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중과 조화를 바탕으로 한 세계유산역사도시 바스Bath
2009년 5월의 어느 날, 오락가락하던 소나기 속에서도 인구 약 8만 5천명의 영국 고도古都 바스Bath시 다운타운은 수많은 관광객으로 활기가 넘쳤다.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15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중·소규모 도시 바스Bath시는 영국에서 유일한 온천지역인 아본강the River Avon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로마시대부터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왔으며, 1590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하여 시로 승격된 이후 현재까지도 도시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세계적 사랑을 받고 있다. 잉글랜드 왕 에드가Edgar의 973년 즉위식이 거행되었던 바스대사원Bath Abbey, 18세기 건축 죠지안Georgian 스타일의 역사건축물 등은 바스Bath시가 영국의 대표 고도古都로 인식되는 데 손색이 없으나, 오늘날 바스시에 대한 세계적 관심과 사랑은 도시 구석구석에서 소리 없이 계속된 지방정부와 시민의 고도古都보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1987년 바스시 전역이 유네스코UNESCO에 의하여 ‘세계유산역사도시World Heritage Site’로 지정됨으로써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도심을 북쪽으로 벗어나 한적한 개이스트리트Gay St. 길가 울타리에 비치된 조그만 게시물은 바스Bath시 고도古都보존노력의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리노베이션이 진행 중이던 건물 앞에 비치된 게시물은 해당 건물이 지정역사건축물the Listed Building임을 알려줌과 동시에 진행 중인 개·보수공사가 바스Bath시 지방정부로부터의 승인을 득하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바스Bath시가 시민단체와 지역주민으로부터의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수립한 ‘세계유산역사도시 종합관리계획World Heritage Site management Plan’은 ‘박물관’이 아닌 지역주민과 지역경제를 고려한 ‘삶의 터전’으로 바스Bath시를 가꿔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해당 계획은 바스Bath시 전역에서의 건물 개·보수시 역사 건축물과 주변 환경에 대한 존중과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 깊게 관찰할 것은 바스Bath시 고도보존계획 상의 ‘존중과 조화’부분이다. 해당 역사문화자산과 역사문화경관은 절대적 보존이 아닌 창조적 보존이며, 이는 무조건적인 행위제한이 아닌 존중과 조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엄격한 개발관련 행위유도지침을 통하여 가능하였다. 즉, 엄격하고 까다로운 사전 심의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건축물이 도시 전체 전통경관 이미지를 저해하지 않으며 동시에 새로운 건물 자체가 미래에 또 다른 역사건축물로서 인식될 수 있을 만큼의 가치를 지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전통과 역사의 미래적 가치 통한 창조적 문화계승 에딘버러Edinburgh
이러한 조화 중심의 창조적 고도古都관리 방안은 영국의 또 다른 고도古都, 에딘버러Edinburgh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Scotland 지방 남동쪽에 위치하며 수도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에딘버러Edinburgh시는 그 도심에 에딘버러 성Edinburgh Castle을 비롯한 중세시대 건축물은 물론 18세기 조지언Georgian 양식의 건축물과 19세기 빅토리안Victorian 양식의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친 역사건축물이 주변 구릉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럽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인식되고 있는 이곳은 중세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르는 도시경관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바스Bath시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1995년 ‘세계유산역사도시World Heritage Site’로 지정되었다. 에딘버러Edinburgh시 행정구역 내에는 약 3,000개 이상의 등록역사건축물the Listed Buildings과 39개에 달하는 보존지구Conservation Areas가 존재한다. 이들에 대한 관리 및 건물 보수, 철거, 신축 등 개발과 관련된 모든 행위는 에딘버러Edunburgh시 도시계획부서 문화유산팀에서 감시·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기본 관리방향이 역사건축물과 역사경관의 보존에 중점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발 또는 건물 신축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신규개발의 경우 앞서 바스Bath시의 사례와 같이 기존 역사건축물과의 조화와 해당 신축 건물의 디자인 퀄리티에 대한 요구는 매우 까다롭다. 에딘버러Edinburgh 문화유산팀 소속의 시청 공무원인 도로시와이트Dorothy White는, “신규건축물의 경우 (주변 건물과의 조화는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훌륭해야 합니다. 보존지구 내에서 만큼은 우리는 매우 까다롭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어요.”라고 언급하며 에딘버러Edinburgh 도심 내에서의 개발행위에 대한 철저한 관리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리의지는 신축건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기존 역사건축물의 유지관리 및 보수의 경우에도 유지되고 있다. 에딘버러 월드 헤리티지EWH: Edinburgh World Heritage와 같은 비영리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하여 시정부는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역사건축물의 관리 및 복원을 힘쓰고 있다. EWH는 도심에 산재된 연사건축물의 역사적 특성과 건물 복원 기술에 대한 지속적 연구를 통하여 복원 지침서를 작성하고, 이는 노후하거나 부분 훼손된 역사건축물의 복원은 물론 도시 전체 정통성을 유지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에딘버러Edinburgh 시정부의 노력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조화’와 ‘까다로움’을 기반으로 한 도시미학의 국내 정착
바스Bath시와 에딘버러Edinburgh시에서 살펴본 영국에서의 고도古都보존사례는 보존과 변화의 허용이라는 다소 상반된 두 가지 큰 관리 방향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국 고도古都의 역사문화자산 관련부서와 공간계획 관련부서 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하여 그 동안 변화(개발)의 걸림돌로 여겨졌던 개별 역사문화자산 보존정책은 1,900년대 후반 탈산업화시대를 거치며 역사문화환경 관리·조성이라는 광역적 보존개념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고도古都 지역 경쟁력 제고는 물론 지역주민들의 자긍심 고취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국 고도古都의 주민들은 오늘날의 문화재 관련부서를 행위제한을 주도하는 기관이 아닌 지역 발전을 위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바람직한 변화를 계획하는 행위유도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 비록 중밀도 이상의 건축 밀도를 그 특징으로 하는 영국 고도古都를 위한 관리방안이 목조·저밀건축물 중심의 우리나라 고도古都 및 역사문화도시에 그대로 적용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 하지만, 역사문화보존 정책이 더 이상 행위규제차원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고도古都를 비롯한 국내 역사문화도시가 바람직한 미래를 구현하는 유도체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고도古都 관리사례와 같은 적절한 예가 필요하다. ‘조화’와 ‘까다로움’을 기반으로 한 도시미학을 국내에 정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며, 관官중심의 선도적 의식전환을 통하여 지역주민을 이해시킬 수 있는 국내 성공사례의 축적이 필요하다. 국내 고도古都 주민 스스로가 지역 내 개발행위에 대하여 ‘까다로울’ 수 있는 그날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우리의 고도古都로 다시금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사진 | 권태정 국토연구원 문화국토전략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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