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안의 하늘 여는, 개천 5909년
개천절 세계평화축제
개천절세계평화축제 취지문
대한민국의 고대 역사서에 5909년전 하늘에서 환웅이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고 기록되어있다. 곧 지금의 백두산 천평에 신시를 도읍 삼고 홍익인간, 광명이세, 제세이화의 건국이념으로 '배달국'을 세운 이래 우리 민족이 금수강산을 지켜왔다.
그 이후로도 우리 민족은 부여와 삼국시대, 신라-발해, 고려시대에도, 조선 세종대왕 때까지도 하늘에 제를 올려오다 “천제는 천자만 할 수 있다”라는 명의 강압에 의해 폐지했다가 고종이 뒤늦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원구단을 세우고 천제를 올렸으나 일제가 무력으로 없애버렸다.
이처럼 개천절은 민족사의 여명을 연 날이자 인류문명이 태동한 날로서 우리 민족이 수천년 동안 최고의 경축일로서 잔치를 열고 기념하여 왔다. 그러나 1949년에 제정된 오늘날의 개천절은 단군조선이 개국한 날 정도로만 알고 이 또한 다른 국경일보다 소홀하게 여겨 최근 수십년간 대통령조차 참석치 않고 연례행사 한번 하고 지나가는 날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개천절은 민족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장 뜻깊은 날이다. 60여년 남북의 분단시대를 종식하고 통일을 준비해야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8천만 한민족 전체가 개천절의 참 뜻과 위대한 민족사를 올바로 알고 자긍심과 책임감을 확고하게 해야한다. 부활된 원구단에서 천제를 다시 올리고 전세계에 개천절의 홍익정신과 평화평화, 인류공영의 참 뜻을 알려야 한다. 장구히 이어온 찬란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온세계에 널리 자랑하고 전파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남녀노소, 신분과 이념, 계층과 종파를 초월한 전국민의 뜻과 열정을 한데 모아 “사람 안의 하늘 열어 세계평화 이룩하자! ”큰뜻으로, 개천절을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글로벌 대축제로 만들어 가야 한다.
개천 5909년(2011년) 10월 3일
개천절세계평화축제조직위원회
개천절의 유래
1. 개천절은 한 옛날(上元甲子) 상달 상날(10월 3일)에 배달국 한웅 단군께서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를 건설하시고자 한울문을 열으사 백두천산에 내려오시어, 신시 배달국을 여신 개천, 개국일(開天日)로 올해는 신시 개천 5909년이다.
2. 이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조선을 건국하신 단군왕검께서 무진년 상달 상날(10월3일)에 모든 백성들의 추대로 임금이 되시니, 이 날도 개천, 개국일(開國日)로, 금년은 단기 4344년이 되는 해이다.
3. 이 거룩한 개천절을 옛부터 상달 상날이라 높이어 부르며, 이 날을 기리어 거족적 개천의식(開天儀式이) 계승 전래되어 오나, 옛 부여에서는 영고(迎鼓), 예(藝)와 맥(脈)에서는 무천(舞天), 마한과 변한은 계음(契飮), 고구려는 동맹(東盟), 백제는 교천(郊天), 신라는 숭천(崇天), 고려에서는 팔관회(八關會)라는 민족 제천 대회를 봉행하여 국민 대단합(大團合)의 계기로 삼아 춤과 노래, 각종 경기 등 대축제를 벌리었으며, 특히 청사초롱을 밝히는 연등행렬도 있었다. 이에 따라 경천숭조(敬天崇組)와 충효(忠孝)사상을 심어왔으며, 민족고유의 정통윤리를 확립하고 근본을 갚는 예절을 전수하여 왔다.
4. 고려 중엽부터 외래문물의 유입으로 거족적인 우리 민족의식이 흐려지고, 민족의 고유신앙과 전통의례(傳統儀禮)는 민속 및 민간신앙으로 숨어들어 조선조를 거치는 동안 고삿날이라 하여 겨우 그 잔영을 유지하였었다. 이러하기를 700여년에 급기야는 나라마저 망하는 위기에 이르렀다.
5. 나라는 잃었으나 겨레는 아직 살아 있으니, 우리의 얼을 되찾고 주체성을 회복하려면, 우리의 뿌리를 찾아 정통 신앙으로 국조 단군 한배검께 하나로 귀일(歸一)하는 길만이, 겨레와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구국일념에서, 나철(羅喆) 홍암대종사(弘巖大宗師)는 단기 4242년(서기 1909년)에 대종교를 중광(重光)함과 동시에, 우리 겨레의 가장 뜻 깊은 명절인 개천절(開天節)을 부활(복원)시켰고, 민족 고유의 천제의식도 되살려 선의식( 儀式)이라 이름하여 현재까지 보전하여 왔다. 이 개천절이 복원된 뒤 매년 대종교에서는 경축행사를 봉행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거족적 행사는 시행하여 보지도 못한 채 망명(亡命)의 길을 떠났다.
6. 단기 4245년(서기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국경일)로 정하여, 조국 광복을 다지면서 해마다 경축하였다. 또한 일제가 패망하자, 단기 4281년(서기 1948년) 8월 15일 국내에서 정식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개천절을 국경일로 거듭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개천절이 양력으로 된 연유
요즘에 와서 개천절을 음력 10월 3일로 복원하는 것이 정통성을 살리는 길이라는 복원론이 팽배해 지고 있는 소리를 듣는다. 이 논란은 4대 경절을 제정할 당시 제헌국회(制憲國會)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많은 논의 끝에 정부의 공력(公曆)인 태양력(太陽曆)을 따라, 개천절도 양력으로 정해졌다. 일부에서는 당시의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해 정하자고 했지만, 사실, 수천년 내려 온 정통성을 지닌 “10월 3일”이란 날짜가 의의(意義)가 있는 것이고, 그 당시에도 양력을 사용했다는 학설도 있다. 그러하니 음력 10월 3일을 양력 10월 3일로 그대로 전용(轉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집약(集約) 제정되어 오늘의 개천절이 양력으로 확정된 것이다.
한조선 민족사 정리
* 마고→ 桓國(BC 6만3182년 산해경 용백국) 7대 → 배달국(BC 3898년) 18대 →
고조선(BC 2333년 10월 3일) 47대 → 다음과 같이 남북조 및 마한의 ‘삼태극’ 으로 분열됨.
* 불한 → 남조; 부여(BC 239년 4월 8일 ~ )제국,
신한 → 북조: 흉노제국(기원전 3세기말 ~ AD 1세기말) →
마한 → 마한: 현재 한머리땅(한반도, 옛 한국, 배달국 중심지이자 고향 )
이는 다시 다음과 같이 변천,
* 남조 부여; 고구려, 백제(마한 흡수)→신라, 발해(698~926년)→고려, 금→조선, 청
→대한민국, 북조선
북조 한나; 南 흉노(한나): 신라 → 금 → 청
北 흉노(한나): 선비(당), 돌궐, 훈, 위구르 제국(AD 744 ~ 840년), 거란 → 원 → 몽골
그리하여 현재, 대한민국, 북조선, 몽골 등 삼태극의 세 나라로 됨.
이를 민족생명체(약칭 民體) “한조선” 으로 통합하자는 것이 민족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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