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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재허백련(毅齊許百鍊)先生 思想과業積♣

왕토끼 (秋岩) 2011. 6. 6. 10:47

♣의재허백련(毅齊許百鍊)先生 思想과業積♣

 

 광주 증심사 계곡은 무등산을 등산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으며 증심사 입구에서 100m 지점에 의재 미술관이 있다.

미술관 앞 계곡의 다리를 건너면 의재선생님이 작품활동을 하시던 춘설헌이 있고 춘설헌에서 산기슬로 100m쯤 올라가면 의재 허백련 선생님의 묘가 있다.

 

필자가 의재 선생님을 만난 것은 1975년 10월 3일 개천절에 무등산 천제단에 개천제 참석차 춘설헌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던 화구를 치우고 방문객을 친절히 맞이하면서 춘설차를 접대 하며 무등산 천제단 성역화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건강상 개천제에 참석하지 못함을 아쉬워했었다.

 

의제선생님의 추억을 새롭게 생각하며 의재 미술관에 들려 작품 감상을 하면서 의재 선생님의 생애에 대해 미술관 담당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1977)선생은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의 남종화 맥을 형성한 장본인으로서, 한국 근, 현대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한국 화가이다.

 

선생이 활동한 시기는 구한말, 일본제국의 식민통치, 6.25 전쟁과 두 차례의 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격변기로, 화단에서는 오랫동안 이어온 미술전통이 순식간에 일본풍으로 대치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선생의 미술사적 업적은 바로 그러한 시기에 한국적 남종화를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데에 있다.

 

그런 까닭으로 선생을 한국 남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일컫는다. 의재 선생님의 삶과 예술적 기반은 무위자연을 중심으로 한 노장(老莊)사상이었다. 그러나 의재의 무위자연사상은 단순한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둔 건강한 자연보호주의로서 사회개혁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선생이 서화단체인 연진원을 발족하고 농업학교인 삼애학원을 설립하여 후진을 양성한 일이나, 무등산 일대에 삼애다원을 운영하면서 차 보급에 힘쓰고, 단군신전 유적지인 천제단(天祭檀) 재건립 사업을 추진한 것 등은 그와 같은 선생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때문에 선생님은 예술로 뿐만 아니라 민족 사상가로서 또한 사회계몽가로서도 널리 인정받아 왔다. 1974년 10월 21일 무등산 천제단에서 단군개천궁 건립기공식을 가졌다. 그러나 인걸은 세월에 쓰러지는가! 1977년 2월 15일 오후 2시 15분 남종화의 큰 한 별은 떨어졌다.『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또 그림을 그려야지』평소에 이렇게 말씀하시던 선생님은 지금도 저승에서 붓을 쥐고 있을 가!

 

그림 그리기를 즐기시면서 꾸준히 그림을 그렸던 선생님은 긴 작가 생활을 통해 1만 여점의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다. 이러한 의재 선생님의 예술에 대한 업적과 꿈은 증심사 계곡을 통해 무등산을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맥을 이어주게 하는 곳이 의재 선생님이 30여 년간 작품을 활동을 했던 춘설헌을 비롯한 일대의 시설물들인데 시설관리가 새롭게 단장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증심사 권역의 개발 사업에서 의재 선생님의 생활무대를 관광명소로 개발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예향전남하면 목포에는 남농 허건, 진도에는 소치 허련, 광주에는 의재 허백련이 있었다.

 

우리나라 남종 문인화의 마지막 대가로 일컬어지는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선생님은 추사 김정희, 소치 허유(허련) 등의 옛 문인들을 통해 이어 받은 남종화의 전통으로, 오랜 여행에서 얻은 폭넓은 경험과 두루 익힌 동양의 고전을 바탕으로 일찍이 예술가로서의 일가를 이루었다.

 

활달하면서도 힘찬 필묵과 깊고도 맑은 동양사상, 부드러운 남도의 풍취와 시적인 흥취, 이런 모든 것이 의재 선생님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의재 선생님은 올곧은 정신과 비범한 예술혼으로 1920년대에 최고의 남화가로 인정받았다.

 

선생님은 일찍 이룬 예술가로서의 세속적 성공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등산 계곡에 은거했다. 그래서 겸허하고 청빈한 사상가, 실천적 계몽가로서의 삶을 사시게 된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삼애사상(三愛思想)’을 실천하셨다.

 

의재 선생님은 차와 그 정신을 알리고 농촌 부흥에 힘쓰면서 농업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단군의 홍익인간 이념을 알리고자 끝까지 노력하셨다. 의재 미술관 작품감상을 하면서 예술을 사랑하고 많은 업적을 남긴 의재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에 머리가 숙여졌다.

 

광주시가 예향문화수도로 새롭게 태어나려면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광주?전남을 예향으로 만들어 온 조상들의 맥을 재조명하는 사업을 병행해서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의제 미술관을 총총히나왔다.

 

본시 광주는 藝 文 義 味를  기반으로 했던 고장이 광주가 아니었던가? 지금 EU 유럽연합처럼 아시아에 연합이 될수있는 동북아 5개국(한국 중국 일본 대만 북한)이 공유 소통 할수있는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전당건립에 약진 되고있는 자료창출에도 전시민이 총력을,그리고 광주문화재단 탐험대가 최 일선에서 리더하는 견인차역을 다짐하는 살기좋은 빛고을 명소 명품 명인의 고장 되겠읍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