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바위그림의 고향 알타이
1970년 겨울 천전리 바위그림 유적이 발견된 이래 한국의 바위그림이 중국, 몽골, 러시아 등의 동북아시아 암각화 분포권 속에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더 넓게 바라보면 오대양 육대주 구석구석에 바위그림 유적이 없는 곳이 없다. 곧 바위그림은 선사시대 인류의 표현 욕구가 이루어낸 중요한 기록물이며 예술 작품이며 종교의식의 흔적인 것이다. 한국의 암각화와 직간접적인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곳으로는 역시 중국과 몽골 러시아 등지의 동북아시아 유적들을 들 수 있다. 동북아시아라고는 하지만 멀리 서쪽의 알타이지역까지 포함된다. 동북아지역의 바위그림들은 대부분 알타이 지역의 바위그림과 친연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알타이 지역은 러시아의 고르노알타이 공화국, 몽골의 바양얼기 아이막, 중국 신쟝 위구르족 자치구의 알타이 지구, 카자흐스탄의 오스케멘 지역이 십자형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고르노알타이의 칼박타쉬 유적이나 옐란가쉬 유적, 그리고 그곳에서 알타이산을 동쪽으로 넘어 있는 몽골 바양얼기의 차강살라 하이르항 유적 등은 이미 세계적인 유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 지역의 바위그림들은 대부분 목축이나 수렵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박진감 넘치는 묘사는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든다. 또 내용 뿐 아니라 분포에 있어서도 찾는 이를 압도한다. 큰 산 전체를 뒤덮고 있는 바위마다 크고 작은 그림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알타이 지역의 암각화들은 알타이 산맥을 타고 중국 북부와 몽골 중부 및 동부로 분포권이 형성되어 있으며, 한편으로는 시베리아 남부를 통하여 바이칼호 동쪽과 연해주의 아무르강 연안으로 퍼져 있다. 이들은 물론 일정한 루트를 타고 전파되어간 것은 아니며 같은 아무르강 지역에도 멀리는 구석기와 신석기 가까이는 청동기에서 철기시대의 것들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이 넓은 지역의 바위그림들은 비교적 공통된 특징들을 공유함을 볼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스키타이 미술에서 많이 보이는 사슴 그림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동남아시아에서 태평양으로 이어진 바위그림들
아시아의 남쪽으로 내려가면 중국의 윈난성과 광시좡족자치구 등에는 붉은 색 안료로 그린 암채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의 암각화들이 수렵이나 목축의 표현이 많은데 비해 제의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반도와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에도 많은 바위그림들이 있으며 암각화와 암채화가 공존한다. 수마트라 남단 뎀포산록의 테구르왕기 유적에는 중국과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청동기시대의 청동북이 바위그림에 등장하는데 이는 대륙으로부터의 문화이동을 보여주는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르네오 지역에는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동굴벽화도 있어서 시기에 따라 바위그림의 성격이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바위그림은 태평양의 많은 섬들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분포되어 있는데 하와이의 바위그림이 유명하다. 또 괌과 같은 적도 북쪽의 작은 섬에서도 볼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대륙으로 인정되지만 원주민들이 남긴 매우 풍부한 바위그림들이 남아 있고 지금도 원주민들에 의해 신성시 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바위그림에는 엑스레이 기법으로 부르는 투시적 방법에 의한 그림들이 많이 있어 세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어떤 그림들은 마치 해부도를 방불케 한다. 지금도 바위그림을 신성시 여기는 원주민들 중에는 바위그림에서 내다보이는 경관 자체도 신성한 지역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서 바위그림 유적은 그자체를 포함한 광범위한 경관 전체가 함께 유적으로 다루어져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알프스의 만년설을 이고 있는 바위그림들
유럽의 바위그림을 이야기한다면 우선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들어야 할 것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세 나라가 자리한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굴곡이 심한 해안선의 절벽과 빙하가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수많은 호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러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많은 바위그림들이 있다. 주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그림이나 사슴사냥 등을 묘사한 것들이다. 이 그림들은 한국의 반구대 유적이 발견되던 당시 반구대 유적과 연관 지어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재 유럽의 바위그림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아무래도 알프스 산록의 유적들을 들어야 할 것이다. 알프스의 바위그림 유적은 프랑스의 몽베고 유적과 이탈리아의 발카모니카 유적으로 크게 구분된다. 해발 2천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4만점 가까운 바위그림이 빽빽하게 들어찬 이 엄청난 유적은 알프스의 수려한 풍광과 함께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알프스 지역의 선사농경의 실체를 그림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그림들로 인하여 이 산은 오래전부터 신성한 산으로 추앙받아 왔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계곡에 위치한 발카모니카 유적 역시 농업과 목축 그리고 신앙 등을 구체적 그림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선사시대의 사진첩이나 마찬가지다. 이 밖에도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피레네 산맥 일대의 구석기시대 동굴벽화 역시 바위그림 유적으로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며 대서양 연안의 거석분묘의 돌 벽이나 천정에 새겨진 많은 그림들도 바위그림 유적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미국 바위그림에 보이는 시베리아의 얼굴
세계 바위그림 분포권에서 주목받아야 할 곳으로 미국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바위그림 유적들은 캘리포니아를 비롯해서 유타, 네바다, 아리조나, 콜로라도, 뉴멕시코 등 서남부에 해당하는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으며 이 지역들은 대부분 사막으로 되어 있다. 이 지역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원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각각의 바위그림 유적들은 원주민 문화와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암각화의 내용들 또한 매우 다양하여 인물이나 동물상을 비롯하여 기하학적인 도형이나 극도로 추상적인 상징도안들이 많이 보인다. 그림의 기법도 암각화 뿐 아니라 암채화도 많다. 로스엔젤레스의 해안에서 가까운 암채화 중에는 소녀들의 초경의식과 관련된 것들도 있어서 인류학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바위그림들은 멀리는 수만 년 전 가까이는 수백 년 전의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유럽인들이 미대륙에 들어온 이후에는 대륙의 침략자로서의 유럽인들이 바위그림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상륙 이후 바위그림의 전통은 끊어져 버렸다. 미국의 바위그림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워싱톤주의 서해안 지역의 유적들인데 이 유적들은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지역 해안과 위로는 알래스카 해안 지역에 이르기까지 분포된 인물상들이다. 이 인물상들은 일찍이 러시아의 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연해주 지역의 바위그림과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신석기 이후 바위그림을 새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북미대륙으로 이동하였으며 동시에 시베리아의 문화가 함께 전파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선사시대 바위그림을 이야기하면서 아프리카를 제외할 수 없다. 남부 사하라 챠드의 장대한 들소떼 그림, 니제르의 아이르 산맥의 춤추는 여인들, 나미비아 사막의 백색의 숙녀 등 선사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바위그림의 이름들이 모두 아프리카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들을 자세히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너무 좁다.
몸살을 앓는 바위그림, 어떤 처방을 내릴 것인가?
위에 언급한 몇몇 유명한 유적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바위그림 유적들은 실제로 지금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인간의 무절제한 개발로 인해 송두리째 사라지거나 아니면 살아남더라도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개발로 인한 실패를 겪은 나라들은 어떻게 하면 유적들을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킬 것인가에 골치를 썩이고 있는데 반해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들은 이 유적들을 어떻게 관광에 활용하여 이익을 창출할 것인가에 골치를 썩인다. 그도 저도 아닌 나라들은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여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사라져가는 유적들이 수도 없이 많다. 앞서가는 나라에서 바위그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내용의 연구에 앞서 보존에 대한 연구에 힘쓰는 것은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멸실의 위기에 처한 유적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사진 | 임세권 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