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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이순신장군을 살렸다 (옮겨온 글)

왕토끼 (秋岩) 2014. 10. 6. 16:32

일본이 이순신장군을 살렸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명량대첩 직후 중국 명나라에서 파견 온 정왜대장(征倭大將) 마꿰이(麻貴) 제독이 오히려 더 몸이 달아서 조선 조정에게 계속 닦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포상 대상자를 빨리 더 많이 올려 달라. 재원이 부족하다면 우리가 대신 포상하겠다. 중국인과 똑같은 수준으로 상을 내리겠다.”

그러나 조선 조정의 분위기는 의외로 너무나 침착했고 또 싸늘했습니다.

비변사 왈: “우리나라가 사소하게 적의 수급(首級)을 베어 온 일을 어찌 일일이 중국에 보고하겠습니까? 상감마마께서 사양하는 뜻으로 중국에 보고하지 않게 하신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명나라 군대로부터 이미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별도로 상을 주고 안 주고는 오직 상감마마의 뜻에 달렸다 ...하겠습니다.”

선조임금 왈: “우리나라 장병들이 적의 수급을 하나둘 세는 것이 마치 어린애들 장난 같아서 이미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는데, 어찌 감히 그 수효를 적어 보고까지 하여 또 웃음거리가 되겠는가? 중국 측의 요청이 격려의 뜻에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로서는 그저 미안할 따름이라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에 대해서는 참으로 포상할 만한 일이기는 하나 특별승진까지 시키는 것은 좀 지나친 듯하다. 좀더 논의해서 고하도록 하라.”

이순신이 삭탈관직되어 백의종군할 때에도 다시 복귀할 때에도 중국에서 계속 감싸고 돌면서 관심을 가지자 선조 임금 이하 조정 각 대신들이 심술을 부린 것인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전쟁이 끝나도 이러한 분위기는 조선이 망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조선에서 이순신 장군은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달랐습니다.
명량해전에서 살아 남은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장군은 나중에 일본 내전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편에 붙어서 자기 수명을 다하고 죽었지만, “가장 미워하는 사람도 이순신,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이순신, 차 한 잔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라는 말을 남겼던 와키자카 장군의 후예들은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가문 신사(神祠)에 모시고 수백 년간 제사를 지내 왔다고 합니다.
일본 메이지 유신 때 일본해군사관학교를 만들었는데 여기 교육과정 중에 “이순신 전술전략”이라는 과목이 있었고, 그걸 배운 생도 중에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라는 사람이 있어서 나중에 러일전쟁 때 진해 앞 바다에서 세계최강 러시아 발틱함대를 대파하는 주인공이 됩니다. 이 도고 제독 함대가 출항하는 날 새벽에 대부분의 배 갑판에서 일본 해군 장병들이 이순신 사당 있는 쪽으로 일제히 참배를 했다고 하고, 도고 제독 또한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우리나라 소설가 이광수에 의해서 소설 “이순신”이 쓰여지게 되고, 그제서야 우리나라에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뒤늦게 되살아나게 됩니다.
이 때 소설 이순신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박정희 학생은 나중에 대통령이 되어 충남 아산에 “현충사”를 중건하고 이순신을 우리의 민족영웅으로 승격시켰지요.
하여튼 국적을 뛰어넘은 일본인들의 세계최강에 대한 숭배정신에 대하여 우리는 성급하게 감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함부로 비웃을 수도 없고... 그저 난감하네요.
좀 진지하게 일본을 바라보려 하다가도 그 놈의 독도 문제만 나오면 모든 게 망가지니...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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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문학박사 황재순(인천 부개고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