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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하피첩 옮겨온 글2012.3.24.수신메일

왕토끼 (秋岩) 2012. 3. 24. 07:09

200년 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다산 정약용선생의 글씨 ‘하피첩’이 어제(2006. 4. 2) 오전 11시 KBS에서 방영된 ‘진품명품’에서 감정가 1억으로 평가됐다. 이 서첩은 다산선생이 두 아들에게 준 유명한 글인데 그러한 서첩이 있다는 것과 그 서첩에 기록된 내용까지도 다산문집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었지만 그 서첩의 행방은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진품명품’에 들고 나온 감정의뢰인은 집짓는 공사장에 고물수집하려 온 할머니에게서 이를 발견하고 공사장 고물과 바꿨다고 했고, 자기도 예사롭지 않은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토록 귀중한 것일 줄은 몰랐다면서 예상가 15만원을 제시했었다. 이보다 앞서 이 서첩발견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일부에서는 진위논란이 일기도 했다.

書誌학자이며 진품명품감정위원인 김영복선생은 글씨와 서첩의 재질로 보아 진품이라 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원우 미술사교수는 글씨 가운데 篆書體는 수준이 좀 떨어지는 듯 하고 行書體는 비슷하지만 세련미가 부족하다면서 의아함을 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서첩은 똑 같은 재질로 만든 것임이 입증되는 그림 한 폭이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서 다산이 쓴 진품으로 감정되었다.

그러면 ‘하피첩’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다산선생이 강진유배 10년째 되던 해(1810)에 서울에 있던 부인 홍씨는 남편을 그리며 20여 년 전 시집올 때 입고 왔던 치마 한 점을 남편에게 보냈다. 이를 받아들고 부인의 애틋한 정을 느끼며 깊은 감회에 잠겼던 다산은 치마를 작은 책장만큼(12x16cm)씩 여러 장으로 잘라 한지를 배접한 후에 얄팍한 서첩 4권을 만들어서 어렸을 제 떠나왔지만 이제는 장성했을 두 아들(學淵, 學游)에게 가르침을 주는 글을 썼다.

내가 너희에게 전답을 남겨 주지는 못하지만 평생을 살아가는데 재물보다 소중한 두 글자를 주겠다. 한 자는 勤이요, 또 한 자는 儉이다. 무엇을 근이라 하고 무었을 검이라 하는가? 이러한 내용으로 시작하여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새겨야 할 많은 글들을 절절한 문장과 시로 썼는데 그 중 앞부분에 나오는 五言詩 한 수를 여기에 옮긴다.

   妻病寄敝裙     병든 아내가 날근 치마를 보내왔으니
   千里托心素     천리 머나먼 길 애틋한 정을 담았네.
   世久紅已褪     흘러간 세월에 붉은 빛 다 바래서          
   悵然念哀暮     만연의 서글픔을 가눌 길 없구나.

   裁成小書帖     마름질 해 작은 서첩을 만들어서
   聊寫戒子句     아들을 일깨우는 글을 적는다.
   庶幾念二親     부디 두 어버이 마음 헤아려서
   終身鐫肺腑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도록 하라.

이처럼 빛바랜 치마로 만든 서첩이어서 안개하(霞)자, 치마피(帔)자, 하피첩이라 이름 했다고 한다. 다산선생은 15세에 한 살 연상의 홍씨부인과 결혼하여 6남 3녀를 두었으나 모두 일찍 여의고 2남 1녀를 길렀다. 그러나 그들이 아직 어릴 때 멀리 귀양 온 다산은 자녀들을 직접 훈육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다산 4형제가 모두 辛酉邪獄(천주교박해, 1801년) 때 처형되거나 유배되었기 때문에 그 아들들이 변변히 공부할 환경도 못되었건만 맏아들 學淵은 당대의 名儒들과 교유하면서 많은 시를 남긴 시인이었으며, 둘째 아들 學游는 農家月令歌의 저자로 알려진 문인이었으니 천리 밖 아버지의 간곡한 가르침이 이와 같이 훌륭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다산은 서첩을 만들고 남은 치마폭의 일부를 가지고 조그마한 가리개병풍을 만들어 그 위에 활짝 핀 매화가지에 멧새 두 머리가 나란히 앉은 그림을 그리고 그 밑에 다음과 같은 詩經風의 古體詩 한 수를 行書로 써서 시집가는 딸에게 주었다. 이것이 현재 고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저 유명한 다산의 ‘梅鳥圖’이다.

   翩翩飛鳥  息我庭梅   펄펄 나는 저 새 우리 집 매화가지에 쉬는구나.
   有烈其芳  惠然其來   꽃다운 그 향기 짙기도 하여 즐거이 놀려고 찾아 왔도다.
   爰止爰棲  樂爾家室   여기에 올라 깃들어 지내며 네 집을 즐겁게 하라.
   華之其榮  有蕡其實   꽃이 벌서 다 피었으니 열매도 많이 열리리로다.

이렇게 다산은 부인의 치마로 “서첩 4권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나머지로 작은 가리개를 만들어 딸에게 준다”(剪之爲四帖 以遺二子 用其餘 爲小障 以遺女兒)는 뜻을 화조도 말미에 명확히 기록했고, 아들에게 준 서첩에도 그런 기록이 있어서 이번에 나타난 3권의 서첩을 감정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니 재질이 똑 같은 명주이며 그 직조된 천의 조직이나 빛바랜 정도, 배접한 수법, 글씨의 필치 등 모두가 하나 같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화조도는 고대박물관에 소장되었고, 서첩 4권은 소재가 묘연하다가 이번에 3권만 나타난 것일까?

화조도가 당시의 큰 학자였던 다산의 외손자 尹廷琦의 ‘詩經硏究書’와 함께 소장된 것으로 보아 딸의 媤家인 윤씨가문으로 전해 오던 것이 고대박물관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서첩은 이제까지 어디에 숨어 있다가 3권이 나타났으며, 나머지 한 권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김영복감정위원이 “감정을 맡아온 이래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했듯이, 나 또한 진품명품을 시청하던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1억짜리 글씨가 나타났다는데 흥미를 가지기보다는 옛 先人들의 겉으로 들어나지 않으면서도 내면에 깊이 숨은 고결한 사랑과 천리 밖에서도 자녀교육에 온갖 정성을 다 기우리는 다산선생의 숭고한 가르침을 우러러보면서 오늘날 우리사회의 가정교육실태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피첩霞帔帖  / 다산 정약용


  다산 정양용께서 따님에게 보낸 화첩(하피첩)

 

다산 정약용이 천주학쟁이라는 죄목으로 전남 강진에서 1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할 때

병든 아내 홍부인이 시집올 때 입었던 낡은 치마 여섯 폭을 보내온다.

  

초로의 병든 아내는 왜 유배지에 있는 남편에게 이 빛바랜 치마를 보냈을까.

가례를 치르던 날 그토록 붉고 선명하던 붉은 색 활옷 치마는 이제 낡을 대로 낡고

빛이 바래 노을빛만 남았다.

서로 떨어져 함께 하지 못하는 부부간의 그리움도 이제는 차분히 가라앉은

노을빛이 된 것인가.

그리움에 애가 타기는 해도 이제는 젊은 날의 열정마저 빛이 다 바랬으리라.


 다산은 아내가 보내온 치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위로 조각조각 정성스럽게

잘라 배접을 하고 첩(帖)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산은 배접을 한 후 먼저 네 첩으로 만들어 두 아들에게

경계하는 말을 지어 보냈다.

그 나머지를 이용해서 다산은 남은 치마폭에 가리개를 만들어 시집간 딸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 치마조각들을 책으로 묶고 표지에 하피첩( 霞帔帖)이라 썼다.

‘노을치마’란 뜻이다.


다산은 아내가 보내온 빛 바랜 치마폭을 잘라 딸을 위해 그린 梅鳥圖 또는

梅花屛題圖(1813년;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되어있음)에는 둥치는 그리지 않고

둥치에 비껴 나온 매화 가지를 그리고 그 가지위에 멧새 두 마리를 그렸다.

한 녀석은 먼데를 쳐다보고 있고 딴 짓을 하던 한 녀석은 고개를 돌려 제짝과

눈길을 맞춘다. 그림 아래 여백에 시를 한수 짓고 곁에다 이런 글을 남긴다.


 ‘가경 18년 계유년(1813년) 7월 14일 열수(洌水) 늙은이는

다산의 동암에서 쓴다.

내가 강진서 귀양산지 여러 해가 지났다.

홍부인이 낡은 치마 여섯 폭을 부쳐왔다.

세월이 오래어 붉은 빛이 바랬길래 이를 잘라 네 첩으로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었다.

그 나머지를 이용해서 작은 가리개로 만들어 딸에게 보낸다.’

그 가리개에 그린 매화 가지 아래에 쓰인 시는 다음과 같다.


 翩翩飛鳥 (편편비조)

 펄펄 하늘을 나는 새들이

  

息我庭梅 (식아정매)

우리 집 뜰 앞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有烈其芳 (유열기방)

꽃다운 그 향기 은은하기도 하여

 

惠然其來 (혜연기래)

즐거이 재잘거리려 찾아왔나보다

 

爰止爰棲 (원지원서)

이렇게 이르러 둥지를 틀고

 

樂爾家室 (낙이가실)

너희는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華之旣榮 (화지기영)

꽃은 이미 활짝 폈으니

  

有賁其實 (유분기실)

이제 토실한 열매가 많이 달리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