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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도 전체를 호랑이의 모습에 비유했을 때 수컷 호랑이의 중심 부분에 변산반도가 위치한다. 산, 들, 바다가 골고루 어우러진 변산반도는 산으로 에워싸인 내변산과 바다를 두르고 있는 외변산으로 나뉜다. 소 천엽 속처럼 깊다는 내변산은 장광팔십리(長廣八十里)의 겹산으로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 전해진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호랑이들은 명산을 따서 이름을 짓고 그 산의 주변지역에는 그에 어울리는 설화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백두산호랑이, 금강산호랑이, 인왕산호랑이, 지리산호랑이 등등. '변산호랑이’이라는 명칭도 변산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이야기이고 산 또한, 호랑이가 살만큼 명산이었다는 의미이다. 부안사람들은 호랑가시나무를 유독 ‘호랑이 등긁개’라고 부르는데 변산호랑이가 내려와 호랑가시나무 잎의 뾰족한 가시로 등이 가려울 때 문질러 긁었다고 하는데서 유래한다. 그 또한 변산호랑이의 존재를 입증하는 일이다.
변산반도가 호랑가시나무의 북방한계선인 것을 감안할 때 다른 지역 호랑이들은 어떻게 등을 긁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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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경인년(庚寅年)! 백호랑이띠다. 경인년의 경(庚)은 흰색, 서쪽, 금을 뜻한다. 백호랑이띠, 지도상 호랑이의 중심이라는 서쪽의 변산반도, 변산호랑이도 살았다는 그 곳; 부안에서 올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말이지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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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조용함을 절 속 같다고 한다. 절 속 같은 고요함이 깊다 못해 곰소 둠벙 속 같은 절이 있다. 개암사(開巖寺)다. 원효가 그곳에서 야단법석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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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惹端)이란, ‘야외에서 세운 단’이란 뜻이고, 법석(法席)이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야단법석(惹端法席)이란, 법당이 좁아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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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신라와 당나라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 왕자 부여 풍은 백제유민들과 주류성(우금산성)을 근거로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한다. 663년 지도층 내분에 의해 4년에 걸친 백제부흥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676년 마침내 신라는 당나라를 몰아내고 삼국을 통일한다. 통일 후 신라의 승려 원효와 의상은 멸망한 백제땅, 마지막 저항지였던 변산으로 와서 개암사를 중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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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화쟁사상은 백제유민들의 전쟁으로 인한 갈등과 패배의식, 망국(亡國)의 한(恨)을 위안하고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면서 물리적인 통일이 아닌 정신적 통일을 이루었고, 한민족 단일국가 형성의 기틀이 된다. 비로소 변산에서 진정한 의미의 삼국통일이 이루어진다. 원효가 개암사에서 야단법석을 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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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놓고 기억자 모른다. 'ㄱ‘자를 모르니 낫을 보고 ’ㄱ‘를 연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외국여행 중 세계 유명박물관에 가서 명화를 보고 감흥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책에서 본 복제본을 실제로 본다는 생각에 잔뜩 기대하고 설레지만 막상 특별한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연예인의 실물을 보는 것이나 사진 속의 음식을 맛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림이나 조각이라는 게 사실 어느 정도 그림을 이해할 수 있어야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때로 미적 감수성과 지적 통찰력이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예술도 있다. 굳이 공부까지는 아니어도 약간의 지식과 노력은 몇 배의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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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입구의 일주문을 올려다보면 앞·뒤로 십이지상이 조각되어있다.
숨은 그림을 찾으러 개암사에 들어가 보자. 이참에 개암사에 대해서 공부 좀 하고 어디 가서 불교 건축과 그림에 대해 좀 안다고 잘난 척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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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머리는 소, 뿔은 사슴, 배는 뱀, 꼬리는 물고기를 닮았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상상속의 동물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찬양하고 불국세계를 외호하는 역할을 한다. 법당 주변과 절 구석구석에 용 문양을 새겨 넣고 그려 넣음으로써 사찰을 더욱 청정하고 신비롭게 장식한다. 개암사가 갖는 건축학적 의의가 그 장식에 있다.
대웅보전 안팎에 조각되어 있는 용과 봉황, 연꽃들이 주는 상징성과 화려함은 어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도금한 불상들만 훑어보지 말고 천정을 올려다 보아야한다. 용이 몇 마리 있는지, 봉황이 몇 마리 있는지, 연꽃과 연꽃 줄기와 연꽃 봉오리가 어떻게 올라가고 피어 있는지를 찬찬히 구다봐야 한다. 얼마나 세밀하고 입체적인지, 얼마나 정성과 솜씨를 다하였는지를! 보이는 대로 그렸다 해도, 그린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안목이 예술적 감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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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대웅보전에게 미안한 듯 비켜 선 두 개의 바위가 우금바위다. 이 곳에 있는 우금산성은 백제의 도침과 복신이 최후의 저항을 했다는 주류성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지막 백제인들이 장렬하게 숨을 거둔 곳이다. 우금바위에는 세 개의 굴이 있다. 복신굴과 베틀굴, 원효굴(원효방)이다. 개암사 뒤편으로 산을 오르면 보다 꽤 큰 굴과 한사람 정도 드나들만한 작은 굴이 나오는데 큰 것이 복신굴이고 작은 것이 베틀굴이다. 보통은 2개만을 보고 2개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곳에도 의상봉 ‘부사의방’처럼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둔 듯한 원효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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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굴은 남쪽 바위 절벽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데 암벽중간에 있어서 찾기도 힘들고 오르기도 어렵다. 사다리가 없이는 곧바로 오를 수 없고 돌아가기에는 길도 통 시원치 않다. 삼국통일 후 백제유민을 달래기 위해 변산에 온 원효대사가 개암사를 중건하고 이 곳에서 수도했다고 전해지면서 원효방이라고도 한다. 500년 지난 후, 고려의 천재시인 이규보(1168~1241)가 부안에 왔다가 참으로 놀랄만한 두 곳을 가보게 되는데 그곳이 원효방과 부사의방이었다. 그는 <남행월일기>에 원효방과 부사의방에 대한 체험과 감흥을 기록으로 남겼다.
높지 않은 산이라 2시간 정도의 산행이면 왕복이 가능하다. 일주문의 십이지상을 시작으로 백옥교를 지나면 900년은 족히 된다는 느티나무가 있다. 찾아볼 일이다. 대웅보전의 용과 봉황과 도깨비 수를 불심으로 세어보고 우금산에 올라 신라의 고승 원효가 백제로 온 까닭도 헤아려 볼 일이다.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한 대목; “내소사가 좋으냐? 개암사가 좋으냐?” 물으니, 소녀가 답했다. “내소사에 살면서 개암사에 놀러 갈래요” 나라면, 개암사에 살면서 내소사에 놀러가고 싶다. 적막함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곳에서라면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닌 원래의 내가 될 수 있고, 나만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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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짝 아니다. 그래서 솔광도 아니고 월광도 아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선명한 색감이 이상하게 도발적이고 원색적으로 느껴진다. 부안에서 서해안 노을을 사진에 담을 경우 사진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위치가 세 곳 있다. 하나는, 변산면 도청리에 있는 전북학생해양수련원 앞의 솔섬이고, 다른 하나는, 적벽강 사자바위와 몽돌이다. 나머지는, 고사포해수욕장에서 변산해변도로를 타고 해안가로 올라서면 탁 트인 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보이는 하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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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의 노을이 취기처럼 서서히 번지다가 울컥하듯 붉어진다면, 솔섬의 노을은 단아하고 새침하며 고혹적이다. 하섬의 노을은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잔잔하고 애달파서 만만해 보인다. 작은 섬을 뒤덮고 자라는 솔섬의 소나무에 석양이 걸리는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카메라에 담아 가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축복에 가까운 행운이다. 그 한 컷을 찍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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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은 다음날, 마누라가 왜 간절한지는 알 수가 없으나, 어쨌든 그 마누라보다 간절하다니 어지간히 간절한 모양이다. 당연히 해장국이겠지. 해장국은 원래 해정갱(解羹)에서 변형된 말이다. 해(解)는 푼다는 뜻이고, 정()은 숙취(宿醉)나 술병을 의미하며, 갱(羹)은 국을 말한다. 숙취를 해소한다는 뜻의 해정갱이 해정국으로 불리다가 지금의 해장국이 되었다. 지역마다 각양각색의 해장국이 끓여지고,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해장방법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단 한 가지! 첫술부터 속 확 풀어주는....... 뜨거울수록, 얼큰할수록 ‘시원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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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속풀이 해장국의 양대 산맥은, 물론 북어국과 물메기탕이다. 물메기탕은 조리법과 재료가 간단한데도 오히려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부안처럼 어머니 어깨 넘어 대물림하는 곳이라야 제대로다. 변산반도도 식후경이라. 겨울철엔 뜨끈뜨끈하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물메기탕 한 냄비 뚝딱해야지 변산도 눈에 들어온다. 배가 든든하면 왠지 세상이 만만해보이지 않는가.
변산 모항 쪽에 눈 오신다 기별 오면 나 휘청휘청 갈까하네 귓등에 눈이나 받으며 물메기탕 끓이는 집 찾아갈까하네 무처럼 희고 둥근 바다로 난 길 몇칼 냄비에다 썰어넣고 주인이 대파 다듬는 동안 물메기탕 설설 끓어 나는 괜히 서럽겠네 눈이 오신다 하기만 하면 근해(近海)의 어두운 속살 같은 국그릇에 코를 박고 한쪽 어깨를 내리고 한 숟가락 후루룩 떠먹고 떠돌던 눈송이 툇마루 끝에 내려앉는 것 한번 보고 여자가 옆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겠네 변산 모항 쪽에 눈 오신다 하기만 하면 안도현의 <물메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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