Corso) 거리가 중추신경을 이룬다. 이 거리의 좌우에는 넓고 좁은 골목들이 실핏줄처럼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있는데 이곳에서는 하찮은 골목길이라도 모두 깊은 역사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의 비아 델 코르소는 바로 비아 플라미니아(Via Flaminia)가 시작되는 구간이다. 비아 플라미니아는 로마의 심장 캄피돌리오 언덕 아래부터 시작하여 테베레 강 상류 골짜기를 따라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 동부해안 도시인 리미니까지 연결되는 장장 329킬로미터의 도로인데 로마 공화정 시대의 집정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에 의하여 기원전 220년에 건설된 것이다.   로마로 통하는 도로라면, 물론, 그보다 훨씬 전에 세워진 비아 아피아(Via Appia)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도로는 기원전 312년에 건설된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로 ‘로마로 통하는 모든 길’ 중에서 ‘도로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장 중요한 도로였다. 이 도로는 로마제국 전성기에 이탈리아 반도 남동쪽의 항구 브린디지(Brindisi)까지 연장되어 명실공히 540킬로미터의 대동맥이 되었고, 지금도 대부분 국도로 사용되고 있다.

 

 

 

가급적 손대지 않고 보존하는 유적 

 

캄피돌리오 언덕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시가지가 펼쳐지고, 남쪽에는 포로 로마노, 콜로세움 등과 같은 고대 로마의 유적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콜로세움 가까이에는 길이 약 600미터, 폭 200미터 쯤 되는 아주 넓은 황량한 공터가 있다. 왜 시내 한복판에 이런 빈 땅이 있을까? 빈 땅이라면 무엇인가 세우거나 무엇인가 채워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금싸라기 같은 땅을 개발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이곳은 로마제국 최대의 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 현재는 이탈리아어로 ‘치르코 맛시모’라고 불린다.)가 있던 자리였다. 즉 영화 <벤허>에서 보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차경기가 열리던 곳이다. 지금은 당시 관중석의 폐허만 조금 남아 있을 뿐 그 웅대했던 모습은 모조리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사라진 옛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하게 된다.  만약 이곳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다면 상상의 나래를 펴는 데에 방해를 받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비워둠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상상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듯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동양적인 지혜’일까?

 

 

조상의 유산을 팔아먹고 사는 게으른 국민? 

 

로마는 지구상에서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세계의 대도시들 중에서 가장 느리게 변화하는 도시이기 때문에 과거에 발이 묶여서 ‘미래’가 뿌리내리기 힘든 곳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런 도시 안에서 현대의 삶을 담아야하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불편함은 참아도 추악함은 참지 못한다. 사실, 로마에서는 기존의 길이나 건물은 함부로 뜯어고치지 못하고, 심지어 조그만 간판을 하나 달려고 해도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야하고, 시내버스 색깔도 도시의 분위기에 맞게 정하는데 그것은 로마가 지닌 역사성과 예술성이 철저하게 존중하기 때문이다.  복원과 보존은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유지하여 미래에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때 문화재에 가해질 수 있는 피해와 손상을 억제하고 최소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문화재의 복원 및 보존에 대한 인문학적이며 과학적인 노하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방법론과 그에 상응하는 첨단기술을 끊임없이 연구 개발해 나가고 있다. 그것은 국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가 이탈리아 사람들을 조상들이 물려준 유적을 팔아먹는 게으른 국민이라고 감히 속단할 수 있겠는가? 

 

 

 

글 / 사진 ㆍ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