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48영은 김인후가 49세이던 1548년경에 읊은 것이다. 특히 김인후가 젊어서 최산두에게 찾아가서 배울 때 최산두는 동복에서 15년 동안 자리를 짜고 있었다. 김인후가 장성에서 그 사귐이 있었다.
또한 그곳의 수석과 과축을 사랑하여 한번 오면 어느 때는 한달이 넘도록 돌아가기를 잊고 토론하고 흥취에 젖어 술 한잔에 시 한편을 읊었다. 소쇄원48영은 이런 분위기에서 술 한잔 마실 때마다 한 편씩의 시가 탄생하면서 지어진 것이다.
소쇄정에 붙여 시를 읊을 때 그의 시가 단순히 소쇄원 주변 경승 48개소의 자연경관을 아름답게 묘사했다고만 볼 수 없다. 즉 작가의 정신사상을 표출해 주었으며, 48개의 경관이 무질서하게 나열된 것이 아니라 소쇄원 전체의 구도와 형상미를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안배한 것이라 하겠다.
양천운은 소쇄원계당중수상량문에서 이 소쇄원을 무이에 비겼다. 양산보 또한 도학에 큰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자연을 읊되 경속에 뜻을 갈무리고 도를 말하되 생경하게 직설하지 않은 것이 주자 이래 도학자가 시를 짓은 태도였다.
5언절구인 소쇄원48영은 12영씩 4단락으로 구성되었다.
1단은 서이고 2단과 3단은 소쇄선경에서 하나로이 자연을 즐기고 관조하는 정경을 그렸다. 4단은 마무리 결사로 태평성세를 기원하면서 소쇄옹 가문의 번영를 축원하고 있다. 48이라는 숫자에도 뜻이 있다. 육효가 일괘다.
팔괘의 효는 48이다. 48은 우주만상의 변화와 상생의 이치가 모두 들어 있다. 김인후는 소쇄원48영에서 자연과 인생이 모든 도를 포함하여 시로 여과시키려 했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초야의 시는 건물에 부착된 시보다 다소 무미건조한 경우가 많으나 소쇄원48영은 화려하고 증행시의 기법을 썼다.
소쇄원 48영는 1755년에 제작된 소쇄원도에 새겨져 있으며 소쇄원도에 있는 승경은 소쇄원48영의 제목과 똑같은 곳이 여섯 군데나 된다. 글이나 시를 짓거나 기록할 때 그 글이나 시를 앞에 적고 제목을 끝부분에 적는 일이 전연 없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제목을 앞에 쓰고 본문이나 시를 다음에 쓰는 것이 상례이다. 소쇄원48영은 시를 앞에 적고 제목을 뒤에 적었으나 제목이 앞에 있는 것이 읽고 이해하는 데 더 용이하리라 믿어 각 싯구의 제목을 앞에 옮겨 적는다.
근래에 소쇄원48영에 대한 번역이 여러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내용이 약간씩 달라 이를 새롭게 정리하여 어려운 용어는 쉽게 풀이하였다.
---한국의 명원 소쇄원 <천득염 지음>에서---
제1영: 소정빙란
소쇄원의 경치가 소쇄정을 이루었구나.눈 들어보니 바람 상쾌하고 귀 기울이니 영롱하구나.
제2영: 침계문방
창이 밝아 책을 비추니 물 속 바위에 책이 미치네.세상사를 생각하니 사념이 솔개와 물고기처럼 떠돈다.
제3영: 위암전류
흐르는 물은 바위를 씻어 내리고 하나의 돌이 개울에 가득하네.가운데는 잘 다듬어졌으니 경사진 절벽은 하늘의 작품이로다.
제4영: 산을 등진 자라바위
무거운 청산을 등지고 벽옥같은 시내를 돌아보니,긴긴 세월, 탈이 없는 게 대각이 영주보다 낫구나.
제5영: 돌길을 위태로이 오르다
하나의 길이 삼익을 연결시키니 한가롭게 길을 나서는 것이 위험치 않구나.속세의 자취가 길지 못하니 이끼의 색깔이 여전하구나.
재6영: 작은 연못에 물고기 춤추고
네모진 연못은 한 이랑도 되지 못하나 겨우 맑은 물이 모일만 하네.물고기가 주인의 그림자를 놀려 내니 낚싯대를 드리울 마음이 없구나.
제7영: 나무홈통 사이로 흐르는 물
시내는 천천히 흘러 높고 낮은 대나무 아래 못에 이르네.하늘을 나는 듯 떨어진 물줄기는 물방아를 돌리고 온갖 물고기는 흩어져 노네.
제8영: 구름 위로 절구질하는 물방아
쉬지 않고 온종일 흐르는 잔잔한 물의 힘으로절구가 오를 때마다 공이 저절로 생기네천손의 베틀 위 비단이 조용히 방아소리를 따르네.
제9영: 왕대로 걸쳐놓은 위험한 다리
골짜기에 걸쳐 대나무 숲이 이었으니마치 하늘에 떠있는 것처럼 위험천만하구나.못은 본래 아름다운데 다리로 인해 더욱 맑고 그윽하네.
제10영: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
이미 하늘로 사라졌건만 다시 조용한 곳에서 부르는구나.무정한 바람과 대나무는 매일 저녁 피리를 연주하네.
제11영: 연못가에서 더위를 식히니
이곳은 시원한 가을이구나. 바람은 대나무 주위를 맴돌고연못의 물은 돌 위를 나뉘어 흐른다.
제12영: 매대의 달맞이
숲이 끊기니 대는 그대로 넓어 기울어진 달이 떠오를 때 더욱 좋아라.엷은 구름도 흩어지고 차가운 밤만이 얼음에 비친다.
제13영: 큰 바위에 누워 달을 보니
푸른 하늘의 달을 보며 누우니 돌이 대자리가 되는구나.길다란 숲에 흩어지는 맑은 그림자 깊은 밤 잠못 이루네.
제14영: 담장 아래로 흐르는 물
한 걸음 한 걸음 물을 보며 걷자니 한걸음에 시 한 수 생각이 깊어지고.물의 참 근원이 어디인지 모르고 담장 통해 아래로 흐르는 물만 바라보네
제15영: 살구나무 아래 물은 굽이치고
조금만 흘러가면 지척엔 연못인데 분명히 오곡으로 흐르네.그 옛날 본 천상의 뜻을 오늘날 살구나무 주위에서 찾아보세.
재16영: 가산의 풀과 나무
산을 위한 경비와 인력이 필요 없으니 만들어진 산의 모습은 거짓이로다.형세에 따라 숲을 이루니 역시 산야 그대로 이네.
제17영: 하늘이 만든 소나무와 돌
조각난 돌이 굴러와 언덕을 이루니 결국 뿌리를 내려 작은 소나무가 되었네.온갖 꽃이 널려 비록 작지만 파란 하늘을 이루었네.
제18영: 돌에 두루 낀 푸른 이끼
돌은 오래되어 안개구름이 촉촉하니 푸른 이끼가 꽃이 되었네.자연히 언덕과 골짜기가 바탕을 이루니 번화를 향한 뜻이 없구나.
제19영: 좁고 기다란 바위에 조용히 않아
벼랑에 오래 앉아 있으니 계곡의 바람에 깨끗하게 씻기운다.무릎이 상하는 것은 두렵지 않으니 세상 구경하는 늙은이에겐 더없이 좋구나.
제20영: 맑은 물가에서 거문고를 안고
거문고 튕기기가 쉽지는 않아 세상천지에 알아듣는 이 없네.한 곡조가 깊고 맑은 물에 메아리치니 마음도 즐겁고 듣기도 좋네.
제21영: 흐르는 물에 잔을 돌리며
돌 위에 나란히 둘러앉으니 푸성귀 나물만으로 충분하네돌고 도는 물이 절로 오가는데 띄운 술잔만 한가롭게 주고 받네.
제22영: 바다에서 바둑을 두며
바위는 넓고 평평하고 대나무 숲이 절반이네.손님이 찾아와 바둑을 한판 두니 우박이 공중에서 흩어지네.
제23영: 계단을 산보하며
티끌 많은 속세를 벗어나 잡념을 버리고 계단를 산보하며한가로이 시 한수를 읊으니 걷고 읊을수록 세상 정을 잊어가네.
제24영: 홰나무 옆 바위에서 졸다가
스스로 홰나무 옆의 돌을 쓸어내고 아무도 없을 때 홀로 앉아졸다 깨어 일어서니, 개미에게 물릴까봐 두렵다.
제25영: 못이 맑아 깊은 곳까지 보이는데 미역감고 나도 여전히 파랗구나.인간세상은 믿지 못하네 뜨거운 바위를 맨발로 걸어가도 먼지가 묻지 않네.
제26영: 끊어진 다리의 소나무 한쌍
콸콸 흐르는 물, 다리 주위 두 그루 소나무남전에도 일이 있으니, 이곳처럼 조용한 곳은 없구나.
제27영: 절벽에 흐트러진 소나무와 국화
북쪽의 고개는 층층이 푸르고 동쪽의 울타리는 점점이 노랗네.녹색의 벼랑에는 갖가지 나무가 있으니 늦가을의 풍상에도 여전하구나.
제28영: 돌받침 위의 고독한 매화
기절을 논하고 싶거든 돌 뿌리에 낀 매화를 보아야 하느니맑고 잔잔한 물까지 함께 했으니 성긴 그림자가 황혼에 지는구나.
제29영: 좁은 길의 높은 대나무 숲
눈 속의 줄기는 찌를 듯이 곧고 구름 속의 마들가리는 바람에 휘늘어지는구나,속대 솟고 껍질 벗으니 새줄기가 푸른 띠를 풀고 나온다.
제30영: 돌 틈에 뻗은 대 뿌리
서리맞은 뿌리는 속세를 싫어 하나 돌 위로 수시로 들어내는구나,몇 해가 지나면 아이가 자라듯 곧은 마음 늙을수록 꿋꿋하구나.
제31영: 벼랑에 깃들인 새
펄럭펄럭 벼랑을 나는 새 때로는 물에서도 노는구나,마음이 내키는 대로 마시고 쪼으면서 어느덧 백구는 서로 잊었어라.
제32영: 황혼이 깃든 대밭에 새는 모이고
돌 위의 몇 그루 대나무 상비의 눈물자국 여전한데,산새는 한을 모르는 듯 황혼녁이면 돌아오는구나.
제33영: 골짜기 물가에서 졸고 있는 오리
하늘이 유인에게 그윽하게 준 것은 맑고 서늘한 한줄기 샘물인데,아래로 흐를 수록 넓어지는데 오리가 한가로이 졸고 있네.
제34영: 세찬 여울 가에 핀 창포
듣자하니 여울 가의 풀은 아홉 가지 향을 가질 수 있다 하니,나는 물줄기 햇빛을 뿜으니 한 색이 더위와 시원함을 꿰는구나.
제35영: 기운 처마에 핀 사계화
정녕 꽃 중에서 성스러운 것은 언제나 맑고 화창한데,기운 처마는 더욱 좋으니 매화와 대나무는 또 이를 서로 알더라.
제36영: 복숭아 언덕에 봄이 찾아드니
복숭아 언덕에 봄이 오니 안개로부터 붉은 색이 퍼지는구나.마치 작은 동굴 안에 들어온 듯 이는 정녕 무릉계곡인 것 같구나.
제37영: 오동나무의 여름그늘
벼랑에 늙은 나뭇가지가 드리워지니 비와 이슬을 맞으며 맑은 그늘에서 자랐네.태평성세를 오래 누리니 남쪽바람이 지금도 불어오네.
제38영: 오동나무 그늘 아래 쏟아지는 폭포
나무를 보호하는 푸른 잎 그늘에도 어제 저녁 내린 비로 풍성한 시냇물이오동나무 가지 사이로 폭포가 되어 쏟아지니하얀 봉황이 춤을 추는 것 같구나.
제39영: 버드나무 물가에서 손님을 맞다
손님이 찾아와 대나무를 두드려서 여러 번 소리에 낮잠에서 깨어나관을 쓰고 맞으려 가니, 벌써 말을 메고 물가에 서 있네.
제40영: 개울 건너 핀 연꽃
깨끗하게 심어진 비범한 꽃 한가로운 자태가 멀리서도 보이는구나.향긋한 바람이 골짜기에 이르러 방안에 스며드니 난향보다 짙구나.
제41영: 연못에 흩어진 순채 싹
장한이 강동으로 간 후에 풍류를 아는 자 누구인가.모름지기 농어회는 아니라 해도 어름 실날같아 맛볼만한 것을.
제42영: 가까운 계곡에 핀 백일홍
세상의 태평스러운 꽃들이 열흘가는 향이 없는데어찌 개울가의 저 꽃은 백일 동안이나 붉게 아름다운가.
제43영: 비는 파초를 적시고
은빛화살처럼 떨어지는 비에 파초 잎이 출렁출렁 춤추네고향에서 듣던 것과 비할까 안타까워 오히려 고요를 깨뜨리는구나.
제44영: 골짜기에 비치는 단풍
가을이 찾아와 바위골짜기는 차가운데 단풍잎은 이른 서리에 놀랐네.고요하게 노을 빛이 흔들리는 속에 초목의 떨어진 잎사귀가 거울에 비친 듯.
제45영: 평원에 깔린 눈
어느새 산 구름이 어두워지고 창문을 여니 눈이 만발하구나.온 누리에 깔린 눈이 멀리까지도 희니 부귀가 한가로운 내 집까지 다가왔구나.
제46영: 눈 위의 붉은 치자나무
육각 모양의 꽃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숲에 향이 꽉 찼다고하는구나.붉은 열매가 푸른 잎을 사귀니 눈서리에서도 맑고 곱구나.
제47영: 양지 바른 단의 겨울 낮
단 앞의 계곡은 아직 얼어 있는데 단 위의 눈은 모두 녹았구나.팔 베개를 하고 따뜻한 풍경을 맞으니 닭소리가 한낮임을 알리는구나.
제48영: 긴 담에 비친 노래(장원제영長垣題詠)
긴 담이 가로질러 백척이니 長垣橫百尺거기엔 하나하나 새로운 시, 一一寫新詩 마치 병풍을 둘러 막은 듯한데 有似列屛障비바람이 물아쳐도 든든할지어다. 勿爲風雨欺