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34세의 늦은 나이에 무과에서 병과 4등 (전체 12등 정도)으로 군인의 길을 시작한 충무공은 임지왜란 발발 1년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지금의 함대 사령관 별 2개)에 부임하여 숱한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조선을 전란의 위기에서 구한 일등 공신이었다. 그후 정쟁의 희생양이 되어 고문관 옥살이로 백의종군하였지만 원균의 작전실패로 조선수군은 궤멸이 되고 남은 건 판옥선 12척이 전부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충무공을 다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 하였고 수군폐지를 주장하는 조정신료들에게 今臣戰船 尙有十二(금신전선 상유십이)"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장계를 올리고 명량 (울돌목:전남 진도와 해남사이의 해협) 에서의 일전을 준비하였습니다. 누가보다 불가능한 싸움이었지만 지형지물을 이용한 뛰어한 전략과 작전으로 일본수군 333척(기록에 따라서 133척)을 대파하고 조선을 또 한번 구하게 됩니다. 전투에 나가기전 사기가 떨어진 군사들을 위해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말로서 사기를 볻돋우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입니다. 전투가 끝나고 충무공은 호남지방의 전략적 중요성을 장계하였는데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만약 전라도가 없었다면 나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전라도는 조선 최후의 보루였던 것이죠. 만약 전라도가 적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1910년 한일합병이 아닌 500년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마지막 희망 최후의 뭔가가 있을 것 입니다. 그 무엇마져 잃는 다면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겠죠? 충무공께서도 그 마지막 희망이 있었기에 12척의 전선으로 불가능한 전투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 [출 처] *~ ~^* 若無湖南 是無國家(약무호남 시무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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