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계간지 ‘문화통’
광주전남지역 1호 소개
광주 최초 근대병원은 제중병원
광주 최초의 영화관은 광남관(光南館)이다. 1927년 10월 활동사진상설관으로 등록됐다. 경영자는 일본인 구로세였고 관람석은 543석이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세운 극장 가운데 현존하는 곳은 광주극장뿐이다. 광주에 처음 문은 연 금융기관은 광주농공은행이다. 1906년 3월에 제정·공포된 ‘농공은행조례’에 따라 설립됐다. 2년 뒤 광주농공은행 영산포지점이 개설됐는데 나주농공은행이라 불렀다. 1918년 농공은행을 모체로 한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면서 흡수·해체됐다. 광주 최초 양복점은 와다나베다. 1920년대 초 일본인 와다나베가 지금의 충장로1가 조선대 동창회관 자리에 문을 열었다. 최초 양장점은 이진모 씨가 1955년 충장로2가에 문을 연 모나미 양장점이다. 초창기에는 주로 교복을 만들다가 양장으로 바꿨다. 2호는 이철우 씨가 1957년 충장로2가에 오픈한 남성양장점이다. 1973년 서울로 진출해 마담포라라는 전국브랜드로 성장했다.
문화전문 인터넷 신문인 문화통(www.mtong.kr)이 광주전남지역의 1호를 추적했다. 최초의 병원이나 의사, 교회, 성당, 양복점, 극장, 음식점 등을 찾아내 계간지 ‘문화통&Asia’에 소개했다.
○ 광주 최초 병원은?
광주 최초의 근대병원은 제중병원으로 현재의 기독병원이다. 미국 남장로교 의료선교사 놀란 씨가 1905년 진료를 시작했으며 1911년 건물을 신축했다. 이 병원은 1911년 미국인 그라함이 죽은 딸 엘라 래빈 그라함을 추모하기 위해 보내온 기부금으로 3층 벽돌건물을 짓고 ‘E. L 그라함 병원’이라고 불렀는데 1933년 화재로 전소됐다. 광주지역 최초의 개업의는 전남 강진 출신 김종섭 씨로, 1917년 황금동에 광산의원을 개업했다. 김 씨는 1889년 지석영이 설립한 경성의학 전신인 경성의학강습소를 졸업했다. 최초 여의사는 동경여자의전을 졸업하고 1928년 남동에서 개업한 현덕신 씨다. 광주 YWCA 2대 회장을 지낸 최원순의 부인이다. 광주에서 처음으로 서양음악회가 열린 곳은 양림동 오웬기념관이다. 이곳은 1914년 오웬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 출신 김필례 씨가 1920년 처음으로 독주회를 열었다.
광주에 청요리집(중국집)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3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 광주의 대표적인 청요리집은 화흥루(충장로5가), 덕의루(금남로4가), 송죽루(황금동), 아관원(광산동), 아서원(충장로4가), 영빈루(금남로3가) 등이다. 현재 광주에 남아 있는 중국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은 왕자관이다. 전남 고흥에서 광주로 이주한 왕지의(王之義)가 1945년부터 운영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어디일까. 전남 나주에 있는 나주곰탕의 원조 ‘하얀집’이다. 1910년 고(故) 원판례 할머니가 백반을 팔았고 6·25전쟁 직후부터 곰탕으로 바뀌었다.
○ 1917년에 처음 전깃불 들어와
광주에서 처음으로 서양음악회가 열린 남구 양림동 오웬기념관.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 출신 김필례 씨가 1920년 독주회를 열었던 곳이다. 문화통 제공광주에 전깃불이 들어온 것은 1917년 8월이다. 전선은 고압과 저압선을 합해 연장 9km다. 당시 전봇대는 200여 개이며 3500개 등(燈)을 켤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전기가 공급된 곳은 자혜병원으로 95등, 광주감옥 45등, 광주우체국 35등이었다. 최초로 수돗물이 공급된 시기는 증심사 입구 제1수원지가 완공된 1920년 5월이다. 초기에는 시내 중심부의 공공시설, 일본인과 몇몇 조선인 가구에 공급되었다.
광주에서 처음으로 자가용 승용차를 탄 사람은 잡화점을 차려 많은 돈을 번 지정남 씨다. 지 씨는 1930년대 초 충장로3가 옛 호남은행 옆에 동아부인상회 광주지점을 열고 여성용품, 일용품, 학용품 등을 팔았다.
광주천에 있었던 가장 오래된 다리는 부동교와 공원다리 사이에 있던 노지다리다. 1896년 광주를 방문했던 오횡묵이라는 사람이 남긴 기록 ‘지도총쇄록’에 운교, 즉 구름다리라고 소개됐다. 노지는 광주를 부르던 옛 이름들 가운데 하나다. 통나무를 베어다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얼기설기 잔가지를 얹은 다음 흙을 덮어 만든 다리였다.
지형원 문화통&Asia 발행인은 “우리지역의 최초를 찾기 위해 각종 사료와 논문, 회보 등을 뒤졌다”며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광주전남지역의 1호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 여름호 특집으로 꾸몄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문화전문 인터넷 신문인 문화통(www.mtong.kr)이 광주전남지역의 1호를 추적했다. 최초의 병원이나 의사, 교회, 성당, 양복점, 극장, 음식점 등을 찾아내 계간지 ‘문화통&Asia’에 소개했다.
○ 광주 최초 병원은?
광주 최초의 근대병원은 제중병원으로 현재의 기독병원이다. 미국 남장로교 의료선교사 놀란 씨가 1905년 진료를 시작했으며 1911년 건물을 신축했다. 이 병원은 1911년 미국인 그라함이 죽은 딸 엘라 래빈 그라함을 추모하기 위해 보내온 기부금으로 3층 벽돌건물을 짓고 ‘E. L 그라함 병원’이라고 불렀는데 1933년 화재로 전소됐다. 광주지역 최초의 개업의는 전남 강진 출신 김종섭 씨로, 1917년 황금동에 광산의원을 개업했다. 김 씨는 1889년 지석영이 설립한 경성의학 전신인 경성의학강습소를 졸업했다. 최초 여의사는 동경여자의전을 졸업하고 1928년 남동에서 개업한 현덕신 씨다. 광주 YWCA 2대 회장을 지낸 최원순의 부인이다. 광주에서 처음으로 서양음악회가 열린 곳은 양림동 오웬기념관이다. 이곳은 1914년 오웬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 출신 김필례 씨가 1920년 처음으로 독주회를 열었다.
광주에 청요리집(중국집)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3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 광주의 대표적인 청요리집은 화흥루(충장로5가), 덕의루(금남로4가), 송죽루(황금동), 아관원(광산동), 아서원(충장로4가), 영빈루(금남로3가) 등이다. 현재 광주에 남아 있는 중국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은 왕자관이다. 전남 고흥에서 광주로 이주한 왕지의(王之義)가 1945년부터 운영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어디일까. 전남 나주에 있는 나주곰탕의 원조 ‘하얀집’이다. 1910년 고(故) 원판례 할머니가 백반을 팔았고 6·25전쟁 직후부터 곰탕으로 바뀌었다.
○ 1917년에 처음 전깃불 들어와

광주에서 처음으로 자가용 승용차를 탄 사람은 잡화점을 차려 많은 돈을 번 지정남 씨다. 지 씨는 1930년대 초 충장로3가 옛 호남은행 옆에 동아부인상회 광주지점을 열고 여성용품, 일용품, 학용품 등을 팔았다.
광주천에 있었던 가장 오래된 다리는 부동교와 공원다리 사이에 있던 노지다리다. 1896년 광주를 방문했던 오횡묵이라는 사람이 남긴 기록 ‘지도총쇄록’에 운교, 즉 구름다리라고 소개됐다. 노지는 광주를 부르던 옛 이름들 가운데 하나다. 통나무를 베어다 교각을 만들고 그 위에 얼기설기 잔가지를 얹은 다음 흙을 덮어 만든 다리였다.
지형원 문화통&Asia 발행인은 “우리지역의 최초를 찾기 위해 각종 사료와 논문, 회보 등을 뒤졌다”며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광주전남지역의 1호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 여름호 특집으로 꾸몄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2013.6.19 동아일보에서 퍼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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