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북동 골목길
성북동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두 마리 비둘기가 그의 발 앞에서 모이를 찾아 걸음을 옮긴다. 고급 주택들이 즐비한 성북동에 옛 집이 남아있는 것을 알았을까.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거처를 잃었던 비둘기가 어쩐 일인지 오늘은 이곳에 있다. 그는 오랜만에 찾은 최순우 옛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어린 시절에는 왜 그렇게 골목에서 놀았을까요. 작은 골목을 보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구슬치기며 땅따먹기를 했던 추억들이 떠올라요. 작은 골목은 추억의 타임머신 같은 것이죠.”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서 나타난 옛 집은 어린 시절 놀러 갔던 외가댁과도 같은 정겨움이 서려 있다. 최순우 옛집의 대문을 밀자 기름칠 되지 않은 나무 이음새에서 투박한 소리가 난다. 그리고 이내 나무냄새가 확 퍼진다. 그는 소리와 냄새로 추억을 되짚는 버릇이 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삼선교 근처에 큰 외삼촌댁이 있었어요. 또래 사촌들과 대청마루에서 보냈던 기억, 안채를 뛰어다녔던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대문을 열자마자 그 때 놀았던 외삼촌댁의 향기가 났어요. 마치 그때 처럼요.”
그는 유년시절의 추억 중 한옥에서의 시간들이 유난히 많았다. 외가댁도 마포 홍덕동에 자리 잡았던 한옥이었고, 큰 외삼촌댁도 그랬다. 이제는 모두 그때의 보금자리를 떠났고, 자신도 아파트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여행은 마치 먼 길을 돌아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
옛집의 툇마루에서
마침 두둑 빗줄기가 처마를 친다. 장마를 앞두고 있는 여름 날, 그는 처마 모서리 끝 아래에 놓여 있는 물받이 돌을 보며 떨어지는 빗방울과 자신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어린 시절 외가댁 한옥이 참으로 커보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그렇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한옥을 살펴보면 수납공간들이 참 많아요. 그게 신기했었어요. 툇마루와 댓돌 사이에 고양이며 벌레들이며 참 많은 것들이 함께 살았었죠.”
최순우 옛집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30년대로 이곳은 혜곡 최순우 선생께서 1976년부터 기거 하시면서 가옥과 뜰을 보수, 보전하시고 작고하실 때까지 정성들여 돌보셨던 집이다. 재개발로 한 때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2002년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성금을 모아 매입해 2004년 시민문화유산 1호로 일반인에게 개방 되었고, 2006년 등록문화재 제286호로 등재 되었다.

“최순우 선생님께서 국립중앙박물관을 역임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국의 미를 살려 집을 보전해 주셨던 것이 참 귀하게 느껴지네요. 아내와 함께 업무 차 일본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작은 마을에도 그 곳에서 자라고 살았던 명사들의 집을 잘 보존하고 관광코스로까지 만든 것을 보았어요. 우리 나라도 이런 곳이 많으면 좋겠다 생각했죠. 최순우 옛집처럼 사라져가는 우리의 집들이 많이 보존되면 좋겠어요.”
불과 수십 년 전만해도 한옥집이 즐비했던 이 동네는 상전벽해를 이루었다. 이젠 전통적인 한옥을 찾아 보기 어렵게 되었고, 최순우 옛집처럼 보존을 해야 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귀한 것이 되었다.
“한옥이라는 점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이곳이 가치가 있는 것은 최순우 선생님이 남기신 명저들이 집필된 곳이기 때문이지요.”
한 번쯤은 들어봤을 책제목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였던 최순우 선생의 글들이 이곳에서 세상의 빛을 보았다. 선생은 댓돌까지도 깨끗하게 쓸고 닦으며 앞뜰에 우리네 꽃들과 나무들을 가꾸면서 사소한 자연과 가옥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면서 살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선명한 것은 자연과 함께한 기억이 많기 때문이에요. 자연에서 신나게 뛰어놀 때의 색色이 ‘녹색’이 많았기 때문에 더불어 기억이 선명해요. 35년이 지났는데도 말이죠. 어쩌면 이런 경험들이 나의 큰 자양분이 되어준 것 같아요.”
최순우 옛집 앞뜰에는 130년 된 향나무와 이미 꽃을 피웠던 모란, 그리고 앞으로 꽃을 피워낼 수국 등 해당화가 가득했다. 그리고 뒤뜰에는 높다란 축대를 장식한 넝쿨들이며 최순우 선생이 생전에 수집해 놓았던 동자석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내 삶의 힘
“설이나 추석이 되면 차가 아무리 밀려도 고향을 가려고 하는 마음들이 있잖아요. 나의 생이 시작되면서 처음 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했던 것들이 주는 편안함을 다시 느껴보는 것이 참 좋아요. 아련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다시 느낀 그 느낌들이 오늘날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최순우 옛집이 좋은 것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보존 가치를 넘어서 한옥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고향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얼굴로 여행을 즐기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옛집이 주는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외숙모가 해주셨던 콩나물에 두부부침, 마당에서 세수하고 이 닦고 했던 어릴적 그의 모습들이 스틸사진처럼 스쳐간다.
“저에게 있어 방송은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에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로움이 되는 그런 방송을 하고 싶어요. 그것이 저의 꿈이죠.”
옛 집이 주는 편안함, 자연이 주는 생생함처럼 그의 삶의 목표도 더불어 사는 세상 속,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는 빠르고 급격히 변하는 트렌드를 따라가기 보다는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서 진정한 이로움이 되는 그런 방송을 꿈꾼다. 이제 최순우 옛집은 다시 한 번 ‘삐그덕’ 그윽한 소리로 응원하며 그를 세상에 내어 준다.

감성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 공군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포항, 대구, 부산 변두리 시골에서 살면서 ‘초록빛’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다. 5학년 때부터 서울로 올라와 한옥이었던 외갓집에서 노는 것을 낙으로 여기며 살았던 그는 추억들을 자양분 삼아 자라나 우리나라 대표 아나운서가 되었다. KBS 공채로 아나운서 삶을 시작했던 그는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가요톱10’, '생방송 아침마당’ 등 때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인기리에 진행하였고 지금은 KBS ‘1:100’, EBS ‘생방송 교육마당’ 을 진행하고 있다. 2002년 세계평화아동축제 아동평화대사를 맡기도 했으며, 1998년 한국여성민우회 푸른미디어상, 1998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표창, 2008 제9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MC 부문 포토제닉상 등을 수상했다.
글·김진희 사진·최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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