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꽃 百日紅
木百日紅과 파양수(怕癢樹)
선인들은 아름답다고 아무 꽃이나 집안에 심지 안했다.
능소화 같이 꽃가루에 독이 있거나, 뱀이 올라간 것처럼 꼬이는 등나무,
화사하게 피어 자녀들의 감정을 뒤 흔든 복사꽃들은 피했다.
백일홍도 금기시되어 안채 정원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상서와 부귀의 상징으로 사당이나 사랑채 앞에만 심었다.
백일홍이 안채 뜰에 들어가지 못한 연유는 매끄러운 줄기가 아녀자의 나신을
연상 시켰기 때문이라는데, 그보다는 안전사고 때문인 듯싶다.
안채에서 노닐던 애들이 미끄러운 나무에 올라가 낙상할까봐 금했을 것이다.
배롱나무의 진짜 아름다움은 한 여름 꽃이 만개할 때로 7월이 되면
나무 아래쪽으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하여 9월까지 100여일간 붉은 빛을 발한다. 여름부터 100여일동안 피었다 가을에 지는 꽃이라 하여 붙인
百日紅의 별칭은 십 여 개나 된다.
[배롱나무]는 百日紅나무가 우리말로 바뀌면서 소리 나는 대로 굳어졌고,
잎이 다 떨어진 겨울날의 배롱나무는 裸身과도 같아서
사람의 손이 닿으면 가지 끝이 파르르 부끄럼 타는 것처럼 흔들려서
[간지럼나무] 또는 [부끄럼나무]라고 하는데
그 원인을 아직도 과학적으로 밝히지는 못했다.
한자명 파양수(怕癢樹)도 부끄러울 파(怕) 가려울 양(癢) 나무 수(樹)이니
같은 뜻이고, 제주방언 ‘저금’타는‘낭’도 [저금]이 [간지럼]이고
[낭]이 나무라는 말이니 의미 가 같으며,
일본의 사루스베리도 원숭이미끄럼나무라는 뜻이고 보면 엇비슷하다.
배롱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아주 단단하고 매끄럽고 윤기가 나면서
고귀한 멋이 가득하여 한 터럭의 俗氣도 없어,
뼈마디가 굵은 여인의 팔뚝 같기도 하고,
다이어트를 심하게 한 무용수의 몸매 같아 일명 [누드나무]라고도 한다.
백일홍은 진홍, 주홍, 자주, 흰 꽃 등의 색깔로 피는데
중국인들은 자주 꽃을 좋아해 아예 [자미화(紫薇花)]라하고 하는데,
중국 당나라 시절 3성6부의 하나인 중서성에는 紫微花를 많이
심었다고 해서 양귀비의 애인인 현종이 중서성을 자미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붉은 꽃을 즐겨 온 집안이 붉은 빛으로 가득하다고
[만당홍(滿堂紅)]이라 하고, 일본인들은 흰 꽃을 많이 심는다고 한다.
춘삼월이 되면 대부분의 나무는 잎이 채 나기도 전에 앞을 다투어
꽃을 피우며 갖은 맵시를 자랑하다가 5월이면 벌써 연둣빛 신록에
묻혀버리고 마는데, 배롱나무는 그 빛깔이 있는 계절에는
미동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을 준비하고서는
세상이 꽃에 대한 감각을 잃어갈 즈음에 장장 석달 하고도 열흘을
한여름 땡볕에 피어보이니 인간 세상에서 [大器晩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양반처럼 서둘지 않고 잎과 꽃이 느릿느릿 핀 다고 [양반나무]라고도 한다.
풀꽃 백일홍과 구별하려고 [木百日紅]으로도 불리고,
백일홍 꽃이 다 지면 벼가 익는다고 해서 [쌀밥나무] 또는 [올벼 꽃]
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스님과 선비들은 배롱나무를 즐겨 심었는데,
스님들은 묵은 껍질을 다 벗어 버리듯 세속을 훌훌 벗어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였고, 부처꽃과의 꽃나무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도 생각해 봄직하다.
선비들은 정자 옆 배롱나무 아래서 떠나간 벗을 그리워하며
부정을 멀리하고 청렴을 지키려고 애썼다.
꽃이 피면 100일간이나 장관을 이룬다.
이 꽃은 원추화서로 석 달 넘게 피기에 ‘花無十日紅’ 이란 말을
무색케 하지만 실은 꽃을 낱개로 보면 이 꽃도 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
배롱나무는 정자나 사당, 향교, 서원에 헌화, 헌향하고
남도의 고찰 해남의 대흥사, 강진 무위사, 고창 선운사 경내의
배롱나무는 극락세계의 안내양처럼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으며,
국립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은 배롱나무를 정원수로 채택하고 있다.
삼복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휴가철 남도의 도로 가로수에
붉는 색으로 도열해 관광객을 맞이하는 배롱나무는
문화관광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꽃, 백일홍!
장장 100여일 동안 자신의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발산하고,
첫사랑의 여인을 연상케 하며, 수줍어 부끄러움을 알고,
고귀한 멋이 가득하여 한 터럭의 俗氣도 없으며,
여유로운 미덕이 있고, 대기만성의 끈기와 인내,
그리고 희망을 안겨주는 꽃, 百日紅....
수도승의 참선과 고결한 선비의 정신이 묻어나는 꽃, 百日紅...
그래서 나는 百日紅을 좋아한다.
2009. 7월. 滿開한 百日紅을 보면서
광주문화관광해설사
알베르또 苔岩 李源昌
백일홍 일명 자미화(紫薇花) 파양수(간지럼나무) 옮겨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