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코리안>고아 출신 미국 5선 州의원 신호범
신호범 워싱턴주 상원부의장.."`할 수 있다' 믿음 갖길"
신호범(77.미국명 폴 신) 미국 워싱턴주 상원부의장은 고아로 미국에 입양돼 워싱턴주 상ㆍ하원선거에서
다섯 차례나 당선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신 의원은 미국인 아내와 결혼해 한국에서 두 자녀를 입양해 키웠고, 자신을 버렸던 친아버지는 물론
이복동생 5명을 미국으로 데려와 뒷바라지하기도 했다.
"미국은 나를 키워준 아버지와 같고, 한국은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같다"고 말하는 그는 한국을 떠난 지
5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릴 적 고생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눈시울을 붉힌다.
신 의원은 19일 연합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내 삶의
원동력"이라며 "교수도, 정치인도 꿈을 꿨기 때문에 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935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그는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2년 뒤 아버지마저 행방불명되자 서울역과
한강변에서 구걸을 하며 목숨을 유지했다.
그러다 6.25 전쟁의 와중에 한 미군을 만나 임진강 넘어 장단지역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잔심부름꾼)
가 됐고, 1953년 군의관인 레이 폴 박사의 양아들로 입양됐다.
신 의원은 "하우스보이 시절 엄마 생각이 나서 울고 있는데 폴 박사님이 `왜 우느냐'며 꼭 안아주셨다"며
"그 포옹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됐다"고 말했다.
폴 박사는 1954년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신 의원을 명동성당 신부에게 맡긴 뒤 이듬해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신 의원은 "1년 동안 양아버지의 초청을 기다리면서 혹시 버린 게 아닌가 의심했었다"며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한국을 떠나던 날 `배고팠던 나라, 거지새끼라고 때리고 차별했던 나라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침을 뱉었었다"고 회상했다.
미국 유타주에서 폴 박사의 친아들 3명과 함께 살게 된 그는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하루 3시간만 자면서
독하게 공부해 대입검정고시를 1년4개월만에 통과했다.
무조건 교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브리검영 대학을 졸업, 1963년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고 메릴랜드대 강단에 섰다.
교수생활을 하던 신 의원은 동아시아학 박사학위를 받고자 워싱턴주립대에 들어갔다가 서두수 교수를 만나면서 또 한 번 인생의 변화를 겪었다.
한글을 몰랐던 신 의원은 3년 동안 서 교수로부터 한국어를 배웠다.
신 의원은 "한글을 배우기 전까지는 한국사람만 보면 거지 시절 얻어맞던 생각이 나서 도망쳤다"며
"서 교수님과 공부하고 나서는 한국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친해질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는 1997년 워싱턴주립대 교수직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연방 하원의원 시절(92∼94년)을 제외한 31년
동안 미국 대학에서 동양역사를 가르쳤다.
신 의원이 교수를 하면서도 정치인을 꿈꾼 시간은 매우 길다. 1958년 미군 영장을 받고 독일에 파병되기
전 텍사스에서 신병교육을 받았는데 백인만 들어가는 식당에 갔다가 지배인이 그를 집어던진 일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거지라고 맞고 다녔는데 왜 미국에서까지 차별받아야 하는지 울분이 쌓여 언젠가는 정치인이 돼
인종차별을 못하도록 법을 바꿔야겠다 결심했다"고 전했다.
199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처음 출마한 그는 유권자의 97%가 백인인 상황에서 전체 유권자 2만9천가구를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이 나라에 이민 온 사람인데 은혜를 많이 받아서 봉사하고 싶다"며 큰절을 했다.
워싱턴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2년간 활동한 신 의원은 1994년 연방하원의원, 1996년 워싱턴주 부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고배를 마시고 1998년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동양인이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것은 처음이라 유색인종과 입양아들의 희망이 됐으며 2001년에는
상원부의장에 올라 한국계로는 미 주의회 사상 최고위직을 기록했다.
그는 "유권자들이 내가 집에 찾아가 큰절을 하면 어찌할 줄 몰랐었다. 간절한 내 진심이 통했기 때문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2002년, 2006년, 2010년 계속해서 상원의원에 당선됐으며 상원부의장직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임기는 2014년 말까지다.
그는 2002년 워싱턴주 공문서에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현인 `오리엔탈' 대신 `아시안'을 쓰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 법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됨으로써 텍사스 식당에서의
울분을 44년만에 갚았다.
신 의원은 1965년 미국인 아내 도나 여사와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다시 찾은 이후 자주 한국을 방문해
책을 출판하고, TV와 라디오에 출연하거나 강단에 섰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세계를 무대로 진출해야 한다"며 대학생 대상 강연을 많이 했다.
신 의원은 "미국 모든 주마다 한국계 의원을 배출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계 미국 대통령도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며 "앞으로 정치는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입양아들의 손을 잡아주고
사랑을 나눠주는 선교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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